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학원의 가르침 (1)

by 이건

지하철을 타고 학원으로 가는 내내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돌이켜보면 한 곳에 가만히 있는 성격이 아닌 까닭에 그동안 여기저기 참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꿈이 별로 없었던 20대.

그냥 안정적으로 먹고살기 위해서 노량진의 공무원 입시학원에 다녔고, 소방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어느 날 갑자기 캐나다로 이민을 가겠다며 대방동에 있는 스시아카데미에서 칼도 갈았다.


꿈을 찾아 방황했던 30대.

곡을 쓰겠다며 이대와 홍대 근처의 음악학원들을 무수히 오고 갔으며 미국에 쉽게 취업할 수 있다는 말에 넘어가 영등포에 있는 병아리 감별 학원도 다녀 본 기억이 난다.


갑자기 피식하고 웃음이 난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참 재미있는 놈이야... 웃음의 의미는 결코 내 삶이 부끄럽다거나 혹은 자조 섞인 비하가 아닌, 젊은 날 쉬지 않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찾았던 내 성실함과 부지런함에 대한 셀프 인정에 더 가깝다.


나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 즐겁다.

그래서 좋고 나쁨에 대한 내 기준은 재미와 보람, 그리고 설렘을 줄 수 있다면 망설이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경비학원으로 향하는 이번 여정은 딱히 설레지 않는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 결렬, 그따른 무급휴가,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너무 컸던 탓일까?


그나마 코로나로 인해 수업 내내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학원의 안내 문자를 받은 것에 안도감이 들었다.

누가 나를 알아보는 것은 아니지만 눈만 빼고 마스크로 얼굴의 대부분을 가릴 수 있다는 것이 지금의 나를 감출 수 있는 유일한 핑계가 될 테니까.


강의실에 들어서니 예상과 달리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섞여있다.

보통 경비원을 한다고 하면 퇴직을 하신, 그래서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어르신들이 많이 계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교육생 절반이 20대와 30대로 채워져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경비원 교육과 경력을 쌓고 <경비지도사>라는 국가 전문자격을 취득하면 경찰공무원으로 지원했을 때 가산점을 받을 수 있으므로 경호학과에 다니는 학생들의 참여도가 높다는 것이었다. 또 백화점과 출동 보안업체에서는 체력과 기동성면에서 뛰어난 20대와 30대를 선호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직도 난 우물 안 개구리로구나.

대한민국에서 45세를 넘으면 할 수 있는 일은 경비원 밖에 없어요.

첫 수업부터 내 멘탈을 깨부수는 강사의 말 한마디. 과목이 바뀌며 들어오는 강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나는 위로와 좌절의 롤러코스터에 올라타 있는 기분이었다.


자.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힘차게 따라 하세요.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경비일 하려고 하시는 분들이 너무 힘이 없어요. 더 크게 따라서 하세요.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용은 좋은데 왠지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열심히 일하겠다는 것인데도 왜 경비원이라는 타이틀은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드는 것일까.


대륙법계 국가와는 달리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경비원의 역할과 위상이 높다.

미국에서는 경찰관이 파트타임으로 경비원을 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돈의 값어치로 환산될 수 있는데 내 재산과 생명을 지켜주는 일이야말로 소중한 것이고 그 역할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경비업법, 범죄예방론, 시설경비 실무, 테러 대응요령, 사고예방대책, 체포와 호신술, 직업윤리와 서비스를 배우고 나니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다행히 강사님들의 너그러운 은총으로 예상문제를 쉽게 예상할 수 있었고 적어도 시험만큼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마무리할 수 있었다.


수료증을 받고 다시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보통은 외부 강의를 하거나 국회에서 발표를 할 때 이용했던 지하철이 오늘만큼은 왠지 슬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