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선은 최소화, 기다림은 적게, 가성비는 좋게
구기자의 폴로(POLO) 프로젝트
욜로(YOLO)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You Only Live Once. 너무 맞는 말이잖아요? 욜로 즐기다 골로 갈지언정 현재를 즐기자는 주의인데요. 그런데 열심히 욜로 라이프를 즐기다 보니 부모님 생각이 나더라고요. 부모님도 인생 한 번 사는 건 똑같잖아요. 그런데 자식 키우고 뒷바라지하느라 제대로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부모님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저희 부모님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저 혼자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일명 폴로(POLO) 프로젝트. Parents Only Live Once. 거창하지는 않아요. 방점은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효도할게요!' '나중에 돈 모아서 해외여행 보내드릴게요!'가 아니라 '오늘 몇 만 원짜리 사치라도 자식과 같이 즐겨봐요!' '해외여행 가실 여유가 없다면 국내에서 가성비 좋은 여행을 함께해요!'에 있습니다.
많이들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제 좀 효도해볼까 싶으면 부모님이 곁에 안 계시고, 효도를 한창 해야 할 때에는 내 삶에 여유가 없다고. 그래서 저는 그냥 야심 찬 큰 효도 안 하고 틈틈이 작은 효도 하기로 했습니다. 해외여행은 직장 생활을 하며 모두가 시간을 맞추기 어려우니 가까운 국내, 그리고 조금 더 잘 아는 서울 여행을 하기로 한 것이죠. 부모님과 함께, 효도 그레잇! 서울 투어(1박 2일)는 이번이 두 번째인데요. 고객(부모님)의 만족도가 나쁘지 않아서 루트를 공개합니다. 이번 효도 그레잇 서울 투어는 연남동과 명동의 핫플레이스들을 정복해 보는 일정으로 구성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아무도 운전하지 않고, 버리는 동선은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짜 봤습니다.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
디큐브아트센터 / 뮤지컬 관람
가족이 공연 보는 걸 좋아하고 제가 특히 뮤지컬을 좋아하기 때문에 일정에 꼭 뮤지컬을 넣습니다. 지난번에는 이태원 투어를 하면서 뮤지컬 '레베카'를 봤어요. 부모님이 가수 옥주현을 좋아하시거든요. 사실상 총알이 가장 많이 나가는 파트라고 봐도 무방하죠. 좋은 자리는 14만 원 선이지만 저렴한 자리는 3~5만 원 선이니 예산이 허락하는 대로 고르세요. 디큐브아트센터는 2층도 나름대로 볼만하더라고요. 이날의 빌리는 성지환 군이 맡아줬어요. 저렇게 연기하다가 다치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줘서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 뮤지컬 배우 최정원 씨의 관록 넘치는 연기와 노래는 더 말할 필요가 없지요.
대구 근대 골목 단팥빵 / 당 보충 디저트 타임
여기 생크림과 단팥이 조화를 이룬 단팥빵을 추천합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좋아해서 사드렸는데 단팥빵을 잘 먹지 않는 제 입맛에도 아주 맛있더라고요. 많이 먹지 않을까 봐 2개만 사 왔는데 1인 1 빵을 안 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배달도 되더라고요. 생크림 단팥빵은 하나에 2000원이었습니다.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 호텔 로비 라운지 바 / 풍경 감상(옵션 투어: 칵테일 바)
옵션은 두 가지였어요.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을 보고 바로 41층으로 올라가서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 호텔에서 저녁을 먹는다. 아니면 원래 가려던 홍대로 이동해 식사를 한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배가 당장 고프지 않다고 하셔서 이곳에서는 풍경만 잠깐 감상하고 내려왔습니다. 미피 전시와 딸기 뷔페가 한창이더군요. 술 좋아하는 부모님이라면 여기서 칵테일 한잔씩 해도 좋겠죠. 야경이 아주 멋지거든요. 칵테일은 2만 6400원, 딸기뷔페 가격은 4만 9000원, 뷔페 가격은 6만 6000원 선이에요. 늘 프로모션이 바뀌니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좋겠죠.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 -> 지하철 2호선 합정역 (택시 이동)
분짜라붐 홍대점 / 석식
부모님이 계셔서 동선은 무조건 택시로, 만약 택시가 안 잡히면 지하철로 갈아타지 않고 갈 수 있도록 짜 봤어요. 분짜라붐은 제가 좋아하는 베트남 음식을 파는 체인점이에요. 광화문에도 체인점이 있는데 동선상 홍대점이 나을 것 같아서 홍대점으로 갔지요. 분짜를 아주 좋아해서 친구들과 즐겨 갔는데 한식을 주로 드시는 부모님께도 한번 정도 맛 보여드리고 싶더라고요. 만약 좋아하지 않는다 하시면 볶음밥이나 쌀국수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맛있게 드셔서 만족했습니다. 고수 향을 싫어하면 미리 빼 달라고 말씀하세요.
