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생활 6개월간 쌓은 고민거리
기자가 된 지 6개월이 흘렀다. 수습 기간 3개월을 제외하면 실제 현장 업무는 3개월밖에 안 된다. 짧은 기간인지라 이 글을 쓰기 망설였다. 다만 지금 이 시점의 생각을 이정표처럼 남겨두고 싶어 쓰게 됐다.
짧은 3개월 동안 나름의 성과는 있었다. 기자 간담회에 가면 기업 C레벨 임원들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부처 장관이 내 기사를 봤다는 것도 고려하면 나름 열심히 취재를 해온 셈이다.
막상 기자가 돼 보니 여간 고된 게 아니었다. 사실상 육체노동과 다를 바 없달까. 매일 마감 시간에 맞춰 발제 기사 한 편을 꼬박 올려야 한다. 최소 1200자를 채우기 위해 취재원을 만나는 게 필수다. 내일 뭘 써야 할지 머리를 쥐어짜야 한다. 창작의 고통이 쉴 틈 없이 밀려든다.
당초 나는 글을 꾸준히 써본 버릇이 없었다. 번뜩이는 착상이 떠오를 때 뜨문뜨문 써왔다. 그러나 기자는 매일 기사를 써야 한다. 돈을 받고 일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프로의 정신이랄까.
기사거리를 위해 을이 되는 것이 태반이다. 먼저 만나달라고 요청해야 하고, 답장이 없는 경우도 빈번하다. 만남 약속이 불발되면 내일 발제를 어떻게 때워야 하나 막막해진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다른 취재원을 찾는 게 슬슬 익숙해진다.
기사 수정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심적으로 괴롭다. 문장 하나가 취재원을 오도하진 않았는지 걱정해야 한다. 관계를 의식하다 보면 기사는 점점 조심스러워진다. 현실의 보도와 이상 속 보도는 분명히 다르다. 따끔하게 지적하는 기사를 쓴 적 있었다. 취재원은 현실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그의 말이 맞는 말이라 그냥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비판하기는 쉽고 바꾸기는 어렵다.
데스크의 지적도 여간 곤혹스럽다. 문장 꼬투리를 잡는 건 어느 정도 납득된다. 내 글이 오도되지 않도록 하는 그들의 입장이 있을 테니까. 다만 내가 쓴 제목을 아예 바꾸거나, 내용이 수정되면 불편함은 내 몫이다. 자극적으로 바뀐 제목 때문에 걸려오는 항의 전화도 내가 먼저 받아야 한다. 취재원에게 빈말 사과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속보 경쟁도 지친다. 내가 공들인 기사를 타 매체가 먼저 내보내면 취재가 거품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어 다른 각도로 써서 그날 발제를 처리해야만 한다.
취재원 중에는 메이저 언론사 출신 전직 기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고 야망도 있어 보이고 실력도 있는 것 같으니 더 좋은 언론사에 지원해보라고 조언했다. 뱀의 머리보다 용의 꼬리가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동기들도 내가 경제 쪽에 재능이 있다고 했다. 뿌듯했다. 다만 머리가 여간 골치 아팠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 게 많은 건지 원.
언론 현장에서 느낀 것은 다들 치열하다는 것이다. 메이저 언론사라고 기자의 수준이 월등히 높은 건 아니다. 모든 언론사 기자들은 매 순간 기사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사람을 만나고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어느 직업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과거 오만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젠 사회생활을 하면서 겸손함을 배운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나는 기자를 하면서도 '이게 맞나' 싶은 회의를 자주 품는다. 금융권에서 일한 적도 있었다. 3개월 만에 반강제로 때려쳤다. 너무 정적이었다. 사무실에 앉아 눈이 빠지게 엑셀 시트만 다뤄야 했다. 기자가 되면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할 줄 알았다. 그 말은 어느정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피곤한 것도 많았다. 어떤 소식이 나오는지 항상 촉각을 세워야 하고, 팔로우가 느리다는 지적도 받는다. 이러나저러나 지치는 건 매한가지다. 돈 버는 게 다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많다. 대학원을 가야 할지, 기자를 계속해야 할지, 해외로 도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아예 속세를 벗어날까 싶기도 하다. 무언가 사회에 기여하고 싶으면서도 모든 것을 내던지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든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다가도, 사회의 레이스에서 이탈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다.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
이럴 때면 죽음을 생각한다. 곧 죽는다면 내가 진정 하고싶은 것을 하지 않을까. 기간은 상관없다. 일주일 치든, 평생의 업이든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최선을 다할 테다. 다만 아직 무엇을 할지 갈피를 정하진 못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인생은 헛되니 말이다. 허무주의 속에서 의미의 기반은 나로부터 출발한다. 나는 의미를 찾기 위해 평생을 궁리하며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