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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익구 Nov 20. 2021

가마니 짜기

탈진 상태로 생사를 헤매던 아버지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정성으로 건강을

농한기인 겨울이 되면 밤낮으로 가마니 짜는 것이 우리 집의 일과였다. 부모님은 가마니를 짜고 아이들은 뒤쪽에 앉아 새끼를 꼬았다. 보통은 하루에 한 죽(10장)씩 짰다. 낮에 다른 볼일이라도 있으면 밤이 늦도록 가마니를 짜야했다. 가마니틀에 둥근 나무 뭉치로 만든 바디의 구멍 사이로 날줄인 가는 새끼를 끼워 걸면 가마니 짜기가 시작되었다. 힘센 사람이 왼쪽에 앉아 바디를 잡고 오른쪽에는 씨줄을 담당하는 사람이 석 자가 넘음직한 납작한 대나무자를 들고 나란히 앉았다. 아버지께서 바디를 잡으시고 어머니는 잣대를 잡았다. 바디를 들어 올려 날줄이 서로 교차하도록 손잡이를 젖히면 어머니는 팔을 벌려 긴 자의 끄트머리에 짚 한 올을 접어 바디 밑의 교차로 벌려진 날줄 사이로 밀어 넣었다. 날줄 사이에 낀 씨줄은 바디로 내리쳐서 밑에서부터 차곡차곡 채워졌다.

  짚이 한쪽 방향에서만 들어가면 가마니의 좌우 높이가 달라지므로 한 줌을 오른쪽에서 밀어 넣었으면 한 줌은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끌어와야 했다. 오른손으로 바디의 자루를 잡고 왼손으로는 한 줌의 짚을 잡아 한 올씩 먹여주면 갈고리처럼 된 대나무 자의 한쪽 끝이 재빠르게 지푸라기를 낚아채서 끌어왔다. 두 사람의 호흡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져야 했다.

  가끔 밀어 넣은 대나무 자가 채 빠져나오기도 전에 바디가 내려오면, 갈고리처럼 된 대나무 잣대의 뾰족한 귀에 엄지손가락이 찔려 어머니의 손은 언제나 반창고로 싸매어져 있었다. 그때마다 아파하며 잔소리를 쉬지 않던 어머니와 아무 말 없이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감아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미안함과 따뜻함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탈진 상태로 생사를 헤매던 아버지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정성으로 건강을 되찾게 한 어머니의 지아비에 대한 사랑은 헌신적이었다. 안타깝게도 어머니가 병으로 먼저 세상을 뜨셨을 때 아버지께서는 늘 어머니에 대한 회한과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 듯했다. 눈물을 참고 어머니의 묘를 다듬으시며 “나를 살리고 임자가 먼저 갔구려!” 하시는 아버지의 혼잣말을 들었다. 가마니를 짜면서 다투던 말싸움이 사랑싸움인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보관하고 있는 낡은 가마니 바디를 닦으며 어릴 때는 몰랐던, 아버지의 ‘무언의 교육’이 추억 속에 잠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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