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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ungoo Mar 05. 2024

그림쟁이의 남편 - 03

그림과 마주하기까지

종이와 연필을 챙기라 했다. 나의 강요에 귀찮은 내색을 비치면서도 아내는 결국 그것들을 챙기곤 했다. 한 번도 그림을 완전히 잊었던 적은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아내 곁에 그림이 없어진다는 것을 나는 상상해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정작 아내는, 마음의 짐이 되어버린 그림을 영영 벗어버리고 싶다고 했다. 미련은 기필코 허탈함으로 되돌아올 뿐이니 포기라는 해방을 택하고 싶다고 했다. 아니야, 정말 그렇게 된다면 너한텐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나는 말했다. 언젠가 반드시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살아갈 거라고 나는 장담했다. 사실 아내 역시 그림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데 전혀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런 자신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겉으로는 완전히 포기한 척했으며, 그런 연극으로 자기마저 속일 수 있길 바랐을 뿐이다.


아내의 그림 그리는 모습을 처음 본 것이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자연스러움, 종이 위의 그어지는 선들이 그랬고 선을 따라 움직이는 연필쥔 손길이 그랬다는 것만 또렷할 뿐이다. 그런 모습을 동경했고 그어진 선들이 기분 좋았고 결과물은 항상 궁금했다. 여행이든 산책이든 카페에 갈 때면 마주 앉은 나의 모습과 주변의 소소한 것들을 자주 그렸다. 그때의 그림들을 다시 꺼내어 보노라면 마치 오래된 앨범을 펼쳐든 듯 추억을 회상하게 된다. 오히려 사진을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사소한 기억까지 떠오르곤 한다. 그 장면을 담기 위해 카메라 렌즈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긴 시간을 응시했을 것이다. 


아내가 그렇게 그리는 동안 거의 항상 피곤한 나는 졸고 있을 때가 많았고 그림을 완성할 때까지가 나의 낮잠 시간으로 정해지는 듯했다. 사실은 나의 강박적인 억지에 의해서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불합리한 억압을 받은 듯 잔뜩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결국 그림에 빠져있을 아내를 알기에 그다지 미안하지 않았다.


강경의 어느 카페에서 (종이에 연필)


한낮의 커피 브레이크 (종이에 볼펜 및 만년필)


그림이란 아내에게 결코 가벼운 취미 따위가 될 수 없음은 분명했다. 절대 잊어버릴 수도 없고 훼손되어서도 안 되는 자신의 단 하나뿐인 정체성처럼 여겼다. 동시에 그와 마주 서면 하염없이 헐벗겨져 초라한 현실을 직시하여, 그래서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까 두려워 가까이 다가갈 엄두도 못 내는 저주 같은 애증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애써 그림을 피하기 위해 부러 다른 일들에 도전해 보기도 했으나 어떤 것도 아내의 냉랭한 심장에는 접근초자 하지 못했다. 이후 화실 몇 군데를 다니다 다행히 좋은 선생님을 만났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면서 아내는 서서히 그림과 대면할 마음의 준비를 다진 듯하다. 비로소 자기만의 그림을 찾기 위한 험난하고도 설렘 가득한 모험의 도입부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림의 꿈을 접었던, 그래서 제자리에 멈춰 있던 시기가 너무 길어진 아내는 그림을 진지하게 대면할 용기가 도무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쓸모없는 인간이 되긴 그보다 더 싫었다고 한다. 도대체 무엇을 그리고 싶어 이렇게 먼 길을 애써 둘러왔는지 그 이유는 전혀 알지 못한다. 인생에 굳이 들리지 않아도 좋았을 강요받은 경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 모든 과정에는 분명 의미가 있게 마련이다. 형편이 좋아 회화과로 진학했거나 더 빨리 시작했다면 지금쯤 제대로 된 작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 한 치의 의심 없이 결단코 그럴 리가 없다는 견해에 우리는 완전히 의견을 일치한다. 순탄치 않은 길이었기에 많은 순간 그토록 평범해지길 바랐지만, 그러한 삶으로 형성된 인격과 개성은 결코 평범하지 않기에 조금은 만족스러운 것이다. 


의도치 않게 조금 무거운 이야기가 되어버린 듯하다. 아내의 지난 고민들이 '데미안' 속 싱클레어의 그것 정도의, 내면의 복잡한 갈등으로 말미암아 본인조차 형언하기 힘든 방황과 좌절에 휩싸여 빠져나올 수도 없는 소용돌이와 같은, 심오한 과제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겠다. 적어도 그림이라는 목적은 뚜렷했으니 말이다. 나 역시 크로머에 의한 지옥 같은 좌절에서 아내를 완전히 구출해 주거나, 그녀 곁에서 언제든 현명하고 진취적인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줄 데미안이 전혀 되어주지는 못한다. 그저 가끔씩 호밀밭 속에 스스로 갇혀, 눈앞이 가려진 채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그런 아내를 기필코 지켜줄 파수꾼이라도 될 수 있길 소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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