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6시.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이다. 야간 경비원으로 일한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었다. 그 사이 회사 사람 몇몇과는 가볍게 인사도 나누는 사이가 되었으며 늦은 밤 순찰을 돌아야 하는 11개의 건물도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한 번은 수고하신다며 커피 한 잔을 건네받았다.
생산부서에 근무하는 한 직원의 따뜻한 마음 한 잔에 적지 않은 위로를 받았다. 저녁 늦게까지 일하는 그 청년이 더 고생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가 나를 챙긴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베풀어야 하는 나이에 받기만 하다니...
지난 4월 1일 아무 잘못도 없이 주한미군에서 쫓겨난 신세가 되었다.
졸지에 방위비 분담금 협상의 희생양이 되어 인정사정없이 내쳐졌다는 인정하기 어려운 사실은 내 마음에 크고 작은 스크래치를 내고 말았다.
하지만 이곳 회사는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회사를 잘 부탁한다는 말에 더 큰 책임감이 생겼다. 지난번에는 안전팀장이 살며시 다가와 인사를 하며 소방관이 저녁에 회사를 지켜 주시니 요즘 제가 편하게 잠을 자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하고 말을 해 주어 그 날 저녁은 순찰을 두 배로 돌았던 기억이 난다.
6월 15일.
마침내 75일간의 무급휴가가 끝나고 원래의 일터인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소방서로 복귀하게 되었다. 3일 전인가 미군 소방서장이 연락을 해와 귀띔을 해 주긴 했지만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고집불통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이 언제 또 변할지 몰라 선뜻 믿음이 가질 않는다.
그동안 함께 무급휴직자 명단에 오른 친구 두 명과 종종 술자리를 하면서 어려운 시간들을 버텼다.
서로 위로하고 함께 희망했다가 다시 좌절하고 결국 술에 취하고 마는 사이클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는지 모른다. 이렇게 75일을 버티는 것도 힘이 들었는데 비슷한 상황에서 나보다 더 오래 인내하고 기다려야 하는 분들의 마음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주한미군으로의 출근을 하루 앞둔 일요일 07시.
평상시처럼 출근해서 다른 날과는 달리 설레는 마음으로 경비업무를 시작한다. 회사 안과 밖을 한 바퀴 도는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가볍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
어제와는 확실히 다른 오늘. 인생을 큰 호흡으로 따져보면 결국 고통도 행복도 모두 찰나인가 보다.
갑작스럽게 복귀가 결정되니 한 가지 고민거리가 생긴다.
출근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그동안 호의를 베풀어준 경비업체 대표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마침 고용계약서에 수정할 부분이 있다며 경비실을 방문한 대표에게 다시 복직하게 되었다고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그렇지만 계속 일을 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피곤하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걱정스러운 얼굴의 대표가 말을 건넨다. 네. 저는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싶습니다. 힘드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경비원이라는 직업은 나에게 너무나 소중하다.
어려운 시간 나에게 희망의 등대가 되어 주었다. 1평 남짓한 경비실은 상처 받은 내 마음이 치유되는 공간이기도 했다. 다시 주한미군으로 복귀한다고 해서 훌쩍 경비실을 떠나는 것은 마치 힘든 시간을 함께 해준 친구를 배신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원래의 직장에 복귀해서 보니 사무실의 모든 것이 그대로다.
거울에 비친 내 유니폼이 어색해서 이리저리 맵시를 가다듬어 본다. 밤새 경비실에서 근무하고 다시 소방서로 출근한다. 간밤에 입었던 유니폼을 벗고 또 다른 유니폼으로 갈아입는 나는 소방관이자 경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