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윤구 Apr 17. 2021

스타트업 대표의 월급에 대한 마인드


스타트업 하는 동생이 직원들 월급주는게 힘들다며 전화가왔다. 얼마를 주느냐고 물으니 많진 않다고 하고, 직원들 지분이 있냐고 물으니 자기 지분이 100프로라고 하고, 수익쉐어를 해주냐고 물으니 그건 또 아니란다. 어이가 없어서 혼구녕을 냈다.

"사장놀이 재밌나? 네놈 힘든거 나도 겪어봐서 알지만 그걸로 힘들어하면 안된다. 미안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면 그만두는게 최선이다. 니가 뭘 해야 되는지 모르면 너도 직원들도 시간낭비, 돈낭비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실컷 욕을 얻어먹곤 훌쩍거리며 전화를 끊었다. 분명 뒤에서 내 욕을 했겠지. 하지만 때가 되면 내 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월급 이야기를 하면 노동법이 거지같다고 하는 대표들이 많다. 나도 겪어봤고 모르는 바는 아니나, 사업은 제도 안에서 할 수밖에 없고 알면서도 한 선택이니 악법이라도 따라야한다. 어디 제도 뿐이겠나 월급루팡들도 지천에 널렸지. 하지만 무능을 알아채지 못 한 것이나 알고도 잘라내지 않은 것 모두 대표 잘못이다. 심하게는 그 루팡이 다른데 가서는 일당백 장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지.
-

대표의 자질 중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만 꼽으라면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과 동료에게 명확한 베네핏을 제시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성장은 말그대로 순이익의 지속적 증가를 말한다. 사업은 헤엄과 같아서 멈추면 가라앉기 마련이다. 성장하지 않으면 대부분은 하락한다. 장기적 횡보가 힘든 이유는 경제적 요인 뿐 만 아니라 경쟁자의 출현 가능성, 그리고 지속적 거래의 어려움을 생각해보면 뻔히 알 수 있다. 내가 더 나아지지 않으면 반드시 더 나은 선택지가 생기게 마련인데, 굳이 후진걸 계속 쓸 이유가 있나?

두 번째로, 베네핏의 명확함이라함은 그게 당장의 캐쉬이든 미래의 가치든 가이드라인이 정확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의미인데, 명확하지 않은 베네핏의 단적인 예로 '잘 되면 어련히 알아서 주지!' 라는 명문화 되지 않은 약속이나, 통계적 자료나 논리적 과정없이 막무가내식으로 수립 된 불합리적인 인센티브 체계를 들 수 있다.

우선 베네핏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은 따지고보면 선투자를 하는 셈이므로 그 돈을 날리지 않을 자신감이 있어야한다. 자신감은 가능성에 비례하는데, 성장과정이 정확히 눈에 보이지 않으면 당연히 자신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1억 벌 수 있으면 1천 투자는 아깝지 않다.

그리고 서로간의 베네핏을 명확하게 짜려면 제안자 또한 상대방의 R&R을 깊게 생각해야 한다. 정말 그 값어치를 하는지, 그 사람이 꼭 필요한지, 그 사람이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하는게 무엇인지 등 이 거래에 대해 굉장히 깊게 생각해야 한다. 이 과정은 협상과 유사하다. '적절하게'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거래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테이블 위에 선지를 올리기까지의 과정이 상당히 귀찮고 어렵다.

때문에, 제안을 받는 입장에서는 이 까다로운 과정을 통해 제안자의 실력과 인사이트를 가늠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며, 나에 대한 인식 또한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성장과 명확한 베네핏 둘 중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제안자는 이 둘을 통해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사용할 분명한 명분을 획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걸 넘어서서, 전자가 없으면 사기꾼이거나 양아치고, 후자가 없으면 소액 소작농을 자처하는 멍청한 짓이기도 하니 어느 하나 포기하기가 어렵다. (하이리스크 로우리턴은 어느나라 투자법인가?)

이렇게나 중요한 대표의 두 가지 자질을 한 번에 체크하는 방법은 대표의 월급에 대한 태도를 보면 쉽다. 장기적 관점에서 회사의 성장이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 회사에 지분이 없거나 합리적인 수익 쉐어 계약이 없다면 - 보통 직원 입장에서 월급은 당연한 권리이며, 최소한의 교환이다. 아니, 합리적인 수준의 돈이 아니라면 오히려 돈 보다 시간이 훨씬 더 비싸다. 게다가 나이가 어릴수록 가능성이 많은 만큼, 시간의 가치는 어릴수록 더 큰 법이니, 나보다 어린 직원이 나를 위해 일 해 준다면 반대로 대표가 절하면서 "받아주십시오 한 달간 고생하셨습니다!" 라며 상납해도 모자라다. (물론 비약이다.)

이 모든 것들을 통취합해서 추측해보자면, 급여날을 두려워하는 대표라면 구체적인 비전이나 계획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있었더라도 자신이 없었거나, 디테일하지 못 했을 것이다. 그러니 성장은 눈에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고, 두려워서라도 베네핏을 명확하고 합리적으로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동료를 루팡으로 만들게 되고 그 결과로 성장은 커녕 월급 돌려막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어지는 것이다.
-

이런 상황을 모두 알더라도 당장은 어려운 대표들을 위해 미래가치를 지향한 투자형 베네핏이 있는 것이다. 그것 조차 싫다면 그 사업을 안 하거나 원맨쇼를 해야지. 원맨쇼가 가능한 체계를 갖출 실력은 없고 그 사람의 가장 비싼 시간은 후려치고 싶다면 직함이나 이름을 양아치나 도둑놈 정도로 바꾸는게 낫다.

그러니까, 월급주는 걸 생색내는 사장 아래 있다면 그냥 그만둬라. 이런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니 그 사업은 안봐도 비디오다.

그리고 사실은 나도 이렇게 망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실패의 가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