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한국인은 왜 비행기에 몸을 싣는가

by 몽땅별

한국인의 해외여행 사랑은 집착에 가깝다. 2024년 기준 국민의 절반 이상(2868만명·55.4%)이 국경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일본보다 각각 22%p, 44%p 높은 수치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 현상은 단순한 여가로 볼 수 없다. 이 글에서는 한국인의 해외여행 급증 원인과 여행의 본질을 파헤치고자 한다.


한국인이 해외여행을 가는 이유

한국의 해외여행 자유화는 1989년에야 이뤄졌다. 한국인이 자유로운 이동권을 누린 기간은 고작 30여 년에 불과하다. 80년대까지 여행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을 뿐 아니라, 반공 사상과 새마을 운동 등 국가 주도의 '농업적 근면성' 아래 사치로 여겨졌다. 이 시기 근면성은 한국인이 노동으로 벌어들인 재원을 소비하기보다, 국가를 위해 저축하고 순응하게 하는 가치관을 주입하게 했다. 또 무리에서 벗어나는 사람을 소외하게 했다.


지리적 조건은 이러한 억압을 가중했다. 한국은 위로는 북한에 가로막히고, 나머지 삼면은 바다로 둘러싸인 실질적 섬나라에 해당한다. 이러한 폐쇄성 가운데, 한국은 물건을 밖으로 쏟아내어 성장하는 수출 주도형 모델을 채택했다. 재화는 국경을 끊임없이 넘나들었지만, 그 물건을 만드는 사람은 안에 갇혀야 했던 제조기지의 형세가 수십년간 지속된 것이다.


오랫동안 축적한 구조적 폐쇄성은 강력한 탈출 욕구를 자극했다. 사회적 규율과 경직된 사고관, 물리적 한계가 맞물리면서 한국인에게 해외여행이란 단순한 관광이나 일탈이 아니라, 자신을 가두었던 물리적·심리적 장벽을 넘는 일종의 해방이 됐다. 결국 한국인에게 해외여행이란, ‘국경을 넘는 행위’를 넘어 제도가 설계한 폐쇄성으로부터 도주하는 적극적인 ‘탈출’인 셈이다.


역사적 분석: 여행=자산 이라는 신화 구축

여행의 본질을 알기 위해 역사를 보자. 영국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팽창한 자본주의는 기존의 왕을 폐위시켰다. 대신 신흥 귀족(부르주아)을 역사의 전면으로 내세웠다. 부르주아는 자본을 바탕으로 배금주의(물질만능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격상했다. 나아가 노동자(프롤레타리아) 계층이 이를 미덕으로 수용하게끔 설득했다. 현대까지도 이어지는 이 설득은 자산 축적이 부의 증식을 넘어 그것이 '옳은 가치'라는 도덕의 영역으로 이끌었다.


자본주의의 독주는 반발 작용을 일으킨다. 과거 공산주의 시도가 대표적이다. 물론 공산주의는 실패로 끝났다. 다만 자본주의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새로운 대안 담론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이는 바로 "경험이 곧 자산이다"라는 논리다. 이들에게 경험은 돈보다 상위가치로 기능한다. 유한한 자본을 무한한 경험의 영역으로 치환한다. 나아가 개인주의의 발달은 이러한 여행 지상주의를 강화했다. "경험하는 나는 곧 개성 있는 주체"라는 강력한 자아 형성의 서사를 만들었다.


결국 오늘날 여행은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수단'으로 군림하지만, 이는 거대한 마케팅에 불과하다. 경험주의자들은 일상을 새로울 것이 없는, 납작한 현실에 불과하도록 폄하한다. 대신 호기심을 자극하는 행위만이 최고의 가치인 양 신격화한다. 낯선 공간에서의 모르는 타인과의 조우, 이색적인 풍경과 진미, 비업무적인 대화를 나누는 행위가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는 환상을 제공한다.


여행: 수평적 팽창 vs 일상: 수직적 심화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여행만이 입체성을 제공하는가? 일상은 그저 납작하기만 한가? 두 인물을 예로 들겠다. 먼저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불렸던 엔서니 보데인이다. 그는 지구 26바퀴를 돌았다. 남극에서 펭귄과 함께 했고, 서울에서 폭탄주를 마셨다. 하노이에서 오바마와 같이 쌀국수를 먹고, 로마 콜로세움을 걸었다. 여행 최전선에서 경험을 축적해 왔던 그는, 2018년 자살했다.


그의 죽음은 경험이 곧 진리가 될 수 없다고 보여준다. 그는 이색적 경험을 쌓아왔지만 이를 그저 자산처럼 여겼다. 계속해서 경험을 축적하며 사는 것이 그의 삶이었다. 그는 늘 불안했다. 극단적 경험이 아니고서는 도파민을 충족하지 못했다. 지루함을 참지 못했고, 쉴 틈 없이 달리기만 했다.


반면 평생 쾨니헤스베르크에 머물렀던 철학자 칸트는 저서 <순수이성비판> 등 철학사를 뒤바꾼 입체적 이정표를 남겼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지고의 깨달음을 얻는 수행자 역시 공간 이동 없이 매 순간 진리를 포착한다.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호기심은 무위에 그칠 수 있다. 필자 역시 1달간의 유럽 여행을 떠난 적 있다. 명소들을 방문하며 쾌락을 누렸지만, 그 끝에서 허무를 마주했다.


진정한 초월은 국경 너머가 아닌, 반복되는 보통의 하루 속 약간의 변화에 있다. 일상에서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일상은 반복하지만 조금씩 변화한다. 평범하고 소박한 하루가 주는 평온함. 이 감정에 기반해 일상을 입체적 여행으로 만들어야 한다.


일상의 주권 회복

여행하지 않는 삶을 도태된 것으로 몰아세우는 경험주의자들의 여행예찬은 폭력적이다. 이 피로한 예찬 가운데 일상의 안온함을 지키는 이들은 소외감을 느낀다. 그러나 경험을 자산처럼 쌓아 올리는 경쟁 또한 결국 자본주의의 변주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어떤 시선으로 머무느냐다. 경험주의자들이 자본주의에 반발하듯, 일상을 누리는 자들 역시 ‘경험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일상의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맹목적인 성과의 도구로 쓰지 말고, 그 자체의 온전함을 포착하라. 타인을 존중하고 내면적 성찰을 수행하라.


진정한 해탈은 국경 너머의 극단에 있지 않다. 오히려 지루할 만큼 평범한 일상을 버티고, 세밀하게 관찰하는 인내 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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