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 해열제 없는 밤

by KON
ChatGPT Image 2025년 10월 11일 오전 12_35_27.png

새벽, 아기가 깨서 평소처럼 쪽쪽이를 물려주고는 아기 옆에 누워 함께 잠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의 인기척이 느껴져 눈을 떴는데, 아기가 쪽쪽이를 문 채 눈을 뜨고 숨을 거칠게 쉬고 있었다.

보통은 깨면 울거나 쪽쪽이를 문 채 다시 잠들곤 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기의 이마를 만져보니 너무 뜨거웠다.

느낌이 쎄했다. 급히 체온계를 꺼내 귀에 꽂았는데, 39도. 다시 재봐도 39도 이상이었다.

“잘못된 걸까?” 싶은 마음에 몇 번이나 다시 쟀지만 결과는 같았다.


남편은 다음 날 중요한 회사 발표가 있어 계속 재우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깨웠다.

남편과 함께 119에 전화해 5개월 된 아기가 고열 중이라고 말하니, 먼저 집에 해열제가 있는지 물었다.

그동안 사야지, 하며 미뤄둔 게 한꺼번에 후회로 몰려왔다.


해열제가 없다고 하니 세종에서 대전과 청주의 119로 전화를 돌려주었다.

야간에 운영할 것 같다는 소아응급실 정보를 문자로 보내주었지만, 두 곳 모두 연락은 안 되었고 차로 한 시간 거리였다.

막막한 마음으로 청주 소아응급센터에 가기로 결정하고 준비를 마쳤을 땐, 이미 열이 오른 지 30분이 넘은 시점이었다.


차를 타고 가는 길, 남편이 혹시 모르니 세종 충남대병원 응급실에 먼저 들러보자고 했다.

다행히 그날은 세종 충남대병원 소아 응급의가 진료를 보던 화요일이었다.


아기는 활발히 움직이고 눈이 마주치면 웃기도 해서, 의사는 "열이 나는 아이 치곤 컨디션이 꽤 괜찮네요"라고 했다.

부모 선택에 따라 엑스레이와 수액 처치를 할 수도 있고, 해열제·항생제만 받아 갈 수도 있다고 했다.

중요한 건 분유를 잘 먹는지 그리고 아기의 상태가 좋은지, 이 두 가지라고 했다.


결국 해열제랑 항생제만 처방받아 집에 돌아왔다. 아기는 약을 먹고 나서 열이 조금 내려 다행히 잠들었고, 남편도 잠시 눈을 붙였다가 다시 출근했다.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하필이면 가던 소아과 두 곳이 수요일 휴진이었다.

새로운 동네 소아과에 갔지만, 진료 스타일이 나와는 잘 맞지 않았다.

결국 차를 몰고 좀 더 큰 병원을 찾아 현장 대기를 해서 다시 진료를 받았다.


그 병원은 아기의 상태를 더 자세히 보겠다며 몇 가지 검사를 했다.

목에서 침을 채취하고, 요로감염 여부 확인을 위해 손끝에서 피도 뽑았다.

피는 잘 나오지 않아 몇 번이나 짜냈고, 아기는 아프고 놀라 울었다.

아기가 서럽게 우는게 안타까워 나도 같이 울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가슴이 두근거렸다.

의사는 검사 결과를 보여주며 말했다. 막대에 줄이 두 개 그어져 있었다.

“이거, 어떤 것 같으세요? 네, 코로나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병의 정체를 알게 되어 안도했지만, 동시에 죄책감도 들었다.

최근 며칠 동안 아기와 함께 병원을 자주 들락날락했고, 약속도 많았던 터였다.

다 내 탓인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이 주 뒤, 병원에서는 축농증이 왔다며 항생제를 처방했다.

코로나가 지나가고 나니 아기는 뒤집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다른 아기들이 뒤집기를 할 때에도 가만히 있던 아기라 걱정이 많았는데, 아프면 큰다는 말이 맞는 걸까 싶었다.


아기와 단둘이 집에 있는 시간은 백일 전의 나날을 떠올리게 했다.

그때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 이제야 조금은 알겠다.

그래도 지금은 눈 마주치면 웃어주는 아기가 있으니 조금은 덜 외롭다.


이번 일을 겪으며 해열제는 꼭 준비해둬야겠다고, 그리고 병원이나 밀폐된 공간에선 마스크를 꼭 씌우자는 다짐을 했다.

아기가 아프니 내 마음은 무너졌다.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고, 모든 게 다 내 탓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육아는 고되고 힘들지만, 하루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만으로도 참 큰 축복이라는 걸 느낀다.

지나간 여섯 달이 참 축복 속에 있었구나.


그리고 이제는 길에서 만나는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을 보며 생각하게 된다.

이 아이들도 언젠가 유아기를 무사히 지나온 거겠지.우리 아기도 그렇게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를, 매일 매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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