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회에 간 후 든 생각
삶은 어렵다.
그러니까 내 말은, 삶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과거(아니 지금도) 나는 절규한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나 잘 적응하며 살아가는 걸까, 하고.
타인을 흘겨보며 손쉽게 판단한 적 많았다. 잠깐의 시선으로 타인을 봤을 때 그들은 나이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에 발 맞춰 잘 적응하고 있었다.
그들은 별다른 고민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와 달리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며 괜스레 속으로 괴로워했다. 나만 도태되는 느낌이랄까. 그 가운데 나는 많이 지쳤던 거 같다.
점차 나이를 먹고 직업을 가진 이후, 타인의 내면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 비즈니스 관계든 친밀한 관계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어떤 이는 대기업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어떤 이는 20살 이후로 삶이 늘 고통이었다는 사실을 흘려보내듯 농담 삼아 얘기했다. 또 대표가 돼 큰 성공을 이룬 사람들도 지속해서 현실의 시련을 꺼내는 것을 보며 위상과 다른 내면의 간극을 느꼈다.
사람들의 대화 이면에는 나름의 고독한 고민과 의문이 담겨 있었다. 이를 보며 나와 다를 줄 알았던 사람들도 결국 한통속의 인간이구나, 와 같은 공감을 했던 거 같다.
모든 이들은 겉으로 웃고 있지만, 웃음의 가면을 벗기면 제각기 나름의 속사정을 품고 있다. 그들의 고민과 고난을 들을수록, 나는 함부로 확신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각각 풍성하고 풍부한 서사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나와 다른 각자의 삶을 보며 난 또 두렵기만 하다. 도대체 무엇이 정답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올바른 걸까. 애초에 올바르다는 것이 존재하기나 하는가? 그러니까, 다들 어떻게 확신을 하며 살아가느냐는 의문이다.
그러나 삶의 무게는 점차 무거워지기에,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내 삶을 가속하기에, 의문을 내려 놓고 달릴 수밖에 없었다. 의문하기 보단, 과업에 집중하며 벗어났고, 뜨문뜨문 드는 고민들은 잊어버렸다. 성실하게 살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저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수련회에 갔다. 거기서 한 과학자와 대담을 나누었다. 그는 높은 명예를 지닌 존경받을 만한 과학자였지만, 그가 말하길 자신이 과학자임에도 왜 신앙을 믿는지 근본적으로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저 신의 소명을 따라 믿는 것이었다. 결국 그도 그저 한 인간이었다.
그조차 그러한데, 나는 더 모를 것이다. 어떻게 삶을 쉽게 판단할 수 있을까. 왜 이렇게 삶은 어려운지,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어쩜 그렇게 잘 버티는 척 연기를 하는지.
인간의 삶을 도통 이해하지 못하겠다. 내가 할 말은 그나마 이런 정직한 고백일 뿐이다. 나는 그럼에도 계속 질문하는 존재인가 보다. 나는 늘 불편함을 무릅쓰고 파고들었고, 끝까지 가야만 직성이 풀렸다.
편안함과 안락함을 누리고 싶던 순간은 정말 많았지만, 결국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질문해야 했다. 나는 살아간다. 나는 더 모를 것이다. 모르지만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기에, 그저 살 뿐이다. 의심과 회의를 품은 채로.
나, 나아가 우리의 소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 타인과 함께 걷는 것 아닐까. 부모, 형제, 자매, 친구, 이웃, 공동체, 나아가 인류, 생명체 전체까지.
인간은 의문을 품는 존재기에, 의문을 품는 존재끼리 품어야 하지 않을까. 이해할 수 없을 지라도,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는 것.
삶이라는 의문점에 대해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저 살아갈 뿐이다. 서로 사랑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