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터넷을 달구는 '에겐녀', '테토남' 같은 신조어를 보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에겐녀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풍부한 여성을 뜻하는 단어로, 감성적이고 수동적이며 관계 지향적인 여성을 뜻한다. 다만 그 이미지는 페미니즘이 배척해온 '현모양처'와 꽤나 겹쳐 보인다.
페미니즘 시각에서 두 단어는 동일한 폭력이어야 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현모양처에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에겐녀는 유쾌하게 소비하는 걸까. 이 현상의 기저에는 '무거움'과 '가벼움'의 대비가 있다.
현모양처는 '현명한 어머니와 어진 아내'를 뜻한다. 흔히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전통 개념으로 여겨진다.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개항기 일본에서 수입한 단어로,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성별 역할분담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였다. 남성은 밖에서 국가에 공헌하고, 여성은 가정에서 남편을 내조하고 자녀를 교육하는 단어로 강제한 것이다.
페미니즘은 이 단어를 억압으로 해석한다. 국가와 가부장제가 여성의 본질을 함부로 규정했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페미니즘이 단어를 해체하는 방식에서 '무거움'을 낳았다. 이념의 언어는 언제나 무겁다. 무거운 것은 사람을 피로하게 만든다.
인간 사회에는 언제나 이분법이 있었다. 영남과 호남, 남성과 여성, 부자와 빈자, 강자와 약자. 이 대비는 헤게모니를 정당화하는 도구였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며 우리는 다름을 수용하는 새로운 방식을 익혔다.
변화의 시작점에 MBTI가 있다. 16가지 유형으로 인간을 다층적으로 읽는 프레임은 문화를 바꿨다. '소심함(I)'이나 '즉흥적인 성격(P)'이 고쳐야 할 단점이 아니라 하나의 '성향'으로 존중받게 된 것이다. 이해의 확장이 에겐녀·테토녀·에겐남·테토남이라는 새로운 유희로 이어졌다.
페미니즘의 잣대로 보면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과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으로 사람의 성격을 분류하는 것은 인간을 생물학적·화학적으로 판정하는 시대착오적 단어다. 현모양처 못지않게 위험한 폭력으로 읽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페미니즘이라는 이념의 언어로 세계를 읽을 때의 이야기다.
대중은 에겐녀를 이념이 아닌 '밈'으로 소비한다.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처음 제시한 밈은 유전자(gene)와 모방(mimesis)의 합성어다. 유전자처럼 뇌에서 뇌로 전파되는 문화적 모방 단위를 뜻한다. 에겐녀라는 밈은 여성 비하나 억압의 도구가 아니다. 특정 성향을 직관적으로 표현하고 서로를 규정하며 노는 유희적 언어다.
인간은 자발적 놀이 속에서 진정한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는 존재인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다. 현모양처가 타의에 의해 강제된 억압이었다면, 에겐녀는 대중이 스스로 선택한 가벼운 놀이다. 페미니즘 시각에서 금기시해야 할 생물학적 이분법조차 밈의 형태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유희 거리가 된다.
이것이 밈이 가진 힘이다. 이념이 해내지 못한 일을 놀이가 해낸다. 이른바 놀이의 정치학이다. 억압적일 수 있는 젠더 프레임조차 유쾌한 유희로 승화시켜 타인을 향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 페미니즘의 무거운 언어가 사람을 갈라놓을 때, 에겐녀라는 가벼운 밈은 사람들을 웃음으로 묶는다. 무거움이 아니라 가벼움이 더 넓은 이해에 닿는 길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