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동대원의 아픔

by 이건

모든 빛을 삼켜버린 이곳의 밤은 블랙홀이다.

몸도 마음도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 움직일 수 없지만 그래도 모든 것이 이해되는 시간과 공간.


새벽 1시.

갑자기 요란한 경보가 울린다. 올해 새로 지은 건물에서 경보가 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보안업체 대원 한 사람이 현장에 도착했다. 건장한 차림의 서글서글한 인상의 그를 이전에도 한 두어 번 본 적이 있었지만 그냥 서로 안녕하시느냐는 인사 정도만 나눴었을 뿐이다.


때마침 졸음이 몰려오던 터라 잠도 깰 겸 랜턴을 챙겨 그와 함께 건물로 이동한다.

깊은 어둠 속을 혼자 걸어가야만 하는 그의 길동무가 되어 주고 싶었다.

그는 새벽 1시나 2시에 출동이 걸리면 무섭다고 했다.

왜 그런지 묻는 질문에 그동안 묻어둔 마음속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한 번은 심야시간에 출동했다가 숨어있던 도둑과 마주쳐 놀랐다는 이야기, 늦은 밤 닫힌 문을 열어달라는 요청에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었다가 목을 맨 시체를 보았다는 이야기... 그 일 이후로 어두운 시간에 출동해서 현장을 확인할 때면 꼭 누가 자기의 뒤를 따라오는 듯한 섬뜩한 느낌을 받는다고도 했다.


내가 소방관으로 서울에서 근무하던 시절.

그 당시 막 생겨나기 시작한 보안업체 출동대원들을 현장에서 만나는 일이 많았다. 보통 은행이나 귀금속 가게, 그리고 보안이 필요한 건물에 화재 신고가 접수되었을 때에는 강제로 문을 열지 않고 보안업체 대원들이 문을 열어 줄 때까지 기다리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의 고충을 듣고 보니 소방관의 애로사항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4층에 도착해서 이리저리 살펴보니 다행히 무단침입의 흔적은 없다.

경보기 작동의 원인은 생각지도 못한 벌레였다. 감지기 내부로 작은 벌레 몇 마리가 들어가 움직이면서 오작동이 된 것이다.


마스크 너머로 안도의 미소를 확인하고는 계단을 내려오는 길에 그가 다시 묻는다.

선생님은 경비일 하시기 전에 어떤 일을 하셨나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 오늘 밤만은 솔직해지기로 했다. 그의 마음속 고백에 대한 예의라고나 할까.


저는 현직 소방관이에요.

야간 경비원으로 투잡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깜짝 놀란 그가 말한다. 제 꿈이 바로 소방관입니다.


갑자기 둘이 하나가 되었다.

우린 비록 서로 다른 공간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미 충분히 같은 형태의 아픔을 겪으며 일하고 있었다. 왠지 이대로 그를 보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성실함에 대해 격려도 해주고 싶었고 왜 수없이 많은 직업 중에서 굳이 소방관이 되고 싶은지도 듣고 싶었다.


새벽 2시.

찻잔 사이로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된다. 장교로 군대를 제대하고 대기업 출동업체 직원으로 일한 지 벌써 7년이 되었다는 그는 사실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25년 차 소방관인 내 경우만 봐도 신참 소방관 시절 현장에서 살려달라며 애원하던 이의 눈빛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또 누가 어느 자세에서 어떻게 죽었는지도 여전히 또렷한 기억으로 말할 수도 있다.


이제 겨우 서른 초반.

젊은 나이에 오랜 시간 극한 직업을 해 오고 있는 것을 보니 한편으로는 대견하고 존경스럽다. 차를 마시고 일어나면서 그는 요즘 사표를 내야 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다. 오늘도 자신이 아끼는 후배 한 명이 출동을 나갔다가 자살한 사람을 보고는 바로 사표를 내고 그만두어 마음이 아프다고도 했다.


세상에는 남들이 모르는 아픔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

바쁜 그를 계속 붙잡아 둘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서둘러 그를 떠나보내며 소방관의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뜻으로 책 한 권을 선물했다.


그 이후로도 간간히 그와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얼마 전 그가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동안 참 많이 수고했고 고생한 그 친구의 선택을 칭찬해 주었다. 내가 그의 입장이었어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