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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 Feb 24. 2020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  

길이 보이지 않는다. 

어렸을 적 나는 심부름을 참 잘하는 아이였다. 부모님이 시키는 일이라면 아무런 불평 없이 임무를 척척 완수해서 착하다는 소리도 제법 많이 듣곤 했다. 그렇게 누가 시키는 것만 잘했던 10대를 보내고 20대와 30대를 맞이하면서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더 이상 누가 무엇을 하라고 시키는 나이가 아니기에 이리저리 길을 찾아다니는 헤메임의 연속이었다.


인생의 길도 방향이 중요하다.


한 번은 미국에 가서 일을 하겠다며 병아리 감별사라는 공부도 해봤고, 캐나다로 이민 가서 요리사를 하려고 스시아카데미를 등록해 수료하기도 했다. 또 한 번은 검찰 수사관이 되겠다며 소방서를 퇴근하고 노량진 고시학원에서 수개월을 먹고 자는 '자발적 감옥생활'도 했던 시간들이 기억난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다니며 돈과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정작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랐던 그 길에는 매번 '우울함과 자포자기'라는 세트가 함께 동행해 주었다.    


드디어 출동 벨로부터 탈출하다.   

지금까지 내가 구매한 제품 중에서 결코 돈이 아깝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중 하나가 바로 내비게이션이다. 별다른 고민 없이 마치 지난날 10대의 내 모습처럼 내비게이션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소방관이 되고 직장을 세 번이나 옮긴 탓에 막내자리는 언제나 내 몫이었다. 하지만 주한미군은 일반 회사와는 달리 파격적인 인사가 가능한 곳이다. 그 덕분에 지금의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에 온 지 3개월 만에 승진을 해서 사무실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동안 모든 것을 함께 사용해야만 했던 출동팀에서 벗어나 비로소 내 책상, 내 공간이 생긴 것이다. 10년 넘게 나를 옭아매었던 출동 벨로부터의 탈출이기도 했다. 


주한미군에서 창문이 달린 사무실을 갖는 일은 누군가에게는 로망이기도 하다.   


주한미군이란 또 다른 내비게이션.  

우리 사무실의 특징은 누군가로부터 세세하게 업무지시를 받지 않는다. 자기 업무만 잘 챙기면 된다. 보고체계도 매우 간결해 불필요한 공문은 따로 만들 필요도 없고 구두로 보고하거나, 굳이 근거가 필요할 경우에만 이메일을 보내면 된다. 


물론 처음에는 이런 환경이 낯설었다. 매번 누군가로부터 지시를 받고, 한 일에 대해서는 검사를 받는 환경에만 있었으니 당연하다. 


내 할 일만 하면 되는 이곳은 분명 천국이다. 주한미군에서 난생처음으로 내 인생을 디자인하게 되었다. 지금도 주한미군이란 내비게이션은 나보고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 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지난 10년 동안 나만의 길을 만들어 걷고 있다. 


이곳저곳 헤매다 비로소 찾은 길이 참으로 반갑다. 그래서 더더욱 다른 곳은 보지 않고 내가 가야 할 길만 보고 걷는다. 혹시라도 길을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을 마지막으로 "나는 매일 미국으로 출근한다." (시즌 1)을 마무리합니다. 앞으로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글들로 시즌 2를 채워보겠습니다. 성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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