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평의 경비실

by 이건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느 낯선 길을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걷고 있다는 생각. 다시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별다른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닌 그런 상황 말이다.


75일간의 무급휴가를 마치고 원래의 직장으로 복귀하면 경비원 일을 그만두려고 했었다.

주변에서도 그렇게 무리하다가는 건강을 해칠 거라고도 했다. 올 겨울 내리는 눈까지만 쓸고 그만두겠다고 한마디 던졌지만 결코 빈말은 아니었다.


솔직히 내 이름이 왜 무급휴가자 명단에 올랐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다만 바보처럼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다는 무능함에 대해서는 단단히 화가 났었다. 나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일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해서 머물게 된 한 평 남짓한 경비실.

올 해로 4년째 주간에만 경비일을 하시는 어르신의 전용 공간이다. 회사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야간에도 사람이 필요하게 되어 추가로 채용하다 보니 작은 집에 식구만 더 늘었다.


경비실 안의 모든 물건들이 그 어르신의 역사다.

손때 뭍은 라디오, 미니 냉장고, 틈틈이 운동을 할 때 사용하신다는 아령도 있다. 경비실 안과 밖에는 이런저런 필요에 의해 선팅지를 붙여 놓았는데 경비실 안에서는 밖의 이곳저곳을 다 볼 수 있으면서도, 밖에서는 경비실 안에 있는 사람이 최대한 덜 보이도록 고려한 센스가 놀랍다.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넉살 좋게 그분의 물건들을 빌려 사용하고 있다.

졸릴 때는 그분의 라디오를 켜고 그분의 아령을 든다. 냉장고 제일 밑 칸에도 캔커피 몇 개를 슬그머니 채워 두었다.


어둠이 내리고 모든 불빛이 꺼지면 나도 어둠이 된다.

공군 헌병으로 군 복무를 할 때에도 비슷한 사이즈의 초소에서 하루 10시간을 근무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작은 공간에서는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다. 괜한 고민이나 잡념 없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으며 솔직한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일 수도 있다.

불이 꺼진 경비실.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며 지치고 상처 받은 몸과 마음을 어루만진다. 이 어둠 속에서는 더 이상 나를 꾸미지 않아도 된다. 혹여 누가 볼까 봐 내 모습을 과장하거나 점잖을 떨지 않아도 괜찮다.


그렇게 이 한 평의 경비실이 휴식처이자 피난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