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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 Feb 10. 2020

일할 맛이 난다.  

미국의 안전을 만나다. 

미국의 안전을 만나다.  

주한미군 소방관으로서 가장 신나는 일이 있다면 그것바로 교과서에서 본 것들을 현실에서 직접 구현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성숙한 안전문화와 높은 수준의 안전 예산이 <입으로만 외치는 우리의 값싼 안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대한민국 소방관 시절에는 안전을 챙기는 것 하나도 왜 그렇게 많은 눈치를 봐야 했는지... 유치원에서 소방훈련을 하나 하려고 해도 이래서 안 되고 또 저래서 어렵단다. 그렇게 현장에서 느끼는 괴리감의 벽은 참 높기만 했다.


소방교육을 마치고 받은 작은 선물에 기뻐하는 미국 아이들.


하지만 주한미군은 다르다. 유치원은 물론이고 초.중.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안전을 직접 챙긴다. 매번 소방서에 전화해 소방훈련 스케줄을 잡 훈련을 하는 동안 대피한 사람들의 숫자도 직접 확인해 소방관에게 알려준다.


건축과 관련된 엔지니어들과의 협업도 유기적으로 잘 이루어지는 편이다. 건축도면 검토에서부터 완공검사까지 모든 과정에 소방서가 참여해 인.허가 업무를 진행하며 관련 의견을 낸다. 


소방서를 비롯해 환경, 보건, 안전, 부동산 등 다양한 부서가 함께 참여해 신축 건물에 대한 합동점검을 하고 있다.


또한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을 정도충분한 권한도 주어진다. 건물 관계자들 또한 소방검사를 잘 받기 위해 부담스러울 정도로 소방서의 의견을 묻곤 하니 규정 검토나 연구를 게을리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한미군 소방관으로서 일할 맛을 느끼는 지점은 소방관이란 직업에 대한 존중과 예우가 각별하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부대 사령관을 비롯해 소위 정책을 결정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소방관 사랑은 각별하다.


부대 사령관을 비롯한 지휘부가 <불조심 강조주간> 행사 선포식 플래카드에 서명한 뒤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런 관심과 지지 덕분에 명예와 자부심이 충만한 소방관으로 성장해 갈 수 있다. 혹시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소방관이 행복해야 국가가 안전하다는 말.


우리는? 아직도 멀었다.

출동 대기 중인 119 구급차


소방공무원 시절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시도 때도 없이 접수되는 '민원'이다. 그런 상황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상당수의 민원은 안전이 기준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이기심에서 비롯되는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잘 처리되지 않으면 그때부터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 괴롭힐 구실을 찾는 악성 민원인들도 있다.    


예를 들면 "소방관이 국민이 낸 세금으로 월급 받으면서 일은 안 하고 운동만 한다". "시민이 준 커피 한잔도 뇌물 아니냐." "소방차에서 한가롭게 신문이나 본다." "(아프지도 않은 사람이) 구급차 태워주지 않는다." 건물의 소방시설이 규정에 맞지 않아 지적이라도 하면 "자세가 불친절하다"는 등등의 민원...


그래서 민원인을 대할 때는 자부심이나 명예, 권위 같은 것은 애당초 따로 잘 보관해두고 시종일관 민원인불편해하지 않도록 부탁하는 식으로 업무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소방관 티셔츠 하나만 걸치고 다녀도 사람들이 "Thank you for your service. (당신의 노고에 감사합니다.)"라며 응원하고 존중해 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민원이라는 이기심의 산을 넘어야만 비로소 소방기본법 제1조에서 정한 소방관 본연의 임무가 가능하니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소방기본법 제1조(목적) 이 법은 화재를 예방.경계하거나 진압하고 화재, 재난.재해, 그 밖의 위급한 상황에서의 구조.구급 활동 등을 통하여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을 보호함으로써 공공의 안녕 및 질서 유지와 복리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안전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아직도 국가가 모든 것을 다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안전에 관해서는 각자가 안전해야 할 권리를 당연히 주장할 수 있어야 하고, 또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의무를 성실히 지켜야 한다. 


얼마 전 한국 공군과 미 공군이 함께 근무하는 건물에 대한 대피훈련을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대피를 알리는 벨이 울리자 절차대로 건물을 대피하는 미군과 벨소리와는 상관없이 오히려 건물로 들어오는 한국 공군 사이에서 굉장히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주한미군 소방관으로 근무하면서 배운 점이 있다면 안전은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이곳이 나는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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