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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기자 Aug 03. 2020

K-뮤지컬 변화의 10년에 그가 늘 함께 있었다

뮤지컬 데뷔 10주년 맞은 가수 겸 배우 김준수를 만났다

뮤지컬 배우 데뷔 10주년을 맞은 가수 겸 배우 김준수. / 씨제스엔터테인먼트

뮤지컬 ‘모차르트!’가 올해 한국 초연 10주년을 맞았다. 그리고 2010년 뮤지컬 ‘모차르트!’ 초연에서 주인공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역을 맡아 처음 업계에 발을 들인 ‘새내기’도 올해 뮤지컬 배우로 활동한 지 10주년을 맞았다. 이제 ‘아이돌 출신 배우’에서 ‘믿고 보는 뮤지컬 배우’가 된 가수 겸 배우 김준수. 7월 30일 오후 그를 만나 한국 뮤지컬 업계 변화의 10년과 함께 한 삶을 들었다.

올해 공연계는 코로나 19로 큰 타격을 받았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올 상반기 공연계 전체 매출은 969억원으로 2019년 하반기 매출(1916억원)에 비해 49.4% 감소했다. 10주년 기념 공연을 준비하던 EMK 뮤지컬컴퍼니도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한 정부의 수도권 방역 강화 지침에 따라 공연을 한차례 연기했다가 6월 16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작품을 올릴 수 있었다. 팬들의 성원 덕에 8월 9일까지 공연할 예정이던 작품은 8월 23일까지 연장을 확정했다.

“개막 연기 소식을 듣고 걱정이 없지는 않았어요. 다른 공연들은 아예 취소되기도 했거든요. 아예 공연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철렁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더더욱 이런 와중에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게 정말 소중하게 느껴져요. 원래도 매 순간 모든 무대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소중한 마음으로 올랐지만요. 세 시간 가까이 마스크를 벗지 않고 힘든 와중에도 공연을 보고자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신 관객 덕에 이렇게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연기하는 일상이 참으로 귀한 것이라는 걸 다시 느꼈어요.”     


240만 명 관객 동원한 히트작     

뮤지컬 배우 데뷔 10주년을 맞은 가수 겸 배우 김준수. / 씨제스엔터테인먼트

한국 초연 10주년인 뮤지컬 ‘모차르트!’는 천재 음악가로서의 운명과 자유로운 인간이고 싶은 내면이 끝없이 충돌하는 모차르트의 고뇌를 담은 작품이다. 뮤지컬 시상식 11개 부문에서 상을 휩쓸었고, 전 세계 9개국에서 2200회 이상 공연되며 240만 관객을 동원한 히트작. 국내에서는 당시 ‘동방신기’로 데뷔해 ‘JYJ’로 활동한 아이돌 가수 김준수가 주인공으로 캐스팅돼 화제를 모았고, 그가 출연한 15회는 4만 5000석이 매진됐다. 그가 출연한 회차 티켓을 파는 암표상까지 등장할 정도로 인기였다. 오랫동안 톱스타였고 이후 뮤지컬 ‘엘리자벳’, ‘드라큘라’, ‘데스노트’, ‘도리안 그레이’ 등 다양한 작품을 흥행시키며 가창력과 춤 실력, 티켓 파워까지 인정받은 몇 안 되는 배우지만 ‘천재’는 절대 아니라며 손사래 친다.

“2010년 처음 이 작품에 출연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는 너무나 많은 변화를 겪고 심적으로 되게 많이 위축되어 있어 힘들던 시기였어요. (2009년 소속 연예기획사와 전속계약 분쟁 당시) 이러려고 연예인을, 가수를 했나 회의감이 들기도 했죠. 그때는 도전해보지 않은 뮤지컬로 대중에게 나선다는 것 자체가 두렵고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그래서 거절하기도 했죠. 한 번은 집에 있다가 무심코 책상 위에 놓인 대본을 봤어요. 모차르트는 천재이고 저는 그렇지 않다는 점은 달랐지만, ‘왜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느냐’고 외치는 그의 상황이 당시 제 상황과 비슷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세상에 외치고 싶었던, 가슴에 응어리진 말들이 가사에 담겨 있었어요. 그러다가 ‘네 꿈을 찾고 싶으면 성벽을 박차고 세상을 향해 나가라’는 가사의 ‘황금별’ 노래에 무너져 내리듯 울었던 기억이 나요.”     

천재 음악가의 고뇌를 다룬 뮤지컬 ‘모차르트!’. / EMK뮤지컬컴퍼니

그는 “이 배역을 맡아 성공하지 못하고, 욕을 먹더라도 단지 모차르트의 입을 빌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수락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김준수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이 됐다. 그는 “저를 뮤지컬로 인도해준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한 작품”이라고 ‘모차르트!’에 대해 말했다. 

