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낙엽

by 이건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봄과 여름의 중간쯤이다.

나무를 무척 좋아하신다는 회장님의 취향에 따라 회사 곳곳에는 다양한 나무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장미와 해바라기 빼고는 아는 식물이 전혀 없는 탓에 계절에 맞춰 한층 자신을 뽐내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너는 참 예쁘구나라거나 아니면 네가 푸르러서 참 좋아라고 말하는 정도로 나름의 예의를 갖출 뿐이다.


젊었을 때 해군으로 복무하셨다는 어르신.

4년째 주간에만 경비일을 하시는 그분은 회사가 건물 2동으로 시작할 때부터 함께 한 원년멤버다.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자기 관리가 철저해 단단한 근육과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누군가의 손을 탄 것으로 보이는 젊은 감각의 어글리 슈즈도 챙겨 신는다. 하지만 대부분은 반들반들하게 손질된 구두를 신으셨는데 그것을 통해 그분의 성격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을 함께 보냈다.

오후 5시 50분. 어르신은 퇴근하기 전 자신의 몫으로 나온 김밥을 나에게 건넨다. 나는 요즘 다이어트 중이야. 배가 나와서... 맛있는 김밥이니까 버리지 말고 잘 챙겨 먹어.


네. 감사합니다.

조심해서 운전하시라고 인사를 드리며 이런저런 건강음료를 그분 손에 쥐어드리는 것으로 차곡차곡 브로맨스를 쌓아갔다.


하지만 그 우정이 시험대에 오른 것은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낮에는 모든 것이 밝게 보이므로 떨어진 낙엽이 여기저기 뒹구는 것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코로나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특별한 기술을 보유했다는 회사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바쁘다.


당연히 어르신의 일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본사 임직원을 비롯해 외부에서 오는 손님들이 많다 보니 안내도 해야 하고 수시로 전달되는 택배 물건들도 처리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경 쓰이는 일은 낙엽이라고 했다.

본인 스스로가 워낙 깔끔한 성격이기도 했지만 왠지 가만히 서 있으면 하릴없이 노는 것처럼 보여서 싫다고 했다. 그래서 하루 종일 낙엽을 치운다고 말씀하실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 양이 어떨지 전혀 가늠하지 못했다.


낙엽이 떨어지면 누군가는 지나간 추억을 회상한다.

누군가에게는 한 해가 어디쯤 와 있는지를 알려주는 시계가 되고, 또 다른 이에게는 글을 쓰거나 곡을 만드는 모티브도 될 것이다. 요즘도 낙엽을 곱게 닦아 책갈피로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제 아무리 쓸모 있는 낙엽이라지만 경비원들에게는 공공의 적일 뿐이다.

나도 처음에는 수양한다는 마음으로 낙엽을 쓸었다. 하지만 떨어지는 낙엽이 늘어갈수록, 거기에 바람이라도 불게 되면 사방에 누워있는 낙엽은 소위 깽판 치는 술주정뱅이와 별반 다를 바 없다. 비라도 흠뻑 맞은 낙엽은 세찬 빗자루질에도 전혀 움직일 기미가 없어 별 볼 일 없는 멘탈이 바닥까지 털릴 때도 있다.

한 번은 나무를 잘라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는 출근하면 항상 밝은 미소로 맞아주시던 어르신. 낙엽이 등장하면서 그분의 짜증도 늘어만 간다. 낙엽이 극성을 부리던 어느 날 "새벽에는 청소 안 하냐"며 마침내 성질을 내셨다. 저 역시 몸을 움직이는 거라면 누구 못지않게 자신 있지만 어두운 새벽에 보이지도 않는 낙엽을 치우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못내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고 말았다.


지금은 나무가 모두 옷을 벗었고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도 이미 지난 일이 되었지만 슬픈 낙엽은 내년에도 또 내 후년에도 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