짠내투어 같은 프로그램 보면 설계자가 예약한 식당에 동행인들이 갔는데 거기서 잘 먹고 만족스러워하면 설계자도 덩달아 기분 좋아하잖아요. 그 기분이 뭔지 딱 알겠더라고요. 분짜는 1만 3000원, 남방풍 매운 쌀국수는 9500원, 넴(짜조)은 6000원이었습니다. 이렇게 깔끔하게 비웠습니다. 이곳에서 파는 베트남 연유 커피인 카페 쓰어다는 SNS 이벤트가 있길래 냉큼 인증샷 찍고 무료로 득템 해서 맛을 봤어요. 한 잔에 3000원입니다.
블루먼데이 / LP바 체험과 음주
의외로 우리 또래가 좋아하는 건 부모님들도 좋아하실 때가 많더라고요. 너무 부모님의 취향을 올드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지난번에 이태원 투어를 했을 때도 부모님께서 루프탑 카페를 굉장히 좋아하셨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합정역 인근의 LP바에 갔습니다. 저는 이색 카페를 찾다가 가본 거였는데 여긴 또 부모님 대학생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공간이더라고요.
음료도 한 잔씩 시켜놓고 부모님께서는 대학 시절 연애할 때 들었던 음악을 신청하셨어요. 센스 있는 사장님께서 노래가 잘 기억 안 난다고 하니 해당 가수의 앨범을 쭉 틀어 주시더라고요. 부모님께서 이렇게 달달하게 있는 모습은 오래간만이었습니다. 역시 음악의 힘은 굉장해요. '블루 먼데이'는 1년 중 가장 우울한 날을 뜻하는 말이지만 부모님께서는 이곳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어 가셨어요. 칵테일은 대략 1만 원 대. 이외에도 맥주와 양주 등 다양한 종류의 술을 팔고 있어요.
더풋샵 서교점 / 마사지 체험
부모님께서 베트남 요리를 먹고 나니 예전에 베트남에서 마사지받았던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종종 마사지받으러 가는 더풋샵 서교점에 전화해서 물어봤더니 딱 그 타이밍에 3명 자리가 있다고 해서 냉큼 예약했어요. 다인권은 22만 원인데, 적립해둔 돈이 있어서 거기에 추가금을 내고 이용했어요. 더풋샵은 회원가로 해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날은 족욕과 발 관리, 좌식 스트레칭이 포함된 특수 발 관리를 받았어요. 회원가로 하면 한 명에 3만 3000원으로 1시간 동안 마사지와 족욕이 진행됩니다. 원래 40분짜리를 하려다 어쩐지 길어져서 뭔가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두 분이 만족하셔서 다행이었어요. 저도 이 핑계로 다리에 쌓인 피로 좀 풀었죠.
지하철 2호선 합정역 ->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택시 이동)
신라스테이 서대문 / 숙박
사실 동선상 홍대 쪽에서 자는 게 맞잖아요? 그런데 홍대 쪽은 제가 제대로 검색하지 못한 것인지 2인 투숙에서 3인이 되면 최대 4~5만 원까지 추가되더라고요. 그래서 주말 숙박인데 3명이어도 추가금이 없는 신라스테이 서대문에서 묵었어요. 너무 회사 근처라서 주말인데도 출근하는 기분이 들었던 걸 빼고는 부모님께서 침구며 어매니티에 만족해서 다행이었지요. 방도 따뜻했고요.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택시 이동)
하동관 / 조식 겸 중식
다들 늦게 일어났어요. 패키지여행이 아닌데 일찍 일어날 필요 있나요? 대신 호텔에서 뜨거운 물을 끓여 직접 가져온 차를 마시며 여유를 부리고 체크아웃 시간이 다 되어 일어났지요. 저는 여행지에서 언제나 밥시간을 어정쩡하게 잡곤 하는데요. 뭘 먹기 위해서 기다리는 걸 제일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가장 어정쩡한 시간에 택시를 잡아타고 곧바로 명동으로 향했어요. 곰탕이라 오전에 부모님이 뜨끈하게 드시기 좋을 것 같아 선택했는데, 알고 보니 여기에도 부모님의 추억이 있더라고요. 아버지께서 예전에 첫 직장 다닐 때 상사들과 왔던 곳이라고. 그때는 맛있는 줄 몰랐는데 지금 먹으니 맛있다고 하셨어요. 하하 그 마음 압니다. 누구랑 먹느냐가 제일 중요하지요. 이곳은 선불인데 곰탕 가격은 1만 2000원에서 1만 5000원입니다. 여의도에도 있고요. 일단 기다리지 않고 바로 나오는 데다가 맛도 어느 정도 보장되어서 부모님도 만족하셨어요.