김준수는 “이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는 모차르트가 성공한 천재적인 음악가인 줄로만 알았지 그렇게 시련이 많은 삶을 살았는지 몰랐다”라고 말했다. 그건 ‘인간 김준수’가 아닌 ‘톱스타 김준수’에 대한 대중의 선입견과도 궤를 같이한다. 많은 뮤지컬이 오픈과 함께 홍보에 열을 올리며 다양한 지상파 TV 프로그램과 라디오에 배우들을 출연시킨다. 지난 세월 ‘홍보의 장’에서 그를 볼 수 없었다. 많은 이들, 심지어 방송 관계자와 업계 사람들마저 ‘김준수 회차는 티켓이 워낙 잘 팔리니까 따로 홍보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걸까’ 생각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줄곧 방송 출연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임영웅, 영탁, 이찬원, 장민호, 김희재, 정동원, 김호중 등 트로트 스타를 배출한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미스터트롯)’에 ‘마스터’로 나왔을 때 팬들의 호응도 대단했다. 현재 그는 프로그램에서 마스터와 참가자로 만난 뮤지컬 배우 겸 가수 신인선(엠마누엘 쉬카네더 역)과 ‘모차르트!’에서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성악 일변도의 시장을 바꾸기까지     

천재 음악가의 고뇌를 다룬 뮤지컬 ‘모차르트!’. / EMK뮤지컬컴퍼니

몇 년 전 뮤지컬 전문가들에게 ‘지금 뮤지컬을 하는 아이돌 중 10년 뒤에도 살아남을 것 같은 사람’을 꼽아달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이름이 김준수였다. 아이돌 출신에 대한 선입견이 강한 업계에서 이처럼 오랫동안 사랑받은 데에는 스타성을 뛰어넘은 실력이 있었다. 정작 그는 “내일 당장 이 모든 게 끝날 수도 있다는 절실함”을 생명력의 원천으로 꼽았지만 말이다.

“절실했죠. 다른 분들에게도 절실하겠지만, 제게는 뮤지컬이 마지막 남은 칼 한 자루 같은 느낌이었어요. 이 칼 마저 녹슬어버리면 끝난다는 마음으로 공연에 임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달라진 점이요? 예전에는 연습 현장에서 ‘준수야’라고 불리고 저도 형, 누나가 많았는데 이제는 ‘준수 오빠’ ‘준수 형’하는 동료들이 많아졌다는 점 정도죠(웃음).”     

지금은 그만의 강점인 허스키한 보이스와 특유의 창법은 뮤지컬 데뷔 당시에는 ‘독’이었다. 업계에서 성악적 발성이 정답으로 통용되던 시절이다. 그는 “지금은 노래도 창법도 다양해졌다. 이제는 격투기로 치면 UFC에서 무에타이 하는 사람도 있고 쿵후나 복싱하는 사람도 있다는 게 예전과 달라진 부분이다. 아마 지금 데뷔했으면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다”라며 웃었다.

“이제는 작품이 다양해져서 알앤비 창법이 더 어울리는 작품도 있고, 랩을 하는 작품도 있어요. 록처럼 내지르기도 하고요. 그러나 저도 뮤지컬 무대에 처음 설 당시에는 성악이나 오페라 같은 창법을 쓰시는 분들이 많아 고민이 됐고 실제로 그런 발성과 창법을 배우고 따라 해 보려고도 했어요. 그런데 유희성 감독님께서 ‘괜히 그런 걸 따라 하다 너의 개성까지 잃어버린다. 그런 노래를 듣고 싶은 사람들은 어차피 그 배우 캐스팅으로 볼 것이니 너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만의 무기를 보여줘라’라고 조언해 주셨어요. 그 말씀을 들으니 제가 가야 할 방향이 보였어요. 이제는 색다른 창법이 어느 정도 수용되는 분위기가 됐고, 편견이 많이 없어진 거 같아서 한편으로는 뿌듯함도 느껴요.”     


캐스팅 스펙트럼 변화에 일조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초현실적인 죽음 캐릭터를 연기한 김준수. / EMK뮤지컬컴퍼니

2010년부터 그가 출연한 작품 대부분을 관람했는데, 춤과 노래 외에도 도드라지는 장점이 있다면 대사를 틀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베테랑 배우 중에서도 대사를 틀리는 배우들이 꽤 있다는 걸 감안하면 세 시간가량의 극에서 실수하지 않는다는 건 엄청난 연습량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옷이 계속 안 입어져서 애드리브를 하며 넘긴 적이 있다”면서도 “자랑 하나 하자면 원래도 실수하는 편이 아니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지금은 아이돌들이 뮤지컬로 오는 게 환영받고 존중받는 분위기라면, 저는 욕부터 먹고 시작했거든요. 그때의 분위기와 특수성 때문에 충분히 이해하고 그런 것에 불만을 느끼지는 않았어요. 다만 다른 배우가 실수하면 웃고 넘어갈 것을 저는 하면 진짜 큰일 난다는 생각으로 자기 최면을 걸었어요. 누가 노래 부르다 ‘삑사리’ 내면 넘어갈 수 있어도 ‘준수야, 너는 삑사리 내면 끝난 거다’라고 되뇌곤 했죠. 매 순간 그렇게 강박적으로 공연에 임했어요.”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초현실적인 죽음 캐릭터를 연기한 김준수. / EMK뮤지컬컴퍼니

