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왜 위험하게 혼자 여행을 가는 건데?
퇴사 후 두 달간의 발리여행을 맹장수술로 끝마치고 귀국한 뒤, 나는 주변의 걱정을 한 몸에 받는 신세가 되었다. 이젠 더 이상 해외에 혼자서는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바람과 주변의 걱정들을 뒤로하고 나는 이틀 전, 인도행 비행기티켓을 구입했다. 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혼자서 여행을, 그것도 인도여행을 떠나겠다고 하니 친구 하나가 물어왔다.
-대체 왜 인도여행을 가려고 하는 거야? 유튜버들 보면 인도여행이 최악이래. 무섭지 않아?
나는 답했다.
-인도 카레랑 난을 꼭 현지에서 먹고 싶어. 그래서 가야 돼.
우리는 함께 웃었다. 물론 내가 카레에 진심인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주변의 걱정을 들으면서도 내 고집대로 여행을 강행하는 진짜 속내는 이랬다.
'무섭긴 해도 그만큼 궁금한 곳이라서 더 가보고 싶어. 뭔가가 두려워서 하고 싶은 걸 못하는 게 죽기보다 더 싫으니까. 길을 가다가도 죽을 수 있는 게 사람 인생인데, 조심하느라 원하는 걸 참아가며 100살까지 사는 걸 목표로 하는 인생보단 차라리 원하는 여행을 하다 죽는 삶을 살고 싶어.'
그러면서도 스스로도 마음 한편엔 의심과 두려움을 품고 있던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용기가 아닌 치기를 부리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여러 생각들을 하던 와중에 철학을 공부하는 가족의 추천으로 니체의 철학에 대한 책을 읽었다. 고등학생 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여러 번 읽기를 시도했다가 너무 어려워서 매번 포기한 뒤로 니체는 어려운 철학자라는 인식만 남아있었는데 이게 웬걸, 나는 니체를 알기 쉽게 풀어내준 이 책을 읽고 니체에게 완전히 빠져버렸다.
그간 나는 행복한 삶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다. 풍족한 의식주를 누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화목하고 따뜻한 가정 안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걱정거리가 없는 평온한 삶. 나는 그런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했고, 행복을 위한 길은 내겐 멀고도 험난해 보였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선 물질적으로 풍족해야 하고, 걱정거리나 힘든 일이 생겨서는 안 됐다. 그러나 내게 닥쳐오는 현실은 그 반대였다. 예기치 않게 생기는 어려운 일들은 자꾸 나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만 같고, 자기 전엔 Sns를 보면서 타고나길 많은 것을 타고나 걱정거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면 떠오르는 물음들은 자꾸만 나를 괴롭혔다.
왜 내 인생은 산너머산처럼 느껴지는 걸까?
왜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하는 걸까?
그런데 이 답도 없는 암울한 질문들에 니체가 답하면서 나의 어리석었던 세계가 박살이 났다. 니체는 행복한 인간이란 평온하고 안락하며 걱정거리 없는 삶을 사는 인간이 아니라고 말한다. 진정 행복한 인간이란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며 스스로의 힘을 고양시키고, 강인한 힘을 기르며 느끼는 인간이라는 것. 그렇기에 인간은 오히려 고난과 시련을 찾아다녀야 하며, 고난과 시련이 닥칠 땐 오히려 그것을 반가워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들을 극복하며 자신의 힘을 느끼고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그래서 진정 강인한 사람은 고난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삶을 아름답게 바라보며, 충만한 생명력으로 춤추듯 살 줄 안다고 말한다.
한 시인이 떠올랐다. 평생을 가난과 질병에 시달렸음에도 하늘로 돌아간다면 세상이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던, 삶이 소풍이었다고 비유하던 시인.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귀천>
이 시를 처음 읽던 때부터 지금까지도 나는 이 시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그렇게 평생을 가난과 질병에 시달렸으면서 삶을 소풍이라고 말한다고? 세상이 험난하단걸 누구보다 더 잘 알 텐데 세상이 아름다웠다고 말한다고? 속으로 그렇게 진정성을 의심해 왔던,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남아있던 시. 그러나 니체가 말하는 초인의 정신을 가진 행복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는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 충분히 강인하고 생명력에 가득 찬 사람에게 세상과 삶과 운명은 그 존재만으로 아름답게 여겨질 것이다. 마치 소풍 나와 몇 개의 돌부리를 뛰어넘고 두 손에 흙을 잔뜩 묻혀도 세상이 좋아죽겠다는 듯 다시 웃으며 뛰어가는 어린아이처럼 인생을 산다면.
이제는 알겠다. 고통이 없어야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관념 안에서는 행복할 수 없었던 이유를. '왜 살아야 하는가', '왜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가'라는 질문들에 답이 없었던 이유를. 잘못된 질문들이었기에 답은 없었다. 고난과 불행과 삶에 의미를 찾으려 한다면 영영 찾을 수 없어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것들에는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고생 끝에 낙이 있으리라는 믿음이나 신은 이유 있는 시련만을 선사한다는 믿음들은, 니체의 말에 따르자면 그 모든 것엔 실로 아무 의미도 없다는 고통스러운 사실을 외면하고 싶어 만든 나약한 인간의 허구일 뿐이었다. 그러나 의미를 찾는 것을 그만두고 현재의 고난을 극복하는 생명력 넘치는 자신을 사랑한다면 진정 행복한 삶으로의 길이 열릴 것이다. 문득 나와 내 주변의 모든 고난과 시련을 겪어내고도 웃으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와 그들은 더 이상 안쓰러움이나 연민의 대상이 아니었다. 넘어져 피를 흘리면서도 눈물을 훔치고 다시 일어나 걸어가는 모든 이들의 삶은 존경스럽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책을 덮으며 나는 니체에게 응원을 받은 기분이었다. 안정이 아닌 두려움을 좇아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 또한 충분히 행복을 위한 길이 될 수 있다고. 그 과정에서 설령 고난과 불행이 닥치더라도 당연히 행복할 수 있다고. 아니, 오히려 끊임없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산을 마주함으로써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그렇기에 앞으로는 모든 순간에 왜,를 물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를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고난과 시련이 운명을 뒤흔들고 파괴하더라도 그 운명조차 사랑하며 웃고 춤출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생과 소멸이 반복되고 고난과 시련이 가득한 지금 이 세계와 육체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땅에 뿌리를 딛고 위로 뻗어나가는 나무와 같은 사람. 세상이 다져준 안정된 길을 따라 편하게 걷고 싶은 자신을 극복하고, 진정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따라가는 사람.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 사람. 결국은 모든 관념을 벗어던지고 소풍 나온 어린아이처럼 삶을 즐기는 사람.
인도여행의 끝에서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더러운 진흙탕에서도, 두려운 어둠 속에서도 웃고 춤추며 삶을 여행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