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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기자 Mar 01. 2018

집에서 넷플릭스만 구독해? 아티스트 작품도 구독한다

그림 구독 서비스 '핀즐' 공동창업자 진준화 대표가 꿈꾸는 공간의 변화

소비자가 달라졌다. 무언가를 소유하기도 공유하기도 싫은 사람들에게 지금 가장 핫한 소비 방식은 바로 '구독(subscription)'. 상품 경제에서 공유 경제로 변화를 거듭해온 소비자들은 이제 대 ‘구독 경제(subscription economy)’의 시대를 맞이했다. 넷플릭스나 어도비처럼 월 이용료를 내고 다양한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외에도 의류와 액세서리, 꽃과 반찬까지 음식, 패션, 뷰티 등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구독해서 이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아티스트의 멋진 그림을 박물관에서 유리 너머로 보지 않고 매달 구독해서 내 방에, 내 사무실에 걸어둘 수 있다면? 그림 구독 서비스 '핀즐'은 그런 단순하지만 명료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6번째 '핀즐'을 발행한 '핀즐'의 공동창업자 진준화 대표가 생각하는 아트란 무엇인지 궁금했다. 분명한 건 유리 너머에 있어서 다가가기 힘들고 접하기 어려운 엄숙한 것이 그가 생각하는 아트는 아닐 거라는 점이다.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핀즐 대표 진준화입니다. 4명의 공동창업자 중 한 명입니다. 부동산과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는 평범한 청춘입니다.


# 핀즐은 어떤 곳인가요. 핀즐의 역사를 간단하게 설명해주신다면요.

핀즐은 아티스트의 화풍을 의미하는 독일어 pinsel [pinzl]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스타트업이자 독립출판사이기도 한 작은 스튜디오입니다. 매월 새로운 해외 아티스트의 작품을 큐레이션 해서 집으로 배송하는 '그림 정기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그림이라고 하면 비싼 소장품이라는 느낌이 있는데, 그런 그림을 매거진처럼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출판물의 위치로 가져온 거죠.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매월 교체되는 그림’이라는 콘셉트로 아날로그인 실제 그림을 전달함으로써 많은 구독자들이 만족하는 서비스로 성장해 나가는 중입니다. 


아직도 예술은 조금 어렵게 느껴지고,
우리에게 그림은 여전히 비쌉니다.
하지만 그림을 곁에 두는 것에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모든 그림이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처럼
‘어렵게’ 걸려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요.
우리는 그림을 더 쉽게 즐길 수 있습니다.
하얀 벽 위에 주인공처럼 걸어두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구석에 세워서 밀린 빨래를 가릴 수도 있죠.
무거운 액자에 넣는 대신 가볍게 테이프로 붙여두고
가끔 바라보는 것도 좋습니다.
우리가 쉽게 책이나 영화를 즐기고,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것처럼요.


저는 작품 하나하나에 아티스트의 삶과 영감이 녹아있다고 생각해요. 작품이 단순히 이미지로만 전달되는 요즘의 유통 형태가 아쉬웠어요. 그래서 더 깊고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죠. 핀즐을 구독하면 매달 새로운 아티스트의 삶을 이야기로 편집한 매거진과 작품이 담긴 지관통을 받을 수 있어요. 아티스트의 대표작 중 하나의 작품을 큐레이션 하여 인쇄한 A1사이즈의 대형 아트웍 '핀즐프린트'와 아티스트의 삶을 매거진으로 편집한 ‘핀즐노트’,  Curation Journey를 담은 영상 ‘핀즐필름’을 함께 전달하는 거예요. 핀즐노트는 핀즐프린트와 함께 지관통에 담겨 안전하게 배송되며, 핀즐필름은 www.pinzle.net과 youtube, vimeo의 핀즐 공식 채널에서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지관통에서 그림을 꺼내 지난달의 그림과 교체해주면 공간과 일상 리프레시 완료입니다. 핀즐 = A1 아트 프린트 + 매거진 + 영상 콘텐츠 인 셈이죠. 그림은 A1의 대형 사이즈로 제공돼요.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고, 하나의 작품으로 공간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히 큰 사이즈거든요.

https://vimeo.com/pinzle


# 그림을 좋아하나요.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있나요. 어떤 풍의 그림이나 사진을 좋아하는지 개인적 취향을 들려주세요.

물론 그림을 좋아합니다.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 일을 할 수가 없죠. 제가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티스트의 특별한 이야기와 영감이 스며있기 때문이에요. 물론 작가의 생각을 더 직접적으로 담은 책이라는 콘텐츠도 있지만 아무래도 그림이 조금 더 자유롭고 부담이 덜한 것 같네요. 머리가 복잡해서 무언가에 몰입하고 싶을 때 도서관보다는 갤러리를 찾게 되는 이치와 같달까요.


저는 그림보다는 아트웍이라는 단어를 더욱 즐겨 쓰는데요. 아트웍에는 유화나 일러스트 같은 그림뿐만 아니라 사진이나 그래픽 디자인 등의 작품도 포괄할 수 있거든요. 이런 개념으로 보면 꼭 벽에 걸려있는 그림만 작품이 아니라 흔히 볼 수 있는 매거진의 한 페이지도 어느 디자이너의 멋진 작품이 될 수 있는 거죠.

