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마차 에세이

#4. 통화.

by 권구현

머리가 너무 어지럽습니다. 친구들과 1차를 마시고 여자 친구와 2차를 왔는데 술을 너무 마셨나 봅니다. 주변이 어지럽게 흔들리고,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느낌에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변기를 부어 잡고, 속을 개어내고 세수를 하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니~~♫

여보세요 왜 말 안 하니~~~♫




오늘 이상한 날입니다. 아까 눈치 없던 친구의 장난스런 놀림이 원인이었을까요? 술에 취한 저를 비춰주는 거울 속엔 전 여자 친구의 기억이 가득합니다. 작년 승진 때 지각하지 말라며 선물해준 시계도, 항상 멋있게 다녀야 어디 가서 무시 안 받는다며 사준 셔츠도, 자기 옷은 안 사도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갖다 붙이며 제 선물을 줄 때면 선물을 받는 저보다도 행복해하던 그 미소도.. 이 어지러운 와중에 그 기억들은 선명합니다.



한참을 화장실에 있다 돌아오니 여자 친구가 걱정스럽게 바라봅니다.


"자기야.. 많이 취한 거 같은데 우리 그만 일어날까? 시간도 좀 늦어졌는데 괜찮아??"

"응? 아냐 나 술 더 마실 거야, 화장실 다녀오니 괜찮아졌어! 우리 조금만 더 마시자 응??"


무슨 객기인지 그만 가자는 여자 친구의 말에 괜찮다 하며, 술을 더 넘겼습니다. 아무리 술을 더 마시고 여자 친구의 말을 들어보려 해도 사실 마음이 더 우울해져만 갑니다. 헤어진 지 세 달이 다 되어가고 난 새로운 여자 친구도 있는데 왜 생각이 나야 하나요? 우울한 감정은 원망으로 변해갔습니다. 왜 나를 떠나야 했는지? 나의 무엇이 그리 잘못되었었는지? 우리 함께한 그 오랜 시간을 여기까지 인 거 같다는 말 한마디로 어떻게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지 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난 이렇게 지금도 힘들고 복잡하기만 한데.. 원망은 커져만 가고, 억울한 감정은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때 테이블에 올려진 핸드폰을 보고 말았습니다. 여자 친구에게 다시 화장실을 간다 말하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습니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전 참지못하고 1번을 꾸욱 눌렀습니다. 아직까지도 바꾸지 못한 내 휴대폰 속 1번인 전여자친구의 번호... 신호음도 몇 번 가지 않고 통화는 이내 연결되어버렸습니다. 이윽고 전 울분과 주체하지 못할 화를 쏟아냅니다.



"네가 얼마나 나쁜 년인 줄 알아? 왜 우린 이렇게 헤어졌어야 해? 내가 잘못한 거 있음 뭐라도 말이라도 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말 한마디로 끝날 사이었다면, 우리 만난 몇 년 동안 백번이고 더 헤어졌어야 했어, 우린 아닌 것 같단 쉬운 말 한마디로 끝날 사이 었으면 그전에 이미 헤어졌어야 한다고 아니야?? 아니면 그렇게 날 우습게 생각하고 쉽게 떠날 거면, 그런 쉬운 사이로만 생각하고 날 만났었다는 건가? 넌 한 사람의 몇 년을 거짓된 맘으로 거짓된 웃음을 지으면서? 난 지금도 너 생각나는 게 괴롭고 힘들어서 다른 사람까지 만나고 있어, 네가 준 상처가 너무 커 견딜 수가 없어서 그런 짓까지 하고 있어,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는 건데? 대체 내가 너한테 무슨 잘못을 한 건데? 제발 무슨 말이라도 해봐 어???

"........."


술에 취한 정신에 두서없이 퍼붓는 울분과 화를 전화로 쏟아내어도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세수를 아무리 해도 아무것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상실감. 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음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자리로 돌아가자 여자 친구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저를 쳐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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