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주 기독연구원 느혜미야 교수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뒤늦게 신학의 길로 접어든 구약학자다. 필자(몽땅별)는 지난 14일 그와 만나 기독교 신앙에 대해 대담을 나눴다.
몽: 교수님께선 경제학을 전공한 후 뒤늦게 신학을 택했습니다. 이 배경은 무엇입니까?
김: 제 신앙의 절반은 20대 시절 학생운동에서 접했던 마르크스주의에서 나옵니다. 이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에서 기반합니다. 나머지 절반은 모교회 목사님을 따라 강원도 철원 기도원에서 경험한 성령 운동입니다. 그곳에서 질병이나 기구한 이들을 만나며 상처입은 자를 향한 긍휼을 배웠습니다.
몽: 그 긍휼은 교수님이 강조하시는 이른바 '당사자성(제3자가 아닌 당사자가 담론을 이끄는 주체가 돼야한다는 원칙)'이군요.
김: 맞습니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를 결정합니다. 생생한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성경 속 약자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은 거죠.
몽: E.H. 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습니다. 성경도 마찬가지로 과거 사건을 현재에 비춰 읽을 수 있지 않을까요. 다만 그렇게 할 때 보고 싶은 것만 골라 읽는 자의적 독해의 위험은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요?
김: 성경 스스로가 제시하는 보편적 기준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바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황금률입니다. 이 원칙에 비춰 볼 때, 예수님은 단순한 역사적 인물을 넘어 긍휼의 '상징'이 됩니다. 여호수아가 태양을 멈춘 것 같은 특수한 사건에서, 오늘날 적용가능한 긍휼과 사랑이라는 '보편'을 찾아내는 작업이 곧 성경해석입니다.
몽: 과거 성경이 지닌 한계는 구체적으로 어떤 예시가 있습니까?
김: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이집트로 가며 아내 사라를 여동생이라고 속인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당시 가장 큰 고통을 겪었을 사라에게 성경은 어떤 발언권도 주지 않습니다. 남성 서기관들이 그 시대 시각으로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현대 여성 성서학자들은 지워진 사라의 목소리를 복원하며 간극을 메우고 있습니다. 2000여 년 전의 텍스트를 문자 그대로 적용해 여성 목사 안수를 거부하는 것은 현실과 소통하지 않는 교리적 악습입니다.
몽: 성경을 관통하는 보편이 긍휼적 사랑이라면 기독교가 세상을 향해 실천해야 할 사랑의 방식은 무엇입니까? 비기독교인들은 종종 기독교 특유의 시혜적 태도를 불편해합니다.
김: 타당한 지적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사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내려다보곤 합니다.이슬람 국가에서 전도하고 싶다면 한국 내 이슬람을 먼저 존중해야 하고, 나의 이성애가 존중받길 원한다면 타인의 동성애도 존중해야 합니다. 상대가 원치 않는데 일방적으로 다가가는 것은 폭력입니다.
몽: 저 역시 고3 시절 성락교회 교회 분열 사태를 겪고, 일종의 반발심으로 동국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곳에서 스님들과 대화하며 관용을 배웠습니다. 기독교의 오만함을 객관적으로 보게 됐습니다.
김: 귀중한 경험입니다. 당사자를 만나보지도 않고 타 종교를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불교를 가짜라고 비난한다고 기독교가 진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는 타자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세상을 향해 "저도 잘 모릅니다"라고 인정하는 겸손함이 이 시대에 필요한 전도입니다.
김: 교회 분열과 관련해 성락교회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한국 교회사에서 주류에서 밀려나 고립된 집단은 대개 극우화하거나 소멸했습니다. 성락교회 개혁 측은 과거를 끊어내고 새로운 체제를 구축해 진보적 목소리까지 징계 없이 포용하고 있습니다. 타 교회는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 이는 한국 교회사적으로 의미 있게 다뤄질 만한 현상입니다.
몽: 하지만 저희 교회가 마냥 진보적인 것은 아닙니다. 이른바 윤어게인을 포함한 보수 성향의 청년을 포함해 다양한 스펙트럼이 혼재합니다. 이들은 교수님이 지난해 여름수련회에서 하신 정치적 발언에 다소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김: 거친 표현 때문에 불편하셨을 분들에게는 사과드립니다. 이사야서를 통해 비판적 메시지를 전한 이유는 제가 생각하는 성경적 가치가 노동자·성소수자·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정부가 약자의 삶에 무관심하다고 판단해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지지 정당을 떠나, 약자가 안전한 세상을 바라는 지향점은 다르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몽: 20대 청년 남성들은 진보 진영의 위선에 강한 거부감을 느낍니다. 겉으로는 평등과 진보를 외치면서 뒤로는 비위를 일삼는 86세대 정치인들에게 실망해, 차라리 노골적이더라도 위선이 덜해 보이는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김: 기성세대가 심각하게 들어야 할 대목입니다. 현재 20대 남성들은 학창 시절 내내 여학생들에게 학업 등에서 밀리며 위축된 경험을 공유하는 세대입니다. 이들이 성인이 되어 '여성 차별'이라는 프레임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당사자성을 기성세대(86세대)는 먼저 인정하고 들어야 합니다. 청년들을 다 안다는 오만을 버리고 그들의 박탈감을 있는 그대로 경청하는 것이 기독교적 '환대'의 연장선입니다.
몽: 저 역시 방황합니다. 율법적 잣대로는 주일 성수도 지키지 않는 사람이죠. 그럼에도 기독교의 본질은 율법이 아닌 예수의 긍휼적 사랑이라는 태도로 신앙의 끈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 기독교의 본질을 '사랑'으로 정의한 것은 정확한 통찰입니다. 기독만이 진리라고 고집할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결국 사랑이 이긴다"고 겸손하게 고백하는 삶이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