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이의 가르침

by 이건

친구가 하나 생겼다.

난 아직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자기 마음대로 와서 몸을 비비고는 일방적으로 나를 선택해 버린 거만한 아이다. 그날 이후로 팔자에도 없는 집사가 되어 물과 먹을 것을 챙기는 신세가 되었다.


아이의 첫인상은 그렇게 호감이 가는 타입은 아니었다.

하지만 얼굴 생김새와 달리 다른 야옹이들이 쳐들어 오면 언제나 줄행랑치기 바쁘다. 한참을 도망갔다가 몇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다시 돌아와 제 자리를 지키곤 한다.


녀석이 언제부터 집을 나온 것인지, 혹은 슬프게도 버려진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길에서 나고 자란 것인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이 아이에게는 살아가는데 최적화된 처세술이 있다.


다른 야옹이들은 사람을 피해 다니기 바쁜데 오히려 이 녀석은 회사 사람 모두를 자신의 집사로 만들어 버렸다. 누구라도 보면 다가가 곧장 벌러덩 누워 배를 한번 보여주고는 외모와는 전혀 다른 미성으로 '야옹'하면 신기하게도 모두가 마법에 걸리고 만다.


한 번은 회사 상무님이 퇴근하셔서 인사를 드리려고 경비실 앞에 서 있는데 이 녀석이 눈치 없이 다가와 마법을 거는 바람에 무척 곤란했던 적도 있다.


약하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는 녀석.

그가 처음부터 모두의 사랑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발길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치댄 성과다. 도망갈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길냥이들의 자기 방어 본능을 파격적으로 깨고 강한 친화력을 무기로 사람과 함께 지내고 있다.

특히 회사 여직원들의 사랑은 절대적이다.

이삼십 분 퇴근시간이 늦어지지만 그래도 개의치 않고 녀석의 애교에 여기저기서 까르르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그렇게 이름도 생기고 하루하루를 대접받는다.


이 아이를 보다 보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역시 모든 일이 나 하기 나름이구나. 상황을 피하고 도망 다니면서 스스로 거리를 두고 있는 다른 야옹이들의 모습이 왠지 나와 닮았다. 하지만 이 녀석은 다르다. 스스로 자기가 살 길을 찾아 만든다. 약한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강하다.


회사 이곳저곳을 다니며 환호하는 팬들에게 야옹으로 화답한 뒤 여유 있게 털을 고르고 잠도 잔다.

또 다른 고양이 몇 마리가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질투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이 아이 옆에는 항상 든든한 사람들이 있다.


이 친구를 보니 내공이 어지간한 직장 10년 차 이상이다.

회사 생활을 한다면 어느 정도는 성공할 것이 분명하다. 결국 내 첫 번째 친구 냥이는 그 능력을 인정받아 인근 식당으로 입양이 되었다.


친구야, 고맙다.

너에게 한 수 배웠다. 아, 그리고 지난번 네가 경비실 뒤집어 놓아서 꿀밤 한 대 때린 것도 사과할게. 미안해. 행복하게 잘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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