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male Feminist

저는 남성 페미니스트 입니다.

by 도윤구


오랜시간 함구해온 작금의 "레디컬"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고자 합니다.

(이 글은 시중에 판매중인 페미니즘 서적과 온라인 상에서 열람 가능한 여성학 관련 논문을 공부한 후 작성되었으며 전달을 위해 높임법을 쓰지 않았습니다.)





2014년 부터 현 시점까지 약 4년가량, 특정 사건 하나를 콕 찝을 수 없을 만큼 다수의 사건의 근원이 남녀간의 대립구도에서 출발하고, 전혀 엉뚱한 사건에서부터 이로 매듭 지어지는 등 현재 대한민국에서의 남녀갈등의 골은 날이 갈수록 더 깊어지고 있다.




"레디컬" 페미니스트 (이하 그) 들은 굉장히 다양한 문제들을 근거 삼는데, 특히 당위성을 갖추기 위해 남녀간의 임금격차, 고위직 비율 등을 핵심 근거로 하여 깨지지 않는 유리천장과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사실 문제를 제기한다기 보다는 '공격'한다.


물론 이는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들의 주장처럼 남녀간의 임금격차는 명백히 존재하고 있고 고위직 남녀 비율 또한 개똥망(?)이다.







하필 OECD 국가중 성별 임금 격차 비율이 가장 큰 나라가 우리나라인 것은 오래 이어져온 유교적 관점에서의 가부장제를 배제할 수 없다. 유교는 과거에 여성에게 제한을, 남성에게는 책임을 요구했다. 때문에 오랜 시간 남성은 경제력, 책임감이라는 남성다움에 묶여져 있었고 여성은 말그대로 여성성을 강요당했다. (아직 온전히 씻겨나가지도 않았고.) 여성들에게는 경제적 기회가 적었고 반대급부로 남성들의 일과 책임은 컸다. 때문에,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임금격차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맞다.
안타깝지만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차별받는다. 하지만 이는 경제적인 부분이 아니라 이념이나 사회적 문제에 가깝다. 사실 임금격차는 성차별에 대한 결과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노동력에 대한 차별의 결과이며, 비단 대한민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유사하게 발현된다. 쉬이 말하면, 이 외에도 여러 이유가 더 있을 수 있겠지만 주 원인은, 남녀는 신체적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라도 의도치 않은 노동력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임신, 출산으로 인해 생기는 공백이 여성의 경력단절을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경제적 격차에 영향을 가하고 있을 뿐이며, 아쉽게도 이는 현 노동정책으로는 개선할 방법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문제들은 당연하게도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겠지만 쉬이 해결할 수 없다. 자본주의 국가의 핵심 이념은 모든 가치를 경제적으로 환산하는 것이며 이윤이라고 일축할 수 있다. (피해를 계산할 때마저도 이윤으로 전환 가능한 가치에 따라 계산하기 때문에 같은 사건이더라도 피해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계산값이 도출된다. 팔이 잘려도, 눈이 멀어도 피해자가 그로 인해 손해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다.) 하기에, 상대적으로 이윤 창출에 손해가 될 수 있는 선택을 선호하지 않는 것이다.


그와 관련되어, 대한민국이 채택하고 장려하는 노동 방식 즉, 대부분의 기업이나 단체가 채택하고 있는 노동의 방식은 출퇴근시간과 일일 업무 시간이 고정되어 있는 형태로, 임신 및 출산 시 이 형태의 노동이 불가한 여성의 경우 어쩔 수 없이 휴직을 하거나 퇴사를 해야한다. 대안이 별로 없다. 국가적 노동 정책 또한 이를 장려하고 제한하며 기업 및 기관의 자주적 선택을 구속한다. 때문에 국가에 소속된 단체는 국가의 정책에 포함될 수밖에 없으며 거시적 시각에서의 정책적 개선이 있기 전에는 궁극적 문제 해결이 어렵다. 이러한 시스템 때문에라도 여성은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지만 이는 남성이 만든 시스템이 아니며 지난 세월동안 누적된 수 많은 노동자들와 사회가 빚어낸 업무 형태일 뿐이다. 현존하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너무 쉽게 말하는 듯 하지만 이는 제도와 대책 마련을 통해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며 대부분의 구성원이 고대하는 바다. 하지만 현 정책은 언 발에 오줌만 갈겨대고 있다. 시스템을 개선하고자 하나 인위적이고 일시적인 탓에 궁극적 개선과는 거리가 멀다. 대안은 노동의 형태에 자주성을 주는 등의 노동개혁 뿐이다.

