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해부]② 공익 없는 편집장, 유튜브 알고리즘

by 몽땅별

기자가 쥐고 있던 커터칼 권력은 이제 유튜브라는 새 주인을 맞이했다.


미디어는 진화해왔다. 단일 소통을 전제하는 초기 인터넷 시대, 이른바 Web 1.0 시대는 레거시 미디어가 주도하는 '읽기 전용'의 세계였다. 언론사가 생산한 기사를 독자들이 읽는 것이 전부였던 시절이다. 훈련받은 소수의 편집자와 기자들은 정보의 문지기(게이트키퍼)를 자처했다. 그들은 본인이 생산한 정보가 중립성과 공공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주장했다. 독자는 그 질서를 신뢰했다. 적어도 그렇게 믿었다.


쌍방향 소통을 전제로 하는 Web 2.0의 출현과 함께 이 구도는 무너졌다. 유튜브가 등장했다.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고 댓글을 달고 공유할 수 있게 됐다. 편집장의 자리는 알고리즘이 차지했다. 기자가 수십년간 독점해온 취사선택의 권한 역시 알고리즘의 손으로 넘어갔다.


문제는 이 새로운 편집장이 진실과 공공의 이익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알고리즘이 최우선으로 삼는 기준은 사안의 공익성이나 사실 여부가 아니다. 사용자가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 얼마나 많이 공유하는지다. 클릭을 부르는 자극적인 제목이 정확한 팩트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 거대한 서사로 존재하던 지식은 자극적인 가십을 덧붙인 채 조각조각 파편화하기 시작했다.


파편화는 멈추지 않는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과거 행동을 분석해 끝없이 유사한 콘텐츠를 밀어넣는다. 독자들은 이 가운데 비슷한 정보와 이념만 반복 소비한다. 이른바 '필터 버블'이다. 과거 공론장이 지향하던 중립성과 공공의 참여는 필터버블 안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독자는 진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다. 알고리즘이 보여주기로 결정한 세상만 보게 된다.


기자의 커터칼이 사욕에 의해 오용될 위험이 있었다면, 알고리즘의 칼날은 아예 공익이라는 개념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 전자는 타락한 개인의 문제고, 후자는 설계 구조의 문제다.


기자가 칼을 쥐고 있던 시대에는 기자의 양심이 책무성의 기준이었다. 청탁을 받을 때마다 기자는 딜레마에 빠졌다. 그 갈등이 적어도 저널리즘 윤리를 살아있게 했다. 기계는 딜레마를 느끼지 않는다.


알고리즘 시대의 책무성은 구조 자체를 바꾸는 방향에서 찾아야 한다. 플랫폼은 추천 메커니즘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독자는 알고리즘의 편향을 인지하고 능동적으로 소비해야 한다. 언론사는 언론 권력이 약화하고 있는 가운데라도 끝까지 파편화힌 정보의 맥락을 붙들어줘야 한다.


기자 한 사람의 양심으로 감당하던 책임이 이제는 언론사·플랫폼·독자 모두에게 분산됐다. 단독의 책임이 아니라 혼합된 책임이 필요하다.


블록체인 기반의 탈중앙화 환경, 즉 Web 3.0이 도래하면 파편화는 한층 더 심화할 것이다. 사용자가 데이터와 콘텐츠의 소유권을 직접 쥐는 세계에서 정보는 더욱 잘게 쪼개지고, 공론장은 더욱 좁아질 수 있다.


커터칼은 인간의 손을 떠났다. 그 칼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 채 정보를 소비하는 것은 방향도 모른 채 칼 위에 손을 얹는 일과 다르지 않다. 알고리즘이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숨기는지 읽어내는 힘, 파편화된 정보를 다시 엮어 맥락을 복원하는 능력. 그것이 커터칼을 빼앗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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