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따리는 안 돼"…노동 조롱받고, 성공팔이 판친다

by 몽땅별

https://www.youtube.com/watch?v=AxygASqC0T8&t=1874s


최근 KBS 다큐멘터리 '추적 60분'은 한국 사회의 씁쓸한 이면을 포착했다. 다큐는 노동자들이 땀 흘려 번 월급을 푼돈처럼 취급하는 풍경을 담았다.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한 달 내내 일해 번 월급을 '200따리', '300따리'라고 비하하는 글이 넘쳐난다.


다만 이 조롱의 밑바닥에는 단순한 경멸이 아닌 공포가 깔려 있다. 전통적인 노동 소득만으로는 치솟는 자산 가격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청년들의 절박한 위기감이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평균 올려치기' 문화는 이 공포에 기름을 붓는다. 인서울·대기업·공기업·전문직 등 경로를 벗어나는 순간 낙오자로 평가받는다. 인스타그램과 예능(나혼자산다)은 외제차·서울 아파트 자가·오마카세를 특별한 것이 아닌 평범한 기준처럼 소비하게 한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설문 결과는 이를 숫자로 드러냈다. ‘결혼을 결심할 때 남자친구 월급 마지노선'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38%가 '400만원 이상'을 꼽았다. '1500만원'이라는 응답도 22.4%에 달했다. 2026년 전체 노동자 중위소득이 월 256만원이라는 현실과 엇갈린다.


문제는 이 불안을 누군가 철저히 이용한다는 점이다. 다큐는 청년들의 불안을 먹잇감으로 삼는 이른바 '성공팔이'들의 실태를 고발한다. 이들은 "나는 사회의 구조를 부쉈다"며 단기간에 수억원을 벌었다는 영상으로 SNS 알고리즘을 장악했고, 수많은 피해자들을 양산했다. 실상은 고수익을 미끼로 한 수십~수백만원짜리 강의 판매와 타인들을 끌어들이는 신종 다단계였다.


비단 다큐 속 얘기만이 아니다. 주언규(구 신사임당), 라이프해커 자청 등 대표적 성공팔이들은 자신의 단편적인 성공 사례를 화려하게 포장해 강의와 책을 팔았다. 실제 수강생 중 유의미한 성과를 낸 사례는 찾기 어렵다.


그렇다면 왜 이런 구조가 만들어졌을까. 근본 원인은 노동소득보다 자본소득이 우선시되는 경제 구조에 있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보다 높다(r>g)'는 공식을 입증했다. 자본이 자본을 재생산하는 현대 사회에서, 땀 흘려 번 노동소득의 가치는 갈수록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작한 양적완화는 이 공식을 가속화했다. 당시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과감하게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을 펼쳐 경제위기를 극복했다. 이 공로로 2022년 노벨경제학상까지 수상했다.


그러나 경제학계 시각은 크게 엇갈렸다. 풀린 자금이 실물경제 대신 주식 등 자산 시장으로 흘러들면서 자산을 보유한 부유층과 그렇지 못한 중산층 사이의 양극화를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넘쳐나는 유동성은 모든 자산이 급등하는 '에브리띵 랠리'라는 기현상까지 낳았다. 본래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과 금·달러 같은 안전자산은 경기에 따라 반대로 움직이는 것이 일반적인 경제 이론이다. 하지만 양적완화가 심화하면서 서로 반대로 움직여야 할 두 자산이 동시에 급등했다. 전통적 경제이론이 양적완화 앞에 무너지는 셈이다.


평균 올려치기 문화와 노동소득을 배제하는 경제 구조가 맞물려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한 달을 고생해 번 돈은 '200따리'라며 조롱받고, 청년들은 끝없이 높아지는 평균의 잣대 속에서 열등감과 박탈감을 반복해서 느낀다. 연애와 결혼은 사치가 된 지 오래다.


청년들은 자산 격차가 계속 벌어지는 것을 보고, 지금 올라타지 못하면 영원히 뒤처질 것이라는 공포에 내몰렸다. 대출을 끌어쓰는 '빚투'나 코인 등 고위험 자산에 무리한 베팅을 하고 있다. 심지어 단기 고수익 알바라는 말에 혹해 보이스피싱 인출책이 된다. 캄보디아 해외 범죄 조직에 감금당하는 등 피해자로 전락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비극의 뿌리는 노동을 소외시키는 자본 구조에 있다. 평균 올려치기 문화, 끝없이 벌어지는 자산 격차, 그 틈을 파고드는 성공팔이들. 어느 하나 개인 탓으로 돌리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이 거대한 모순을 개인의 능력 부족과 나약함으로 돌려왔다.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실패로 전가하는 사회에서 청년들의 절망과 조급함은 해결할 수 없다.


땀 흘려 일하는 평범한 삶을 다시 존엄하게 바라보는 것. 그것이 출발점이다. 이를 전제하지 않고는 어떤 대책도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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