여가부나 노동부는 단편적이고 불합리적인 강제적 제도가 아니라, 합리적이고 공정한 대안과 대책을 마련하여 유능한 여성들의 경력 단절을 막아야 하며 창조적 파괴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정부는 세무, 법무 외에는 기업과 시장에 그 어떤 제제를 가해서도 안 된다. 제제를 가하는 것은 도리어 여성에게 더 나쁜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경제적 격차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는 보편적인 남성이 아니라 이곳을 향해야 한다.


휴가일 수 법적 보장

휴직 후 복직 법적 보장

여성 채용 비율 유지

여성 임원 비율 유지


과연 이런 표면적인 정책들은 여성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상식적으로만 보더라도 기업은 여성을 점점 더 기피할 수밖에 없다. 여성 뿐 만 아니라 이윤 창출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모든 노동자들도 같은 궤도 선상에 있다. 그러니 이는 양성대립이라는 전쟁을 통해 쟁취할 전리품이 아니라 개선되어야 할 시스템의 일부일 뿐이다.




이 뿐만 아니다. 그들은 이유 없는 단순 대립을 통해 갈등만 조장, 심화하거나 개선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불만, 그리고 지나친 비약을 통해 본인들의 기반을 되려 약화시키고 있다. 근거없는 주장과 지나친 비약은 되려 독이 된다.


얼마 전 래퍼 산이와 레디컬 페미니스트 래퍼가 디스전을 펼쳤다.


산이가 여성혐오라는 단어의 뜻 조차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에는 동감하나, 그를 조롱하거나 공부하라며 대화 자체를 단절하는 것은 일종의 책임회피 일 수 있다. 의무는 아니지만 아는 자는 무지한 자에게 지식을 나눠주며 대화의 창구를 열고 공존을 모색할 권리가 있는데, 동일 주제로 대화하기를 원한다면 의무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그들에게 큰 문제가 발생하는데, 설득할 수 없는 수준의 학문적 지식으로는 단연 설명할 수 없고, 만에 하나 그 수준으로 남을 가르치게 된다면 선무당이 사람잡는 격이 되어 잘못된 지식을 전파하게 될 수 있다. 이 것이 잘못된 투쟁의 근원이다.



강간하지 않기
폭행하지 않기
살인하지 않기



너무도 당연하다.

굳이 말 해야 하는건가?
이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중대 범죄다. 이런 것들은 여성 뿐 만 아니라 남성도 자유롭지 못한 강력범죄지만 남성에 비해 비교적 신체조건이 다소 부족한 여성들이 이들 범죄에 더 쉽게 노출된다는 것이 그들을 불편, 분노하게 한다.

막을 수만 있다면 온 힘을 다 해 막고 싶다만, 이는 범죄자 개인이 만들어내는 문제다. 안타깝게도 범죄 방어체계(시스템)가 갖춰지더라도 개인이 막을 수 없는 부분이며, 초일류 국가에서 마저도 시스템을 통한 범죄 예방은 아직까지는 어렵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방범 시스템 정도가 되지 않는다면 개인의 정신질환, 우발적 범행, 계획적 범행 중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이를 문제 삼고 "남성의 잘못. 하지 말라는 걸 왜 하는데?" 라고 하는 것은 떼나 억지에 가깝다. 어떻게 해도 정상적인 남성들은 막거나 고칠 수 없다. 범죄자 개인이 마음을 고쳐 먹는 것 밖에 방법이 없고, 누구라도 타인의 생각은 읽을 수 없다. 누가 정신질환자 인지, 누가 미래의 범죄자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는 보편적인 남성의 문제도, 시스템의 문제도 아니고 교육의 문제. 인성 교육의 부재가 가져오는 결과에 가깝다. 즉, 이 또한 시스템의 문제일 뿐이다. 이 문제에서 또한 그들의 분노는 제도와 시스템을 향해야 한다. 모든 남성들이 잠재적 범죄자라는 것은 그야말로 비약이며 그 자체로 모욕이다.




우리나라와 인도에서만 낙태약을 팔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여성 인권 수준은 인도 수준 ..


