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khan.co.kr/newsletter/cube/article/202603100701101
최근 경향신문의 '침묵의 공간이 된 대학'이라는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기사는 대학 내 총여학생회와 페미니즘 동아리의 잇단 폐지를 조명하며, 이를 교내 페미니즘 소멸로 진단했다.
실제 대학 내 여성 기구들이 잇따라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9월 한양대 총여학생회가 폐지됐다. 2013년 건국대를 시작으로 성균관대(자연과학 2014·인문사회 2018년), 동국대(2018년), 연세대(2019년), 경희대(2021년), 포항공대(2025년) 등 총여학생회는 줄줄이 자취를 감췄다. 현재 서울 소재 대학 중 총여학생회가 남은 곳은 감리교신학대와 총신대 단 두 곳뿐이다. 이 대학들도 사실상 사문화 상태다.
페미니즘 동아리도 마찬가지다. 55년 역사의 성균관대 여성주의 교지 '정정헌'은 지난해 활동 인원 부족을 이유로 중앙동아리에서 제명됐다. 고려대 여학생위원회는 설립 목적에 맞지 않는 활동을 이유로 타 위원회와 강제 병합됐고, 동덕여대 사태를 주도했던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 '사이렌(SIREN)'은 학교 창립 정신을 위배했다는 이유로 중앙동아리 등록이 취소됐다.
기사는 이런 흐름을 '페미니즘에 대한 무관심'과 페미니즘 대중화(리부트)에 반대하는 남성들의 '백래시(반동)'에서 찾는다. 기사 말미에는 "민주주의 발전의 엔진을 끌어가는 주요 세력 중 하나가 페미니스트"라는 신경아 한림대 명예교수의 말을 빌려, 학내 페미니즘의 몰락을 대학 민주주의의 후퇴로 규정했다.
다만 나는 이 진단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2018년 동국대 총여학생회 폐지 현장에 직접 있었다. 당시 총여학생회는 인권 신장보다 남성 혐오적 발언을 앞세웠고, 교내 건물 곳곳에 혐오 발언을 담은 대자보를 붙여 놓고도 뒤처리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모순된 모습을 보였다.
총여학생회 폐지는 민주주의의 붕괴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작동이라고 판단한다. 동국대 폐지 당시 찬성률은 75.9%였다. 한양대 총여학생회는 대의원 110명 중 102명(92.7%)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경희대 63.45%, 연세대 78.92%, 포항공대 88.2% 등 학생들이 직접 참여한 합법적·민주적 절차로 총여학생회는 폐지됐다. 다수 학생이 외면한 기구가 소멸한 것을 두고 민주주의의 위기라 부르는 건 논리적 모순이다.
기사는 한국 페미니즘의 대중화를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지목했다. 실제 디시인사이드 남자연예인갤러리나 메갈리아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 안에 머물던 남혐 담론들이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자라서 죽었다"는 사회적 구호로 번지며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가 일어났다.
한국 페미니즘은 여기서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한국의 페미니즘 리부트는 평등 지향보다 '피해자주의'로 빠르게 변모했다. 스스로를 억울한 희생자로 규정하는 데 집중하다 보니, 여성의 시각으로 세상을 새롭게 접근하는 페미니즘 본연의 기능은 외면받았다. 그 자리를 남성 혐오와 선동적 구호로 채웠다.
'여성이기에 두렵다'는 감각은 일정 부분 실재한다. 하지만 공포와 혐오만을 연료로 삼은 운동은 점점 맹목으로 극단화했고, 그것이 곪아 터진 것이 동덕여대 사태다. 학교 측이 공학 전환을 공식 안건으로 상정조차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는 건물에 유성 래커를 칠하고 기물을 파손했다. 공포가 앞선 나머지 확인 없는 폭력이 먼저였다.
본래 페미니즘에는 기존의 여성성을 긍정하는 '립스틱 페미니즘', 다양한 소수자와 연대하는 '상호교차성 페미니즘' 등 다양한 흐름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남녀 분리주의와 극단적 혐오를 표방하는 래디컬 페미니즘(급진적 페미니즘)이 주류를 장악하며 다른 모든 가능성을 밀어냈다.
역사학자 E.H.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라고 했다. 역사가는 수많은 과거 사실 중 오늘날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을 선택하고,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역사적 맥락을 구성한다. 문제는 그 선택이 자신을 둘러싼 사회와 상호작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식 페미니즘은 그러지 못했다. 여성은 절대적 피해자라는 틀에 사실을 대입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통계만 취사선택했다. 그리고 정당한 외부 비판을 일괄적으로 백래시로 규정하며 논증과 성찰을 거부했다. 고인물화된 운동은 필연적으로 대중의 지지를 잃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인간의 이기적 착각을 이 같이 꼬집었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기 귀찮아질 때 그들을 그저 이상하고 나쁜 것으로 몰아붙인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다.
"나는 좋은 사람이고 늘 옳다는 확신이 들 때 당신은 이미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일 확률이 높다"는 그의 통찰은 오늘날 한국 페미니즘의 후퇴에 들어맞지 않을까. 자신의 정의감에 취해 타인에게 폭력을 가하면서도 정당하다고 믿는 독단이 오늘날 한국식 페미니즘을 몰락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