커피한약방 & 혜민당 / 디저트 타임
제가 대학 다닐 때부터 늘 빼놓지 않는 것이 식후 땡... 이 아닌 식후 커피 타임입니다. 예스러운 느낌이 마음에 들어서 부모님도 좋아하시지 않을까 싶어 제 마음대로 일정에 넣었는데요. 옛 혜민서 자리였던 곳인데 한약은 팔지 않아요. 대신 빵과 커피를 팔지요. 한쪽에서 계산해서 가져오면 어느 쪽에든 앉을 수 있어서 일단 커피 향이 좋은 커피한약방에 자리를 잡았어요.
커피를 주문하고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저는 혜민당에 가서 빵 몇 가지를 집어왔습니다. 팥빵과 크로와상을 덥석 집었어요. 크로와상이 특히 따뜻한 커피와 함께 마시니 아주 좋더라고요.
오... 그런데 운이 좋았어요. 커피한약방에서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부모님과 함께 오면 어른들 음료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거예요. 덕분에 커피 세잔 중 부모님의 두 잔을 무료로 마실 수 있었어요. 무료 음료에 흥분해서 정작 커피를 찍은 사진이 없군요. 그래도 뭔가 효도도 하면서 센스도 있으면서 알뜰하기까지 한 자식이 된 느낌! 부모님께도 즐거운 서프라이즈가 되었어요. 이곳의 필터 커피는 3500원이고, 빵은 3000~5000원 정도 해요.
옛날 분위기가 물씬 나서 부모님께서 좋아하시더라고요. 이디야랑 스타벅스 말고도 시간 될 때 이렇게 체인점이 아닌 카페를 자주 모시고 가려고요. 하나하나 추억으로 남는다고 하시더라고요.
미스터힐링 종각역점 / 전신 마사지 + 카페 음료(옵션 투어)
이건 옵션 투어였어요. 전날 이미 발 마사지를 받았잖아요? 그래서 원래는 커피한약방을 갔다가 근처에 있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여드리려고 했었는데요. 부모님께서 특별히 당기는 작품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뭔가를 더 먹자니 배가 너무 불렀고요. 그냥 보내드리기에는 아쉬워서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 신문물(?)을 체험해 보시라고 강권해서 모시고 갔어요. 전신 안마의자가 있는 카페인데요. 1만 3000원을 내면 50분 동안 전신 안마의자를 이용할 수 있고 카페 음료도 제공돼요. 저는 소셜커머스에서 이용권을 구입했기 때문에 1인당 9900원에 이용했습니다. 현장에서 바로 이용권을 사지 말고 꼭 검색해보세요.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어요.
그렇게 월요일이 오는 게 싫은 부모님과 저까지 셋이 나란히 마사지를 받고 나와 따뜻한 티를 마시며 주말을 마무리했습니다. 부모님 연세가 되어도 출근하기 싫은 건 마찬가지라고 해요. 으으, 직장인은 다 똑같은가 봅니다. 출근하기 싫은 마음을 가득 안고 다음 1박 2일 투어를 기약하며 바이 바이 했습니다.
대충 1인당 얼마나 들었나 계산해봤습니다.
공연+빵+저녁+LP바+마사지+아점+커피&빵+마사지카페(숙박 제외)
100000+2000+13000+15000+33000+12000+6500+9900(숙박 제외)
대충 1인당 비용은 19만 원대로 들었네요. 하지만 여기에 공연 티켓 값이 들어간 거니 10만 원을 빼면 1인당 9만 원 정도로 부모님께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드릴 수 있어요! 물론 마사지를 두 번 받았으니 한 번을 빼면 더 저렴해지겠죠. 이번에 열리는 조용필 콘서트 3층 티켓이 99000원인 걸 생각하면 가성비 나쁘지 않은 효도 그레잇이 아닐까요?
서울에서 이태원과 홍대, 명동 쪽을 정복했으니 다음엔 강남 쪽으로 진출해볼까 해요! 부모님이 가기에 좋은 식당이나 핫플레이스가 있다면 추천 대환영입니다. 여러분도 효도를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여기서 조금씩 예산과 루트를 조절해서 도전해 보세요. 생각보다 더 많이 좋아하실 거예요. 부모님 선물로 '두툼한 현금 봉투'가 최고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 돈으로 가끔은 이런 '몸빵(?)'도 좋잖아요? 앞으로도 저만의 폴로(POLO) 프로젝트는 계속됩니다.
구석구석 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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