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그를 만난다.
경비원 면접을 보고 함께 채용된 사람으로 내 인생에 있어서 몇 안 되는 입사동기이기도 하다. 평상시는 서로 마주칠 일이 없다. 주중에는 격일로 각자의 긴 밤을 지켜야 했으므로 따로 일하다가 주말에나 만나서 교대를 한다.
업무 교대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끝난다.
한 주 동안의 특이사항을 전달하고는 오늘 날씨가 좋다든지, 휴식 장소가 불편하다거나, 다음 주에는 한 시간 늦게 교대하면 어떤지와 같은 가벼운 말들로 대화의 빈 공간을 채운다.
검은색 뿔테 안경에 선한 눈빛을 가진 그는 생김새처럼 순한 사람이다.
전혀 무례하지도 않고 말투가 거만하거나 어떤 일을 과장되게 말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확고한 소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서로 다른 날에 근무를 한다고 해도 몇 가지 업무는 통일을 해야 했으므로 가끔은 의견을 나누어야 했는데 이것이 논쟁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다.
30대 초반부터 15년 동안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 산업단지에서 일을 했다는 그는 "시키지 않은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하곤 했다. 괜히 혼자서 일을 찾아서 했다가 혼이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연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한 번은 회사 정문에 설치된 전동 철책문을 열어주는 문제로 목소리가 커진 적도 있다.
그 전동문은 도난방지와 경비를 위해 보안업체에서 정해진 시간에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게 프로그램을 해 놓은 것인데 우리 회사의 경우에는 밤 10시에 문이 닫히고 아침 6시가 되면 열리게 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밤 10시 이후에 퇴근하는 사람들과 아침 6시 이전에 출근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관건이었다. 어차피 경비실에 무선 리모컨이 있으니 우리가 직접 문을 열어주는 것이 어떠냐고 말을 해 보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설령 회사 임직원이라고 해도 정해진 시간 이후에는 직접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 맞다며 따로 지시를 받지 않았으므로 절대 열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왠지 답답한 벽이 느껴진다.
내 경우를 보면 공무원 생활을 할 때나 주한미군에서 근무를 할 때에도 시키는 일만 잘해서는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굳이 지시하지 않아도 센스 있게 일처리를 해야 생존할 수 있는 정글이다 보니 오로지 시키는 일만 하겠다는 그가 왠지 무능하고 무기력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를 탓할 수는 없다.
그동안 선의를 베푼다는 마음으로 했던 일들이 괜히 오지랖 넓은 사람으로 낙인찍혀 상급자로부터 시키는 일이나 잘하라는 책망이 그에게 큰 상처를 주었을 테니...
결국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 채 각자 사정에 맞게 하자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 회사 노사위원회에서는 늦은 밤 퇴근하는 직원들의 안전을 위해 경비실에서 정문을 열어주라고 전달을 해 왔고 그는 아무렇지 않게 지시에 따라 충실하게 자신의 소임을 한다.
내 생존의 비결은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었고, 그의 생존 비결은 지시받은 대로 충실하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도 크고 작은 문제들로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시키지 않으면 절대 하지 않는다는 그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