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검사관, 파리를 달리다]
펜싱 종목에 삼일째 출근을 해서 인지 이젠 경기장으로 가는 주변 길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첫날은 비까지 내려 출근길에 피로감이 상당했었는데 오늘은 왠지 발걸음이 가볍다.
파리올림픽에서 도핑관리실은 기본적으로 프랑스 검사관들이 매니저를 맡고 있다. 2021년 도쿄올림픽 때 상당수의 외국인이 영어를 무기로 도핑관리실 매니저를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랑 팔레 경기장에서는 외국인이라고 해야 고작 나 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도핑관리실 매니저인 끌레몽씨는 나를 배려해서 가급적 영어로만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굳이 불어를 사용해야 한다면 나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말을 하는 등 예의가 각별하다.
그의 이런 세심한 배려에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동안의 올림픽 참가 경험을 살려서 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옆에서 챙겨주는 일이다.
예를 들면 자원봉사자들이 작성한 서류에 오류가 있는지, 도핑관리실 내부가 청결하게 정돈되어 있는지 등을 살펴보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도핑검사를 한 건이라도 더 하겠다고 적극적으로 의사도 표명했더니 우리는 금세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 다른 문화와 배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함께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끌레몽. 그의 나이를 일부러 묻진 않았다.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나이나 직업과 같은 주변 것들로 그를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어서다.
본래 타고난 성품 때문인지 아니면 여러 경험을 통해 다듬어진 인품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상하고 배려심이 충만한 그 덕분에 도핑관리실 분위기는 매우 부드럽다.
올림픽에서 거의 대부분의 도핑검사는 팀 단위로 운영된다. 보통 반나절 이상을 함께 하기 때문에 상호 간의 존중과 협조는 기본이다. 이런 기본이 지켜지지 않아 자칫 오해라도 발생한다면 그 하루는 참으로 힘든 검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끌레몽씨는 중간중간 검사가 없을 때 나보고 경기를 보라며 경기장에 출입할 수 있도록 손목띠도 주는가 하면 밖을 둘러보며 바람을 쏘이라고도 한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이틀을 제외하곤 모든 일정을 끌레몽씨와 함께 한다. 그와 차를 한잔 하거나 맥주잔을 함께 기울일 수 있는 여유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파리를 더 잘 알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그에게 나는 무언가 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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