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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구 Aug 13. 2021

나의 학생들에게

여러분 안녕!

방학 한 달 잘 보냈어요? 드디어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자습하느라 고생한 긴 시간이 끝이 났습니다. 이 시간을 어떻게 썼느냐는 스스로 알 것이고, 그 과정은 결코 여러분을 배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잘 알겠지만 나는 여러 지도를 겸해야 하는 교사가 아닌 맡은 임무만 수행해내면 되는 강사지요. 하지만 어쩌면 교사보다 더 여러분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끌어주려 노력을 했습니다. 공부를 가르칠때는 그냥 공부 내용을 주입하며 가르치는게 아니라 여러분의 입장에서 (어떻게 보면 여러분에게 빙의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지 고민을 하고, 억지로 하게 만드는게 아니라 '할 수 있게'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공부 뿐 만 아니라 생활, 인성, 사고 등 다양한 방면에서 여러분보다 지랄맞은 부분들을 먼저 그리고 더 많이 겪어본 선배로서, 손해를 줄이고 이득을 늘리는 방법을 가르쳐주려고 노력했어요. 일기써라, 합리화하지마라, 거짓말하지마라, 계획한 건 반드시 다 해라, 나와의 약속은 어기지마라, 목표 하나만 생각해라 등 글로 다 쓸 수 없을 만큼 많이 했던 그 모든 잔소리들이 그러합니다.


이미 겪어본 친구들은 알겠지만, 처음에는 짜증나요. 니깟게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 하는 생각이 들수도 있고, 그냥 뻥 치고 넘겨야지 하면서 상황만 모면하려고 할 수도 있고, 대답이나 행동을 전혀 하지 않고 버틸 수도 있겠죠. 니가 뭘 지시하든 뭘 가르치든 내 알바 아니다 라면서요.


당연히 내가 지시한 말을 수행하는 과정은 처음에는 약간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근데요, 사실 그 고통은 잠깐만 참고 견뎌내면 금방 끝나고 이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마침내 시궁창 밖으로 나와서 내가 어떤 시궁창에서 살았는지를 볼 수 있게 되고 그제서야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게 될 거라고요. 그 공기를 마셔봐야 내가 살았던 시궁창이 얼마나 지저분한 곳인지를 깨닫게 되는겁니다.


그러나, 이 찰나의 고통을 인내하기 힘들어서 도망치고 합리화하고 거짓을 일삼는 친구들은 따지고 보면 이미 제가 시킨대로 노력하는 것 보다 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은 셈 일 것이고, 미안한 말이지만 앞으로는 더 많이, 크게 겪게 될 겁니다. 지금은 와닿지 않겠지만 여러분에게 채 얼마 남지않은 미성년자라는 보호막이 없어지는 순간이나 철저히 내 뒤에 계시던 부모님께서 힘이 빠지시는 순간 내 말 뜻을 처절하게 깨닫게 될 겁니다. 그때는 이미 늦었어요. 두렵다면,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 쌓아온 업보를 청산해야 합니다.


사실 이번 방학은 여러분 뿐 만 아니라 나에게도 여러 의미가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강사 생활을 한 지도 10년이 훌쩍 더 지났는데, 이번 방학이 가장 감회가 새롭기도하고 한편으로는 고통스럽기도했습니다. 그와 함께 나의 역할은 무엇인지, 무엇을 어디까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고민하게 한 여러분에게 감사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나에게 준 숙제를 풀면서 다시 한 번 나를 성장 시킬 재료로 쓰려합니다. 나와 마찬가지로, 나의 이런 고민과 함께, 어떤 학생에게는 이번 방학이 장족의 성장의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여러분의 증폭기일 뿐이지 제작기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더 노력하면 할수록 나는 그걸 더, 더, 더 증폭시켜줄 수 있지만 0 x 100 = 0 일 뿐 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혹시라도 있을 여러분의 노력에 대비해서 그걸 증폭시킬 준비를 할겁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과정에 대응하는 정당한 대가가 있기를 바랍니다.


2021년 8월 13일.

방학을 마치며.

여러분 모두를 내 조카처럼 생각하는 선생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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