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경비원의 189일간의 기록
2020년 5월 18일.
경기도 모 회사에 야간 경비원으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출근 며칠 전 진행한 면접에는 서너 명의 회사 임직원과 원청업체 팀장, 그리고 내가 속한 하청업체의 대표까지 참석했다.
평소 경비원이란 직업에 대해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이렇게까지 규모와 격식을 갖춰 면접을 본다는 것은 다소 의외였다.
집에서 오시려면 얼마나 걸리시느냐. 27킬로미터 정도 됩니다. 차를 가지고 오시느냐. 네. 그렇습니다.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근무인데 알고는 계시느냐. 열심히 배운다는 마음으로 일 하겠습니다...
훈훈한 분위기에서 몇 마디 이야기가 오고 간뒤 면접이 끝나자 굳이 합격이라는 거창한 말을 건네지는 않았지만 회사 이곳저곳을 소개해주는 모양새를 보니 안심해도 될 것이었다.
먼저 미술관 느낌이 나는 스타일리시한 본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식당, 카페, 체육관과 샤워실도 나쁘진 않다. 다만 1평 남짓한 경비실이 너무 작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으나 어차피 혼자 근무하게 될 것이었으므로 크게 문제 될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25년 차 소방관.
나를 항상 따라다니는 꼬리표. 6년 동안 일했던 대한민국 소방공무원을 사직하고 주한 미 육군, 그리고 현재의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소방서에 오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처세술에 관한 책을 독파한 것은 아니지만 상황에 순응하며, 또 때로는 그 상황에 역행하면서도 나름 잘 버티며 지내왔다. 그런데 나이 오십에 갑자기 경비원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평생 안정적인 직장은 없다.
그래도 소위 '신이 숨겨놓은 직장'이라고 찬사를 받았던 곳인데, 어느 날 갑자기 도널드 트럼프라는 희대의 캐릭터가 나타나 "Make America Great Again.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라고 외치며 방위비 분담금을 다섯 배로 올리겠다고 협박을 시작하면서 이 모든 사단이 시작되었다.
4월 1일.
미리 예고한 대로 무급휴직이 시작되자 주변 사람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일부는 돈을 더 올려 받으려는 미국의 협상술이라며 곧 해결될 거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언가 다르다. 대한민국 정부 역시 돈을 더 올려줄 수는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고수하면서 협상은 뿌연 안갯속으로 숨어버렸다.
설마 이렇게 끝나는 건가?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매월 받는 월급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어서 감사함마저 잊고 살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아니다. 아무도 나에게 돈을 주지 않으니 일자리를 구해야겠다는 초조함이 조여 온다.
처음 한 열흘 정도는 물류센터에서 일을 했다.
타이트한 근무환경은 물론이고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정해진 업무 없이 이곳저곳으로 팔려 다녀야 하는 상황이 꽤나 사람을 위축되게 만든다. 매일 아침 조회시간에는 안전하게 일하라며 강조하지만 막상 일이 시작되면 압도적인 업무량에 치여 안전은 생각할 겨를도 없다. 소방관으로서의 두 번째 좌절인 셈이다.
지역별로 배송될 상자들을 정리하고 출고될 물건을 파렛트 위에 고정시키는 랩핑 작업을 하면서도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내일은 다시 주한미군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 다음 주는? 혹시 이대로 끝난다면?...
무언가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구직사이트를 검색해 보니 경비원이나 보안요원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제법 눈에 띈다. 자세히 살펴보니 수료증이 필요하다. 아, 요즘은 경비원도 그냥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3일간의 <일반경비원 신임교육> 과정을 이수해야 하고 마지막 날에는 시험도 봐야 하네. 먹고사는 일이 정말로 녹록지 않구나.
고민은 길어질수록 비참해지는 법이다.
무언가 신속한 액션이 필요하다. 가까운 경비 학원을 찾아 제일 빠른 날자에 시작하는 교육을 받기로 하고 등록을 마친다.
돌아오는 길에 연거푸 두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이력서를 잘 보았다며 경비원 면접을 보자는 전화다. 왠지 느낌이 좋다. 한 곳은 도심지 번화가이고 또 다른 한 곳은 인적이 드문 외진 곳이다. 둘 다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 출퇴근할 때 도로가 막히는 것을 감안하거나 술 먹고 취한 사람들이 건물에 들어올 수도 있으므로 번화가는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선다. 그렇게 이곳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고작 몇 개월밖에 근무하지 않은 초보 경비원이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감히 누군가의 권익을 대변한다거나 또는 모두가 공감할 만한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어서만은 아니다.
평상시 같았으면 벌써 꿈나라에 가 있을 시간에 깨어있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늦은 밤과 이른 새벽. 그동안 내가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했던 또 다른 시간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해 보고 싶은 마음에서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 글을 통해서 누군가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경비원 분들의 시간과 노고에 대해 조금이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