그는 뮤지컬 배우로 뿌듯했던 순간 중 하나로 “‘엘리자벳’의 토드(죽음) 역할로 무대에 섰을 때”를 꼽았다. 그가 뮤지컬 ‘엘리자벳’의 죽음 역으로 캐스팅됐을 당시만 해도 전 세계적으로 죽음 역은 중년 배우들이 주로 맡아왔다. 그런 흐름을 바꾼 것도 김준수였다. 

“데뷔했을 때보다 2012년 ‘엘리자벳’ 죽음 역을 맡았을 때 욕은 더 많이 먹었던 거 같아요. 기존의 죽음 역할과 이미지도 보컬도 달랐으니까요. 기존 스타일로 하면 잘 해낼 자신은 없지만 자율성이 주어진다면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죽음 자체가 인간이 아니라 의인화된 캐릭터였기에 남성이지만 여성 같기도 하고 제3의 성일 수도 있는 캐릭터로 만들고자 했어요. 그간 뮤지컬을 하며 생각해온 걸 마음껏 넣은 첫 작품이었죠. 처음에는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저에 대한 ‘욕 잔치’였는데, 이제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제 영향으로 젊은 배우들이 배역을 맡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걸 들으면 뿌듯하고, 처음으로 뮤지컬 팬들에게도 인정을 받은 것 같아 좋았어요. 남우주연상(2012년)도 이 작품으로 받을 수 있었고, 배우로 도약하게 해 준 작품이죠.”     


창작 뮤지컬에 도전하는 이유     

뮤지컬 배우 데뷔 10주년을 맞은 가수 겸 배우 김준수. / 씨제스엔터테인먼트

그는 “뮤지컬 업계가 10년 전과 비교하면 많이 커졌다. 앞으로 더 커진다면 더 관대해지리라 생각한다”라며 “그런 세상이 빨리 오면 좋겠고, 그 파이를 키우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작품에서 알앤비 가수 역할을 맡았다면 좀 더 제 옷 같았겠지만 발전하지 못하고 머물러 있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아이돌 출신이 비교적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주크박스 뮤지컬 대신 정통 뮤지컬에 도전하고, 흥행이 보장된 라이선스 뮤지컬이 아닌 창작 뮤지컬에도 꾸준히 출연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오래전 한 인터뷰에서 제가 뮤지컬 분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이바지하고 싶다고 했거든요. 업계 특성상 창작 뮤지컬이 쉽게 경쟁에 뛰어들기 힘든 분위기인데 ‘창작 뮤지컬을 누가 보러 가?’ 하는 상황이지만 ‘1년 혹은 길면 2년에 하나씩은 창작 뮤지컬을 하자’고 다짐을 했어요. 가끔은 선배들도 그런 저를 신기하게 또는 기특하게 봐주세요. 안전하게 갈 수 있는데 왜 욕먹는 도전을 하느냐면서요. 음, 저와의 약속입니다.”

뮤지컬 배우 데뷔 10주년을 맞은 가수 겸 배우 김준수. /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인터뷰 내내 그는 겸손했다. 글로벌 스타에게 이 정도의 겸손함이라니, 만약 연기하는 거라면 남우주연상 감일 터였다. 작품마다 회차 대부분 매진에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산 그가 그 정도로 치열하게 살아온 건 뜻밖이었다. 그에게 “이제는 긴장을 풀고 조금은 거만해져도 되지 않을까. 플렉스(Flex) 해도 좋을 것 같다”라고 말을 건넨 이유다. 

“저는 정말 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고 공연 보러 와서 티켓 값 아깝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요. 저를 보러 왔다가 작품의 팬이 되거나, 작품을 보러 왔다가 저라는 배우를 만나 저의 팬이 되는 좋은 순환이 이뤄지면 좋겠어요. 항상 모든 무대를 기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이게 마지막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해요. 뮤지컬 제작이나 연출에 대한 욕심도 있어요. 군대 가기 전에 썼던 건데, 시나리오까지는 아니지만 제목이나 줄거리를 써놓은 건 있어요. 언젠가 될지는 몰라도 배우가 아닌 제작자로도 뿌듯하게 인터뷰하는 날이 올 수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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