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지금의 사회가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다보니 별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어. 당장은 힘들겠지만, 이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을 열어가면 되니까. 우리 너무 낙담하지 말자. 그리고 엄마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네가 하늘의 별이 되어 반짝반짝 빛내며 지켜봐 주길 바란다.”
故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대법원 선고 직전 작성한 기고문이다. 故김용균씨는 5년 전 12월 10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너 벨트를 점검하던 중 벨트와 롤러 사이에 끼어 숨졌다. 그의 나이 24세.
김미숙씨는 아들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 없었다. 그는 김용균재단을 설립하며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을 막기 위해 지난 5년간 쉴 새 없이 달려왔다. 그의 노력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었다. 故김용균씨의 원·하청을 향한 법정 공방도 이어졌다.
지난 7일, 대법원 선고가 나왔다. 원청 대표 무죄, 원·하청 임직원은 모두 집행유예 처분. 이날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전반적인 안전 계획을 세울 의무는 원청 사장에게 있지만 현장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건·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까지 물리기는 어렵다”는 원심 판결에 대법원이 수긍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자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불복을 외쳤다. “불복합니다, 불복합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서부발전이 사람을 죽였는데...” 그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제 아들이 죽었습니다. 당신 아들이 죽어도 그렇게 결론 내릴 겁니까.”
김 이사장은 故김용균 사건 발생 전만 해도 평범한 사람이었다. 아들이 사고로 숨진 후, 김 이사장이 보인 행보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예상하는, 자식 잃은 어미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진상규명 및 유사 산업재해 재발 방지를 위해 노동운동에 매진했다. 고인의 빈소에서 회사가 유가족에게 “아들 잘못”이라고 말한 행태가 이해되지 않아서, 어미로서 아들 볼 면목을 조금이라도 세우기 위해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해서, 이 땅에 모든 비정규직의 비애에 공감이 가서, 그는 비정해졌다.
그조차 제일 힘들었던 것은 아들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냉동고에 보관한 채 싸워야 했던 기억이다. 말라가는 시신을 생각하며 싸우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도 비참했다. 그래도 그는 아들의 생각이 자신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우여곡절 끝에 진상규명도 국가 차원으로 해냈고, ‘아들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당당히 밝힐 수 있었다.
이번 대법원 최종 판결은 故김용균씨 사망 이후 전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을 소급 적용받지 못한 판결이다. 검찰은 행위시법 주의에 따라 개정 전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검찰이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대표이사까지 기소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고 검찰의 수사·처벌 의지가 매우 강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의역 故김모씨(당시 19세), 태안화력발전소 故김용균씨(당시 24세), SPC 제빵공장 故박모씨(당시 23세) 등의 사망 사고는 원청의 하청 도급으로 벌어진, 이른바 ‘죽음의 외주화’가 대표적으로 나타난 사례다. 사회는 이들의 죽음이 무위로 돌아가지 않도록 촉구했다. 국민정서는 원·하청 구조 개선의 필요성과 시급성에 의견을 같이했다. 그 결과, 김용균법(개정 후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 등이 입법됐고, 이번 재판에서 검찰의 수사·처벌의지가 강력하게 작용됐다.
다만 지난 3일, 당정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더 미루는 방안에 합의했다. 야당은 조건부 찬성 입장을 밝히며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강하게 반대하지 않았다. 22년 기준 산재 사망자 874명 중 50인 미만 사업장 사망자는 707명으로 전체 81%를 차지하고 있어도 말이다.
유예되어 계류 중인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를 처벌하겠다는 강력한 법이다. 이 법은 행위책임의 원칙을 후퇴시키고 결과책임을 인정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는 한다. 그러나 산업재해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전 국민적 공감대가 커가는 실정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하는 이 시대 한국사회에서, ‘삶이 있는 저녁’을 꿈꾸는 노동자와 가족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근로조건의 차이가 목숨과 직결되고, 사회적 문제를 개인적 부주의로 모욕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사회는 암울하기 그지없다. ‘노동은 신성하다’는 정치적 레토릭을 주장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하청 도급인에게 ‘워라밸’은 고사하고, 최소한 ‘라이프’만이라도 보장하는 사회가 필요하지 않을까. 나의 ‘저녁 있는 삶’을 위해 누군가의 ‘삶이 있는 저녁’을 희생시키는 사회가 되어서는 아니된다.
재판 이후, 김 이사장은 눈물을 훔치고 결기했다.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은 대법원의 부당한 판결에 의해 지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차후 역사는 서부발전 김병숙 사장이 잘못했음을 제대로 판단해 줄 거라 생각한다. 앞으로 다른 길로 더 사람들을 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금도 열악한 처우에서 노동하는 하청 도급자들을 위해, 제2·제3의 김군, 박양과 같은 이들이 안타까운 사고를 겪지 않기 위해 김 이사장은 최전선에서 맞서 싸운다.
다음은 지난 5년간 김 이사장이 한 말이다.
"예전과 벌금이 거의 비슷한 정도로 그렇게 하면 산업재해가 막아집니까? 현장의 안전대책보다 사람 목숨값이 더 낮으니 이런 것 아닙니까. 세상이 미쳐가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정말 분통이 터집니다." (2020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연내 입법 촉구 기자회견에서)
"다른 산재사건 재판도 용균이 재판과 다를 게 없습니다. '회사 책임은 없다, 합의하려고 노력했다, 문제는 있지만 무죄다' 같은 말에 할 말을 잃어버릴 지경입니다." (2021년 청와대 앞에서 열린 김용균 3주기 추모 기자회견에서)
"법 시행 5개월도 안 돼 중대재해법 개정을 시도하는 것은 노동자들을 기만하는 것이자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을 노동기본권으로 선언한 것과 반대 행보입니다. 기업만 우선시하는 정책을 펼친다면 이에 반발하는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2022년 중대재해법 개정안 발의를 앞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