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성영은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2)

by 몽땅별

필자(몽땅별)는 성영은 교수와 대화를 이어가며 청년 세대의 탈교회 현상, 현대사회 신앙인이 갖춰야 할 태도에 대해 나눴다.


30년 다닌 교회 떠나다

몽: 교수님께서는 고등학생 때부터 교회를 다니신 걸로 압니다.


성: 엄밀히는 어릴 때 교회를 습관처럼 다니다가 대학 동아리를 통해 정통 개혁신앙을 접한 후 신앙인이 됐습니다. 그 후 정통신학 교회에 30여 년간 정착했죠. 다만 최근 교회를 옮겼습니다. 신학적 차이가 아니라 목사 간 권력 다툼 등 세속적 이유였습니다.


몽: 평생 다니던 교회를 옮길 때 겪었던 어려움이 있으셨나요.


성: 제가 이 교회를 선택해서 아내와 딸들이 함께 다녔기에 아버지로서 미안합니다.


몽: 저 역시 성락교회 사태를 겪었습니다. 상처와 혼란 속 나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등 신앙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해왔습니다. 교회 다툼 가운데 "우리가 옳고 너희는 틀리다"며 단정하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습니다.


성: 그러한 고민은 아주 건전한 태도입니다. 교리가 이념이 되면 결코 교회는 올바를 수 없습니다. 역사적으로도 교회는 가장 번성했을 때 타락했고, 가장 낮아질 때 순수했습니다. 내 말이 무조건 맞다는 오만을 버리고, 끊임없이 물으며 겸손하게 걸어가야 합니다. 고통을 아는 자만이 진짜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금 겪는 상처와 고민도 신앙을 다듬어 가는 귀한 과정일 것입니다.


청년들의 '교회 쇼핑'

몽: 기성 교회의 권력 다툼 같은 세속적인 모습들로 인해 요즘 청년들은 정착하지 않고 여러 교회를 탐색하는 이른바 '처치(Church) 쇼핑'을 하기도 합니다.


성: 저는 그 현상을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어쨌든 교회에 관심이 있다는 증거니까요. 문제는 교회 기성세대가 청년들이 견딜 수 없는 완고한 교회를 고수한다는 점입니다. 어른들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청년들이 왜 교회를 떠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몽: 통계에 따르면 20대 가나안 성도(교회에 나가지 않는 기독교인)는 44%라고 합니다.


100달러 세대 vs 3만달러 세대

성: 두명 중 한명꼴로 교회를 떠나는 셈이죠. 경제 발전의 기울기로 원인을 설명하겠습니다. 국민소득 100달러에서 1만달러가 될 때는 성장 기울기가 가팔라서 엄청난 행복을 느낍니다. 과거 기성세대는 폭발적 성장 가운데 성취감을 느끼며 교회를 갔죠. 하지만 1만달러에서 3만달러로 넘어온 지금은 성장 기울기가 평탄해 예전처럼 행복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몽: 과거의 가시적 부흥을 경험한 기성세대는 "우리가 희생해서 어떻게 세운 교회인데"라며 청년을 꾸중하지만, 치열한 현실에 지친 청년들은 교회에서 '소확행'을 얻고 싶은데 자꾸 강요받으니 교회를 떠납니다.


성: 맞습니다.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여 이에 맞는 목회 환경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몽: 하지만 현실적으로 변화하긴 어렵습니다. 이미 교회 내 기득권(헤게모니)은 헌금 많이 내고 인구도 많은 기성세대 어르신이 쥐고 있으니까요. 청년들은 이러한 현실 앞에 결국 무너집니다.


성: 쉽지 않죠. 헤게모니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니까요. 하지만 당장 헌금이 좀 줄어든다고 해서 교회가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몽: 젊은이들이 직분이나 꼰대 문화가 없는 교회를 찾아 나서는 것도 공정한 곳을 원하기 때문이군요.


성: 청년들이 화려한 건물이 없더라도 상가 월세를 내는 작고 유연한 교회를 찾아 나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은 죄인입니다"의 한계

몽: 치열하게 살아남으려 애쓰는 현대인들에게 다짜고짜 "당신은 죄인입니다"라고 접근하는 것이 거부감을 일으키는 경우도 많습니다. 열심히 살아온 내가 왜 죄인이냐며 납득하지 못하거든요.


성: 30여 년 전에는 길거리에서 "당신은 죄인입니다"라고 외쳐도 큰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전도하면 다들 반감을 가집니다. 기독교인끼리는 '죄인'이라는 용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세상 사람들과 소통할 때 그 단어는 이제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몽: 죄인이라는 말 대신 소외감, 허무함 같은 언어로 다가갈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성: 그렇습니다. 현대는 1등만 살아남는 적자생존 사회죠. 현대인들은 1등에서 밀려났다는 소외감·박탈감에 시달립니다. 기독교인들은 이들에게 무작정 죄인이라고 하지 말고, 인문학적 고민을 거쳐 소외감이나 허무함같은 세상 용어로 대체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죄인이라는 말은 교회 내부를 위해 먼저 해야 합니다. 환자가 병원에 가듯 죄인이 가는 곳은 교회이니까요.


'서울대 교수' 꼬리표 속 낮아지는 훈련

몽: 교수님은 어쩌다 교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까.


성: 교수를 목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지나고 보니 하나님이 선하게 사용해 주신 결과입니다. 오히려 교수이기에 사람들이 선입견을 갖는 경우도 많습니다.


몽: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인가요.


성: 동등한 신앙을 나누는 데 방해될 때가 꽤 있습니다. 상대방이 지레 위축하거나, 반대로 제 명예만을 이용하고자 껍데기 같은 대화를 걸어오는 분들이 있죠.


몽: 껍데기는 아무것도 아닌데도요. 세상이 참 씁쓸하게 느껴질 때도 있겠습니다.


성: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를 끊임없이 낮추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세상 직분으로 교만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고개들지 못하게 하는 훈련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몽: 교수님 역시 치열하게 아파하시네요. 밖에서는 서울대 교수라는 타이틀 덕분에 완벽하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성: 맞습니다. 저는 성인군자가 아니고, 그저 딸들에게 미안해하는 평범한 아버지이자 연약한 사람입니다. (웃음) 저도 참 부족한 사람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세상 살면서 제 힘으로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음을 매일 깨닫습니다. 그저 낮아진 마음으로 주께서 긍휼히 여겨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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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해 보였던 서울대 교수의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고백. 그 진솔한 낮아짐 가운데 현대사회 속 신앙인이 품어야 할 겸손의 가치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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