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검사관, 파리를 달리다]
파리에서 맞이하는 16번째 아침. 오늘이 목요일이니 토요일까지만 일하면 이곳에서의 임무가 모두 마무리된다. 곧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를 아쉬움과 슬픈 감정들이 교차한다.
폭염이 있을 거라는 우려와 다르게 파리의 아침은 우리의 가을 날씨처럼 매우 선선하다. 8월에 들어서도 아침 평균 기온이 영상 16도에서 18도를 오고 가고 있고 겉에 옷을 하나 걸쳐야 할 정도로 살짝 추운 날씨다.
지난 4일 동안 꿀맛 같은 휴무를 보냈고 어제부터 태권도 종목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태권도도 펜싱과 같이 유서 깊고 고풍스러운 그랑 팔레(Grand Palais) 경기장에서 진행된다. 이곳은 펜싱에서 우리에게 이미 2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을 선사해 준 드라마가 쓰여진 장소로 기억되고 있다.
이번엔 또 어떤 감동의 시나리오가 쓰여질까?
역시 그랑 팔레가 금메달 맛집이 맞긴 맞나 보다. 어제 대한민국의 박태준 선수가 금메달의 발차기를 보여 줬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근무가 오전이어서 박태준 선수의 경기를 직접 보진 못했다. 금메달이 오고 가는 긴박한 상황에서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신나게 퇴근길을 걷고 있었을 것이다. 금메달을 획득한 사실도 오늘 아침 일어나서 뉴스를 검색하다가 알게 되었다.
태권도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집 근처 태권도 도장에 다녀본 경험이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국민 스포츠다. 또한 우리나라가 종주국으로서의 위상도 있다 보니 특히 태권도 종목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책임감과 부담감은 상당할 것이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 금메달을 획득해 소위 ‘금밭’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태권도는 2020 도쿄올림픽에서만 아쉽게도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이번에 그 아쉬움을 시원하게 해소해 준 선수에게 너무 고맙다.
04:00시 기상. 아침 9시에 경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한 시간 전에만 출근하면 되지만 이제 파리에서의 생활이 며칠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한 시간 한 시간이 아깝기만 하다. 아침에 도보로 출근을 해야 하나? 아니면 퇴근길에 걸어서 퇴근을 할까? 고민하고 있다.
도핑검사관은 보통 경기 시작 한 시간 전에 출근해야 한다. 도핑관리실 매니저의 경우엔 두 시간 전 출근이다. 각자 역할은 다르지만 출근하면 어떤 일들을 하는지 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히 소개해 볼까 한다.
1. 검사지시서(Mission Order, Testing Order) 검토
2. 대전표 및 일정표 확인
3. 도핑관리실 준비 및 검사인력 출근 확인
4. 검사 전 전체 회의
5. 자원봉사자 교육
6. 관계자 협조요청 및 선수 동선 확인
7. 도핑관리실로 선수 안내(동반)
8. 도핑검사
9. 선수 수송 등 기타 업무협의
10. 업무종료 후 브리핑
물론 이런 기본 업무 이외에도 검사대상 선수가 기권을 하거나 부상이라도 당해 병원으로 후송이 될 경우와 같이 특이사항이 발생하게 되면 업무는 더 추가될 수 있다.
이제 며칠 후면 올림픽이 막을 내린다. 비록 표시 나게 응원을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대표팀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며, 결코 아쉬움과 후회가 남지 않는 검사가 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다잡고 업무에 매진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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