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검사관, 파리를 달리다]
지난 23일 파리올림픽에 온 이후로 잠을 서너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불규칙한 근무도 영향이 있었지만 도핑검사를 시작하기 전 대기해야 하는 시간이 6시간이 넘다 보니 아마도 피로가 겹쳤나 보다. 한 번은 선수를 기다리다가 깜빡 조는 일까지 있었다.
어제는 휴무였다. 돈을 쓰지 않으면서도 파리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숙소에서 에펠탑까지 달려 보기로 했다.
예전에 5킬로미터, 10킬로미터 달리기 대회에 수차례 참가한 경험도 있었고, 단 한 번이지만 하프 마라톤에도 출전했을 정도로 나는 달리기를 좋아한다. 전에는 기록에 신경을 썼다면 지금은 지면과 내 몸이 어떻게 협업해서 나를 받아줄지에 신경을 모으고 나만의 속도로 달리며 스스로와 대화하는 것을 즐긴다.
구글맵으로 목적지를 입력하니 숙소에서 에펠탑까지는 대략 6.2킬로미터가 나온다. 나쁘진 않은 거리다. 묶고 있는 숙소가 말이 호텔이지 거의 모텔에 가까워서 달리 할 일도 없었으므로 그나마 하루를 영양가 있게 채우기에는 최선의 선택이라 여겼다.
파리에 오기 전 처리해야 할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 여파는 이곳 파리에 와서도 계속돼 틈틈이 후속 처리를 하고 있는 중이다.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몸이 느슨해질 때 달리기만큼 좋은 게 없다. 스님들의 수행과 비교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나의 달리기는 내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신성한 의식과 같다.
에펠탑에 도착하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만의 추억을 남기려고 온갖 멋진 포즈가 동원된다. 마치 연습이라도 하고 온 것처럼 모두 멋지고 아름답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 한 통화. 내일 예정된 도핑검사가 취소되었으니 쉬어도 좋다는 내용이다. 그러면 원래 휴무였던 월요일과 화요일까지 연달아 4일간의 휴가가 주어진 셈이다.
처음에 파리에 왔을 때 지껄였던 불만은 어디 가고 쉬라는 전화 한 통에 “역시 파리가 은근히 나랑 잘 맞아.”라고 속삭이며 숙소로 발길을 옮긴다. 역시 나의 가벼움이란... 내일은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달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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