비약이다. 단순 사례일 뿐이다.
낙태는 여성에게 모든 선택권이 주어져야 하고 합법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 당연히 낙태약도 판매되어야 한다. (개인적 견해로) 하지만 이를 근거로 하는 주장과 결론이 잘못되었다. (단편적인 것을 전체로 확대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판단은 없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뇌가 있으니 아인슈타인과 동급이다.) 현 레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억지와 비약을 남성들에게 쉬이 내뱉지만 이는 되려 그들의 뿌리를 약하게 만든다.





그러면 안되지만, 그들의 억지와 비약에 울컥한 남성들은 군무새로 변한다.



여자는 왜 군대 안 가?



하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이 원하는 것은 여성의 일반사병 입대가 아니다. 군대는 힘든 곳이며 보통의 여성들이 적응하고 생활하기에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대부분의 군필 남성들은 인지하고 있다. 당연히 내 어머니, 내 가족, 내 친구, 내 배우자가 그 곳에서 강제 노역에 가까운 생활을 하길 원하는 남자는 채 얼마 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 또한 억지다. 안되는 걸 알면서 굳이 말해 뭐 할까. 하지만 조금 더 유치할 뿐, 억지를 부린다는 것에서 그들의 억지와 방식은 거의 같다.






모든 싸움에는 갈등이 있고 갈등에는 요구가 있다.

요구에는 결핍이 있고 결핍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작금의 양성대립에는 짧게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갈등이 있다. 결핍도 있다. 또, 그 결핍을 야기하는 문제 또한 조금만 사유한다면 인지할 수 있다.

보통은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얻기 위한 투쟁이 벌어진다. 그래서 대다수의 투쟁에는 명확한 목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주장하는 모든 것의 근원적 해결책인, 궁극적 요구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을까? 그들의 투쟁에 목적과 요구가 드러나있던가? 그들의 투쟁에는 요구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요구는 억지이며 비약된 비방은 의미가 없다.





전쟁은 서로 다른 정의의 대립일 뿐 악과 악의 대립이 아니다. 이성간의 전쟁은 아무 의미가 없고 결론이 없는 싸움이다. 그러니 여러모로, 우리 모두에게, 직접적인 요구가 더 승산있는 전략이다. 정당한 요구를 통해 남성들의 협력을 촉구하라.


그러니까, 이제는 차라리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를 명시하고 그를 위한 투쟁을 하라.
시스템 개선을 위한 요구를 하라.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요구하라.
유리천장을 부술 수 있는 정당하고 합리적인 제도적 장치를 요구하라.

그런 투쟁이라면 다수의 남성들도 지지하며 함께 할 테니까.


찾고 있는 것이 악어떼가 우글거리는 늪 속의 진주라면 차라리 진주를 내어 달라고 하는 것이 옳다. 악어들에게는 진주가 필요치 않으며 진주를 찾는 그들의 손길로 인해 가만히 잠자던 녀석마저 다치는 상황을 원치는 않을테니까. 먼저 꺼내 줄 수도 있다.




2016년 한국일보가 한국, 브라질, 덴마크, 일본 국민을 대상으로 다시 태어나도 자국민이 되고싶은가 하는 조사를 했다. 부정적 응답 중 40%가 한국인이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20대의 54%가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다시 태어나도 내 나라를 택하겠다는 사람이 자기 나라에 특정 문제를 제기한다면 사회를 개선하기 위한 건설적 비판이며 미래지향적이고 낙관적이겠지만, 부정적 견해를 보인사람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벼랑끝에서 지푸라기를 잡는 형태로, 수에 몰려 지르는 비명에 가깝다.


후자의 인권담론이 팽배한 사회 구성원들은 자존감이 낮고, 대안이 없으며, 타인과 자신에 대해 폭력적 성향을 띤다. 이 사회에서 거론되는 인권은 절망과 불만을 다르게 말한 것일 뿐이다.

표면적으로는 똑같아 보이는 문제제기라 하더라도 그것을 주장하는 사회와 구성원, 즉 배경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로 해석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질이다. 인간은 이성과 논리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서로를 감성적으로 이해하고 대화해야 수용할 수 있다. 지금의 대립 형태로는 인권 해결은 커녕 갈등만 깊어질 뿐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 것임은명하다. 오직 소통과 화합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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