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경비원

by 이건

지인 중 하나가 흥분해서 입에 거품을 잔뜩 물고 분통을 터뜨린다.

한 대형 물류센터에서 경비원으로 일을 했다는 그는 6개월 전 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사정은 이랬다.

그에 말에 따르면 한 사람이 경비실에 찾아와 마스크를 하나만 달라고 요청을 했고 때마침 회사에서 지급한 여분의 마스크가 있어서 별다른 고민 없이 주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직원들이 마스크를 잘 착용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회사를 방문한 감독관이었다는 것이다.


살짝 궁금했다.

왜 마스크 착용을 확인하러 온 감독관이 마스크가 없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그의 호흡을 따라가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급자 한 명이 찾아와 그에게 경위서를 쓰라고 했다는 것이다.

마스크 하나 때문에 이러는 것은 너무한 처사가 아니냐고 말하며 자신의 차에 있는 마스크를 가져와 손실을 메꾸겠다고 했으나 감독자는 회사 물품을 사적으로 사용했다며 경위서를 요구해 결국 사표를 던지게 되었다는 스토리다.


나 역시 지난 25년 동안 소방관으로 근무하면서 규정 속에 묻혀 살았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규정 때문에 때로는 답답하고 속이 상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토 달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그나마 안전하다는 배움도 얻었다.


드라마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생각 좀 하며 살아. 도대체 네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있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생각하는 경비원이 가능할까.


내 대답은 예스다.

경비원은 경비업무 매뉴얼에 따라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상황을 다 매뉴얼 속에 담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어느 시점에는 경비원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할 때가 온다.


어떤 이는 경비원의 생각은 필요하지 않다고도 말한다. 그냥 지시받은 대로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생각이 필요한 상황이 오면 상급자에게 물어보라고 하지만 사소한 일까지 매번 연락을 한다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렇다면 사소함의 기준이란 것은 무엇일까.

경비업무라는 것이 공경비, 즉 경찰이나 군인이 지켜줄 수 없는 사적인 영역에서 누군가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인 만큼 그 목적을 침해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경비업무 본래의 목적을 훼손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신속하게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그 지시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경비 본연의 업무에서 벗어난 역할을 요구받는 경우도 많다.

이미 많은 언론에서 다룬 것처럼 입주민 민원처리, 개인적인 심부름, 청소, 쓰레기 분리수거 등이 대표적이다. 때로는 회사나 아파트를 방문한 사람들의 분풀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경비원에게 경비 본연의 업무 이외의 것을 지시하는 것은 경비업법 위반으로 경비업체에게는 허가취소의 조치가, 그 일을 시킨 사람에게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는 사실을...


마땅히 법과 기준이 존재하지만 현실에서는 상식조차 증발해 버린 듯하다.

그래서 인생의 선배님들은 살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아예 생각을 하지 말라고 조언해 준다. 결국 인생에서 참고 또 참아야 하는 슬픈 무게감을 견뎌내려면 영원히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