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건 Aug 06. 2024

파리는 맛있다?

[도핑검사관, 파리를 달리다]

파리에 오기 전 꼭 한 번은 파리의 빵집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사람들이 많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그런 빵집 말이다. 평소 우리나라 맛집에 가서 조금이라도 줄이 서 있으면 바로 사람이 없는 가게로 메뉴를 변경하는 내 스타일과는 크게 다른 행보지만 그래도 파리니까 시도해 보기로 했다.


이른 아침 한 빵집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마치 파리지앵처럼 바게트를 들고 거리를 걷는 것은 보기엔 그럴싸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정작 아무 의미 없이 보여주기 위해 그 큰 빵을 들고 다니는 일이 얼마나 성가신 일인지 이번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다시는 이 몽둥이 같은 빵을 사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배가 고프지도 않았는데 반쯤 뜯어먹고는 가방 속에 넣어 버렸다. 아마도 빵을 사서 집으로 걸어가는 (하필이면) 멋지게 생긴 어느 한 파리 사람의 사진을 보고 나도 바게트 빵을 사서 들고 가면 그렇게 보여질 거라고 착각을 한 모양이다.


벌써 파리에서 맞이하는 14번째 아침이 되었다. 지난 3일 동안 파리의 이곳저곳을 걷다 보니 이제야 파리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내 숙소가 있는 18구에서 걷기 시작해 17구, 8구, 7구, 6구, 2구, 1구 등을 다니며 마치 탐험가처럼 새로운 것들을 발견해 내기 시작했다.


18구에 있는 벼룩시장


17구에서 본 색감이 예쁜 한 과일가게


파리를 흐르는 센강의 모습


벼룩시장에도 가 보고, 길에서 파는 양꼬치도 사 먹고, 동네 마트에서 장도 보고, 공원에 앉아서 빵도 먹어보고, 늦은 밤거리에 서서 혼잣말을 지껄이는 사람들을 피해 주류매장에도 가 보았지만 내 감정선에 문제가 있는 듯 별다른 감흥이 없다. 언젠가 누가 파리 이야기를 한다면 몇 마디 정도를 보탤 수는 있으리라.


깨끗하다던 센강은 우리 동네 하천보다 못하고, 에펠탑은 남산타워나 도쿄타워와 별반 다르지 않고, 일을 계획하고 처리하는 속도는 한국에 비해 많이 못 미치는 이곳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싶었던 것일까.


전에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 개최되었던 동남아시아경기대회 때도 그랬고, 도쿄올림픽과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에도 내가 보고 싶었던 것들이 선명했었는데 여기서는 답이 명확하지 않다. 다만 출국 전부터 파리를 달리자고 생각을 했으니 적어도 그것 하나는 달성한 셈이다.


또 하나 발견한 사실은 내 얼굴에 여러 나라가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자주 가는 편의점 사장님은 나를 중국사람으로 알았다고 한다. 한 며칠 “니 하오”라고 인사를 건네도 별 반응이 없자, 나중에는 “싸왓디 깝”까지 나온다. 그냥 이것저것 막 던져보는 것일까. 어제 마트에서는 점원이 나에게 “아리가또”라고 한다. 참으로 내 얼굴이 글로벌 한 모양이다.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고 그냥 그들에게 내가 이렇게 보일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


내일부터 4일간 또다시 임무가 시작된다. 어느 종목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파리에서 남은 4일이 후회 없도록 잘 마무리하고 싶다. 다시 올 것 같지 않은 파리가 아직은 나에게 덜 익은 맛으로만 느껴진다. 그래도 혹시 나의 우둔함으로 인해 맛있는 파리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짝 조바심이 생긴다.     


#Paris2024 #국제도핑검사관 #PlayTrue


   




  

이전 24화 도핑검사관의 정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