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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 Aug 09. 2024

어느 난민 선수의 눈물

[도핑검사관, 파리를 달리다]

한 선수가 울고 있다. 경기를 마치고 아쉬운 마음에 우는 선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서럽게 우는 선수는 검사관이 된 이후로 처음 보았다. 선수도 우리와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므로 기뻐하고, 슬퍼하고 또 눈물을 흘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올림픽 난민 선수단은 모두 37명으로 12개 종목에서 기량을 펼친다. 그들은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 때문에 자신의 국가를 대표하지 못하고 올림픽 난민 선수단이라는 이름으로 출전했다.


올림픽 무대에서 선수들이 겪는 긴장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4년이라는 긴 시간을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해서 기다려왔기 때문이다. 이런 압박감을 이길 수 있는 데에는 바로 국민들의 응원이 한몫을 차지한다. 하지만 난민 선수들에게는 자신들이 대표할 국가도, 또 자신을 공개적으로 응원해 주는 국민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더 힘이 들 것이다.


이번에 참가한 그 선수는 16강전에서 패했다. 우리는 금, 은, 동메달만을 기억하지만 종목을 막론하고 올림픽이라는 세계적인 무대에서 16명 안에 든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고개를 떨구며 경기장을 나온 선수는 자원봉사자의 안내에 따라 공동취재구역으로 입장한다. 이 구역에는 보통 10개 이상의 언론사가 대기하고 있다가 경기를 마치고 나오는 선수를 인터뷰하는데 아쉽게도 그 선수는 어느 언론사의 지목도 받지 못했다. 취재구역의 마지막을 돌아 나올 즈음 한 언론사가 그를 지목해 인터뷰를 요청했고 그는 대략 10분 정도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선수 대기실에서 감독님이 그에게 격려의 말씀을 해 준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던 선수는 갑자기 감정이 복받쳐 올랐는지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무엇보다도 엄마를 실망시켜서 미안하고, 또 연습한 데로 되지 않아서 매우 속이 상하다는 것이다.


그의 동료들이 하나 둘 찾아와 말없이 그를 안아주고 간다. 그렇다고 한없이 그 선수를 기다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상황이 바로 도핑검사관으로서의 애로사항이다. 승자를 검사하는 것은 선수도 검사관도 즐거운 일이지만 패자를 검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예전에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한 선수가 경기에 지고는 화가 나서 자신의 주먹으로 벽을 내려쳐 손에서 피가 나는 부상을 입은 적이 있었다. 그래도 도핑검사는 해야 하기 때문에 간단한 응급처치를 받은 후에 도핑관리실로 이동했는데 인간적으로는 그의 상실감과 분노를 충분히 이해하므로 검사를 하지 않고 그냥 보내주고 싶었지만 결코 그럴 수는 없다.


결과를 막론하고 도핑검사는 선수가 병원으로 후송되는 것과 같은 심각한 의료적 상황이 아니라면 반드시 해야만 하는 필수 과정이다.


결국 그 선수를 설득하기로 했다.


경기 규칙상 패자 부활전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렇게 울기만 해서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조금만 더 기다려줄 테니 일단 감정을 추스르고 나서 도핑검사를 받고 그다음 결과를 기다려보자. 아직 당신의 경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정 울고 싶다면 나중에 울어라. 

그제야 선수의 눈빛이 살아난다.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수건으로 눈물을 닦은 뒤 자리에서 일어난다. 팀 닥터와 함께 도핑관리실로 이동한 선수는 매우 협조적이었다. 오히려 유쾌하다고나 할까. 이렇게 쾌활한 선수가 얼마나 아쉬움이 컸으면 그렇게나 많은 눈물을 쏟았을까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검사를 마치고 선수가 적는 의견란에 좋은 도핑검사관을 만나 기쁘다는 코멘트까지 남겨 주었다.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이 오히려 다른 사람을 배려해 주다니... 이래서 올림피안은 아무나 될 수 없나 보다.


부디 오늘 그가 흘린 아쉬움의 눈물이 기쁨의 눈물로 승화되길 마음속으로 기도해 본다.


#Paris2024 #국제도핑검사관 #Play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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