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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꿀꿀 Aug 13. 2022

늙은 개와 함께 사는 일의 기쁨과 슬픔

늙은 개 박금동의 이야기

우리 집에는 만12세의 늙은 개 박금동이 산다.

이 작은 개가 사람이었다면 초등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되었다. 개의 시간으로 치면 대략 70대 할아버지쯤 된 셈.


금동이는 여러번의 파양경험으로 겁많고 예민하며 사나운 개가 되었다. 처음 키우기 시작했을때 나는 17살이었다. 처음엔 침대에 변을 봐놓기도 했고, 산책을 나가면 다른 개와 사람들에게 사납게 짖어대 항상 사과를 해야 했으며(이건 지금도 마찬가지.) 밤에 물을 마시러 깬 가족에게도 왕왕 짖으며 달려들어 가족들을 전부 깨운적도 여러번.(이또한 지금도 마찬가지.) 정말 키우기 만만치 않은 개다.


그런 금동이가 늙어간다. 개에게도 검버섯이 피는 줄은 처음 알았다. 피부는 얇아졌고, 자꾸 염증이 덧난다. 산책을 나가면 들어올 생각이 없던 개가 이제는 10분만 걸어도 집에 들어오고싶어 한다. 한시간넘게 인형물어오기 놀이를 하던 강아지가 이제는 잠만 잔다. 그렇게 에너지가 넘치던 금동이가 이제는 늙어간다.


나는 잠에 들다가 금동이가 조용하면 문득 두렵다. 금동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어쩌지. 내가 금동이없이 살수 있을까? 금동이가 없을수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죽음이란 사실 자연스러운 것이고, 나도 언젠간 사라질 존재라는건 알지만 그래도 나는 두렵다. 금동이에게 맨날 속삭이고는 한다. 금동아, 10년만 더살자. 진짜 이기적인 생각이긴 한데, 내가 불혹의 40살이 될때까지만 더 살아줘. 네가 사라져도 내 인생이 너무 뿌리째 흔들리지 않게 말이야.


나는 고등학교 1학년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무도 없는 텅빈 집에서 금동이가 꼬리를 흔들며 뛰쳐나와 짖었다. 그러면 나는 금동이를 데리고 나가 동네 여기저기를 산책다녔다. 풀잎이 돋아난 천도 거닐고, 금동이와 함께 나무다리 위에서 멍하니 앉아서 햇살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같이 바람을 맞으며 햇빛에 반짝거리는 하천을 바라보기도 했다. 우리 가족들은 그때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냈고 나는 자꾸만 조각나는 마음들을 의지할 곳이 아무데도 없었다. 그때  곁에 금동이가 있었다. 남들에겐 몇번이고 버려졌던  사납고 작은 개가 내게는  누구도 주지 못할 위로와 위안을 주었다.


금동이가 내게 가르쳐준 가장 큰 것은 단언컨대 사랑 그 자체다. 나는 원래 예쁜 개란, 작고 하얗고 털이 복슬복슬하며 아무데서나 배를 뒤집는 애교많은 개라고 생각했다. 그런 개를 키워야 사랑할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목청이 찢어져라 사납게 짖어대고, 연탄재처럼 잿빛의 털을 가진 금동이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사실 사랑의 대상은 어떤 형태든 어떤 모습이든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랑은 그저 함께 보낸 순간들, 함께 나눈 풍경, 시간들 그 자체라는 걸.


어제는 금동이를 위해 오트밀과 고구마, 당근과 코코넛 오일과 꿀을 넣은 비건쿠키를 구웠다. 오늘은 금동이가 산책을 좀더 오래 즐길 수 있게 반려견 유모차를 주문하며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서 사랑하는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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