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자와 안태은 노무사의 ‘직장에서 살아남기’ 꿀팁
지진에서 살아남기, 홍수에서 살아남기도 중요하지만 이 땅에서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무엇보다 직장에서 살아남는 일이 중요합니다. 노무법인 정명 안태은 노무사와 구희언 기자가 앞으로 직장인들이 직장에서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는 꿀팁을 알려드립니다.
구 기자> 오늘은 모든 직장인이 가슴에 품고 산다는 ‘사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해요. 퇴사를 할 거면 3개월 전에는 미리 얘기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는 사연인데요.
안태은 노무사> 아니오. 전혀 그럴 필요 없어요.
구 기자> 그렇죠. 3주도 아니고 3개월이라니, 잘 모르는 저도 말이 안 되는 걸 알겠어요. 그런데 퇴사 통보 기간에 대해 고민하는 직장인이 많거든요. 포털 사이트에서 ‘퇴사’라고 치니까 바로 뒤에 연관 검색어로 붙는 게 ‘통보 기간’ 일 정도로요. 보통은 한 달 정도 전에 퇴사 의사를 밝히면 되는 걸로 많이들 알고 있는데….
안태은 노무사> 아니오.
구 기자> 아닌가요?
안태은 노무사> 정말, 정말 아니에요. 원한다면 오늘 통보하고 당장 내일 그만둬도 상관없어요.
구 기자> 아, 정말요?
안태은 노무사> 상담하다 보면 이 부분에 대한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아요. 30일이 법에서 정한 기한인 줄 아는 분도 많은데요. 근로기준법 제7조 ‘강제근로의 금지’ 조항을 보면 사용자는 폭행, 협박, 감금, 그 밖에 정신상 또는 신체상의 자유를 부당하게 구속하는 수단으로써 근로자의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근로를 강요하지 못한다고 나와 있어요. 당장 그만둘 때에 손해를 끼칠 수 있으면 손해배상을 해야 하지만 웬만한 근로자들은 그런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에 고의나 중과실이 아닌 이상 손해배상의 의무가 없죠. 예를 들어 내일 중대한 발표를 맡은 발표자인데 내일부터 나오지 않겠다고 하고 그로 인해 회사가 손실을 입었다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보통 퇴사를 바로 하지는 않죠. 현실적인 면에서 한 달 전에 이야기를 하는 것일 뿐 정해진 퇴사 통보 기간은 없어요.
구 기자> 왜 직장인 사이에서 ‘퇴사=30일 전 통보’가 정설처럼 되어 있죠?
안태은 노무사> 근로기준법 제26조의 ‘사용자는 근로자를 해고(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를 포함한다)하려면 적어도 30일 전에 예고를 하여야 한다’라는 조항과 민법 조항 등이 뒤섞이면서 일종의 도시전설처럼 굳어진 게 아닐까 싶어요.
구 기자>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퇴사 통보를 언제 할지 고민하는 글들을 살펴보면 댓글에 ‘30일 전 통보’의 근거로 민법 조항을 끌고 오는 누리꾼도 많던데요.
안태은 노무사> 민법 제660조 ‘기간의 약정이 없는 고용의 해지통고’ 2항의 ‘상대방이 해지의 통고를 받은 날로부터 1월이 경과하면 해지의 효력이 생긴다’는 부분 때문에 많이들 오해하는데요. 이건 사실 사표 수리를 차일피일 미루는 사용자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고자 생긴 항목이거든요. 사표를 냈는데 몇 달씩 수리를 안 해주면 곤란해지잖아요. 1항에 ‘고용기간의 약정이 없는 때에는 당사자는 언제든지 계약해지의 통고를 할 수 있다’라고 쓰여 있는 것만 봐도 이 법이 근로자를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죠.
구기자> 그럼 퇴사를 세 달 전에 통보하라고 해놓고 기한을 다 채우지 않으면 퇴직금을 깎겠다는 식의 협박은 성립할 수 없겠네요?
안태은 노무사> 당연히 안 되죠. 그러나 사직서 수리를 한 달 동안 안 하고 무급 처리하면 퇴직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평균임금이 낮아지게 되는데 이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퇴직금을 깎는 경우는 있어요. 그리고 사직서 수리 시까지 재직이기 때문에 그 기간까지 퇴직금 지급을 늦출 수도 있죠. 퇴직금은 원래 퇴사 후 14일 이내 지급해야 해요. 법에 나와 있어요. 근로기준법 제36조 ‘금품 청산’ 항목에 보면 사용자는 근로자가 사망 또는 퇴직한 경우에는 그 지급 사유가 발생한 때부터 14일 이내에 임금, 보상금, 그 밖에 일체의 금품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나와 있어요. 다만,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에는 당사자 사이의 합의에 의하여 기일을 연장할 수 있는데 이게 보통은 다음 급여일이 되는 식이죠.
구 기자> 퇴사하기 전 연차를 의무적으로 소진해야 하나요?
안태은 노무사> 그럴 필요 없어요. 연차는 사용자가 주는 게 아니라 근로자가 청구하게 되어 있어요. 이 때문에 회사에서 임의로 소진하게 할 수는 없죠. 연차를 다 쓰지 않고 퇴사하면 돈으로 돌려받게 돼요.
구 기자>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지만, 그래도 사용자와 근로자 간 최대한 얼굴 붉히지 않고 이별하는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요.
안태은 노무사> 일단 두루뭉술하게 퇴사하겠다고 하지 말고 사직서에 퇴사 날짜를 명시하는 게 중요하겠죠. 그리고 맡은 직무마다 다르고 이게 의무는 아니지만 인수인계나 다음 사람을 뽑을 시간 등을 준다는 의미에서 퇴사 한 달 전에 퇴사하겠다고 회사에 알려주는 것이죠. 하지만 배려일 뿐 의무는 아니라는 점 명심하세요. 누구에게나 내일 당장 퇴사할 자유는 있으니까요.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70214/82860496/1#csidxa405ae6f0ee44bd9aad85440706c5f9
안태은 노무사는? / 노무법인 정명 대표. 실업급여가 받고 싶은 10년 차 노무사. 서울시 글로벌센터 외국인 근로자 상담위원, 여성가족부 워킹맘 워킹대디 고충상담위원, 고용노동부 청소년 근로조건 보호위원, 서울시 노동권리보호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소통을 좋아하고 맛집을 사랑하는 열혈 노무사.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taeeun.an/
이 기사는 영국에서부터 시작되어... 가 아니라 실제로 이 기사를 보고 3명이 퇴사했습니다. 행운의 편지처럼 돌고 돌아 퇴사의 기운을 불러일으키는 신령스러운(?) 기사입니다. 그러니 읽다 불현듯 자신도 모르게 휴먼 굴림체로 사표 타이핑해서 프린트하게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하세요. 아니다, 사실 기사는 핑계일 뿐 고민하던 (애사심 말고) 퇴사심을 굳힐 수 있게 돕는 셈이니 긍정적인 건가요? 어째 이번 편은 직장에서 살아남기가 아니라 직장에서 탈출하기 같네요. 이 기사 덕에 퇴사할 결심을 굳히고 실행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묘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참고로 이 기사를 쓴 저는 아직까지는 퇴사를 하지 않았어요. 질기죠. 항마력이 아직은 남아 있나 봅니다. 하지만 또 모를 일이지요. 우선은 이 행운의 기사(?)가 영향을 끼쳐 퇴사를 마음먹은 이들이나 퇴사한 이들의 앞날을 응원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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