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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 Aug 05. 2024

도핑검사관의 정치

[도핑검사관, 파리를 달리다]

도핑검사관들이 활동하는 영역이 의외로 좁다 보니 올림픽에 한두 번이라도 참가했던 경험이 있는 검사관이라면 서로를 모를 수가 없는 구조다. 어제는 우연히 선수촌에 들렀다가 도쿄와 베이징올림픽 때 함께 근무했던 검사관들을 만났다. 이 먼 곳 파리에서 그들을 다시 만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도핑검사관들이 근무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도핑검사라는 분야가 정말 좁은 동네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각 나라별로 인증을 받아 활동하는 도핑검사관들의 숫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그나마 우리나라의 경우 약 80여 명 정도가 검사관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규모가 작은 나라의 경우 현재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10명 이내인 곳도 제법 된다고 들었다. 이렇게 적은 인력풀 중에서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필수 조건이 수반된다.


바로 ‘국제도핑검사관(International Doping Control Officer)’이란 자격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 더 부연해서 설명하면 이 자격은 2년마다 ‘국제검사기구(International Testing Agency)’로부터 재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개인이 혼자 하기에는 비용이나 절차적인 면에서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각 나라별 도핑방지위원회를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나라에서는 꿈도 꾸지 못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베트남 등 일부 국가 도핑검사관들이 이번 올림픽에 초청받지 못했다.


국제도핑검사관 자격증


도핑검사관을 전업으로 하기에는 수입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도핑검사관들은 따로 본업을 가지고 있다. 이는 외국에서 온 검사관들도 마찬가지다.


시카고에서 온 검사관 대니얼. 그녀는 현재 대학에서 근무하고 있다.


본업이 아닌 어찌 보면 부업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핑검사관들은 나름의 정치라는 것을 한다. 물론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별반 다르진 않을 것이다. 이번 올림픽을 위해 처음 단톡방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파리조직위와 친분이 있는, 특히 유럽 검사관들의 경우 우리의 상식을 초월한 고급 정보들을 무척 많이 가지고 있었다.  


아니, 이런 것들을 도대체 어떻게 알았지?

그때부터 뭔가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내 예감이 틀리지 않은 듯 유럽 검사관들의 돈독한 커뮤니티에 아시안 검사관들이 살짝 당황했을 법도 하다. 왠지 정보들이 차별적으로 제공된다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그런 건강하지 못한 생각보다는 업무로 승부를 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예정된 출근시간보다 2시간 전에 출근해 대기했고 검사를 한 건이라도 더 한다는 마음으로 업무에 임했다.


아무리 관계가 돈독하고, 정치를 잘한다고 해도 검사시간에 지각을 하거나 검사를 하면서 계속해서 에러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정치가 아닌 아부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히 한국에서 비슷한 도핑검사 프로그램으로 수 년동안 활용해서 검사한 덕분에 이번에 새로 도입된 도핑검사 프로그램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도핑검사는 많은 현장 경험, 스포츠에 대한 이해, 검사 경력, 그리고 선수 및 관계자와의 소통 능력 등이 중요하다. 그래서 나의 정치는 부지런함, 친절함, 성실함으로 모토를 잡고 전략을 세운 것이다. 다행히도 미국팀 관계자가 도핑검사를 마치고 도핑검사관에게 남기는 의견란에


도핑검사관 이건을 모든 국제대회 도핑검사에서 적극 활용하시기를 추천합니다.

라고 적어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정치란 개념이 그리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 현실에서 나는 내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그 정치를 대신하고자 한다.  


#Paris2024 #국제도핑검사관 #Play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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