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나무 사이를 가로지르며

봉사의 시작

by 쿠쿠


동이 채 트기 전, 침낭에서 하나둘 부스스하게 일어나 작업복을 입고 정신없는 상태로 아침을 먹었다. 매일 다른 사람들과 삼삼오오 연장을 들고 가 각자의 상실과 슬픔이 있는 곳의 사람들을 돕는다. 애초에 산불 복구 봉사인 것을 알고 왔지만, 도무지 무엇을 보게 될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예측하지 못한 채 내 몸을 구겨 넣고 그렇게 한참 초원을 달렸다. 오래된 게시판과 주유소, 구멍가게를 겸한 가게 앞에서 오늘 우리가 도울 농부를 만나 또 한참을 달렸다. 이번엔 함께 달렸다. 끝없이 펼쳐진 그림 같은 풍경에 감탄하다, 문득 나무의 밑동이 모두 검게 그을린 것을 깨달았다. 순간 나는 갓 재앙을 당한 곳에 왔음을 새삼 깨달았고 그럼에도 끝없이 펼쳐진 싱그러운 초원을 보며 경외심을 느꼈다. 죽은 나무들이 범한 울타리를 하나하나 제거하며, 정녕 무엇이 무엇을 침범했던 것인지, 이렇게 드넓은 자연에 획을 그어 영토를 주장하던 녹이 슨 울타리들은 무엇을 위함이었는지 혼란스러웠다.

너무 추워 겹겹이 두른 옷이 무색하게 우리는 땀을 뚝뚝 흘리며 울타리를 자르고 막대기를 파내는 작업을 반복했고 마침내 태양이 하늘 가운데에서 작열하자 하나둘 허물을 벗어냈다. 근처에서 어슬렁 거리는 소들은 더 이상 우리를 신경 쓰지 않을 때 즈음, 불에 탄 울타리를 모두 제거했다.


생각보다 일찍 끝난 오전 봉사로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가 미리 만든 점심 샌드위치를 쑤셔 넣었다. 곧바로 다른 농가에 투입된 우리는 이번에도 비슷한 업무를 맡게 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곳은 화재의 흔적이 너무도 짙게 남아있었다는 것이다. 머리부터 끝까지 거멓게 탄 나무들 사이로 녹이 슬고 뾰족뾰족한 울타리를 자르고 돌돌 말아 한 곳에 치우는 일을 반복했다. 우리가 치워야 할 울타리에 쓰러진 나무는 방해물일 뿐이었고 가지를 쳐내고 쇠를 굴릴 때마다 딱딱 소리를 내며 한 번 더 죽어갔다. 강가에 있는 울타리를 마지막으로 두 번째 일이 끝났고 말똥말똥 우리를 바라보는 열두 마리의 알파카를 지나가며 이마를 훔쳤다.

새까맣고 무성한 나무 사이사이로 푸른 하늘이 걸려 있었고 차는 무심하게 달릴 뿐이었다. 왈라비가 강종강종 뛰어갈 때 우리는 감탄하며 차를 세웠지만, 끝없이 펼쳐진 검은 숲을 달릴 땐 그저 도망치듯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다한 듯 보이는 검정 통나무 윗동에서 눈부신 연둣빛 새잎이 무성하게 솟아난 것을 목격할 때마다, 이 곳의 주인이 우리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안도감에 졸음마저 쏟아졌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빌렸다. 밤에는 눈부시게 낙하하는 유성을 보면서, 그렇게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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