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학원은 그야말로 다양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경기도에서 음식점을 오래 운영했다는 사장님. 장사는 잘 되었지만 가게가 너무 바쁘다 보니 가족과 다툼이 잦아져서 결국 가게를 접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한다. 아직도 인터넷에는 자신이 운영했던 가게가 맛집으로 나온다며 좋았던 과거를 소환한다.
또 다른 이는 직장에서 퇴직하니 남는 것은 시간뿐이라고 했다.
등산도 하루 이틀이지 3개월이 지나니 하루를 어떻게 메꾸어야 할지 고민하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고도 했다.
교육생 중에서도 제일 나이가 많은 어르신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듣고만 계신다.
얼굴의 주름살만큼이나 인생의 굴곡이 참 많으셨을 법도 한데, 그래서 풀어놓을 이야기보따리가 적지 않을 텐데도 끝까지 참고 있다. 마치 아이들이 서로의 장난감을 뽐내며 자랑하는 것과 같은 교육생들의 대화를 그는 그저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볼 뿐이다.
수업이 시작되자 저마다 과거는 마음속에 저장하고 다시 오늘을 바라본다.
내가 만난 경비학원의 강사는 군 장교 출신이거나 경찰서장, 형사과장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와 성찰은 때론 낯설고 불편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몸에 좋은 보약이라고 생각하며 한 글자 한 글자 메모를 이어간다.
경비원이 되려면 먼저 자신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한 강사의 말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왜 그럴까? 대개 세상은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받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래서 더 많은 연봉을 받기 위해 이런저런 스펙들을 만들고 자신을 멋지고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유독 경비원은 자신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인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그 의미도 종교인의 겸손과는 결이 다른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 강사는 친절하게도 자신의 친구 사례를 들어주었다.
고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한 친구에게 전화를 해 요즘 뭐하고 지내느냐고 물었단다. 그는 그냥 집에서 쉰다고 말했고 아직 젊은데 집에만 있으면 안 된다고 경비원 일을 해 보라고 권했다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경비일은 할만하냐고 물었고 교장선생님 출신의 그 양반은 화가 나서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이유는 아파트의 젊은 새댁이 자신을 무시했다는 것. 함께 자리 한 친구들로부터 동정을 바라고 한 소리였으나 친구들은 하나같이 너는 언제쯤 철이 들래? 그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쑥하고 기어올라오는 그놈의 성질을 버려야 경비일을 할 수 있다고 조언도 해 주었단다.
또 다른 강사의 말도 기억난다.
자신을 수 천명의 경비원을 관리하는 경비업체의 대표라고 소개하면서 우리에게 최선을 다하지 말라고 조언해 주었다. 자신의 경험상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사고를 친다며 80퍼센트 정도만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도 했다. 세상은 모두가 최선을 다 해라, 자신의 일에 열정을 쏟으라고 가르치는데 최선을 다하지 말라는 말에 잔뜩 굳었던 긴장이 풀린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창밖을 내다본다.
최선을 다하지 말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보았다. 짐작컨대 일을 대충 하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자신의 기준이 최선이라고 믿는 그 오만함을 내려놓으라는 말이 아닐까? 돌이켜보니 나 역시 최선을 다하겠다며 혼자 허튼짓을 한 적도 많았다. 내가 갇혀있는 이 우물 안은 대체 얼마나 좁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