요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어렵고 무거운 예술보다는 지친 일상에 에너지, 혹은 쉼을 주는 예술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평범한 현대인이기에 긍정적인 에너지, 혹은 위로를 주는 느낌의 작품을 자연스레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마치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를 본능적으로 찾게 되는 것처럼요.


# '아트웍을 구독한다'는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었나요.

누구나 자기만의 공간을 꾸미는 시기가 평생에 한번 정도는 있잖아요. 독립을 해서 자취를 하든지, 아니면 결혼하고 신혼집을 꾸미든지. 2년 전에 결혼을 했는데 집을 꾸미는 과정에서 한 가지 pain point를 느꼈어요. 진부한 결혼사진 말고, 멋진 그림을 하나 두고 싶은데, 맘에 드는 것도 찾기 어렵고, 가격도 부담스럽고요. 그리고 처음 그림을 걸었을 때의 설렘이 얼마나 지속될 지도 의문이었어요.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죠. '액자만 사면 누가 알아서 한 달에 한 번 그림을 바꿔주면 좋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를 하고 그 생각을 실행으로 옮겨 그림 정기구독 서비스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서비스를 준비하는 동안 수많은 아티스트를 만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한 장의 그림은 단순히 인테리어용 소품이 아니라 아티스트의 영감과 삶이 담겨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이럴게 아니라 아티스트를 직접 만나고 취재해서 아티스트의 라이프스타일과 생각을 그림과 함께 전하자! 단순한 ‘그림 구독 서비스’는그렇게 ‘핀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왼쪽부터 '핀즐'의 창업자인 진준화, 정범회, 김재홍, 정준희 씨. / pinzle

# 어쩌다 전공도 다르고 개성도 다른 4명이 모였나요.

특이하게도 저희 네 명은 문과, 이과, 예체능이 모두 모인 조합이에요. 물론 전공만으로 각자의 역량을 이야기할 순 없지만 어쨌든 굉장히 밸런스가 잘 맞는 조합이라고 생각해요. 핀즐이라는 비즈니스를 준비한 시점이 이미 2년도 더 전이기 때문에 팀 업에 대한 스토리도 꽤나 깁니다. 김재홍 이사는 제 전 직장의 상사였어요. 회사생활에 염증을 느낀 둘은 함께 퇴사해서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게 되었고, 마침 대기업을 다니다 회사를 그만둔 김 이사의 대학교 후배인 정준희 이사와 함께 팀을 꾸리게 됩니다. 디자이너가 없어서 굉장히 힘들어하던 때, 정 이사의 사촌 형이자 레드닷 어워드 수상 디자이너인 정범희 이사를 편집장 겸 CDO로 맞이 할 수 있었어요.핀즐의 '판타스틱 4'는 그렇게 완성되었지요.


핀즐은 와디즈 크라우드펀딩에서 목표액을 1500% 초과 달성했다. / 와디즈

# 핀즐이 와디즈에서 소위 '대박'을 낸 원천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요.

첫째는 좋은 기획, 둘째는 신뢰였던 것 같아요. 이 두 가지가 맞물리면서 많은 분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을 사고 싶지만 막상 사려면 허들이 굉장히 높아요. 생각보다 비싸고, 어디서 어떤 그림을 사야 될지도 모르겠고, 그림이 좋아도 금방 지겨워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들이 있죠. 이런 허들을 ‘그림 정기구독 서비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기획이 많은 분들의 공감을 얻었던 것 같아요. 그림을 단순히 인테리어 소품으로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창작한 아티스트의 라이프스타일을 담은 매거진과 인터뷰 영상을 함께 제공함으로써 그림도 무언가를 얻는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더 큰 매력으로 작용했죠.


하지만 제품을 결제 이후에 받게 되는 크라우드펀딩의 특성상 기획이 아무리 좋아도 신뢰를 얻지 못하면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기는 어려워요. 핀즐이 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끊임없이 댓글과 새소식으로 소통했던 것도 소비자분들에게 신뢰를 구하는 방법 중 하나였죠. 반응이 좋을 때도, 반응이 다소 주춤할 때도 끊임없이 핀즐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소통했던 게 신뢰로 이어져서 마지막까지 고민하시던 많은 분들을 구독자로 맞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소비자분들은 실제품을 확인할 수 없으니 당연히 궁금한 게 많습니다. 그런 질문들에 진짜 진심을 담아 최선을 다해 답변해 드린 것이 주효했어요. 그 과정에서 핀즐 역시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핀즐의 작품과 아티스트 선정 기준이 있나요.

기준은 딱 하나입니다. ‘이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은가?’가 바로 그것인데요. 대체로 긍정적인 에너지와 영감, 혹은 위로가 전해지는 작품과 화풍들이죠. 주로 비핸스나 인스타그램 등에서 서칭 하거나 친한 아티스트들에게 추천을 받기도 합니다. 핀즐은 아티스트의 학력과 경력은 별로 궁금해하지 않아요. 어떤 영감과 라이프스타일을 지녔는지가 더 궁금하거든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그의 일상을 엿보기도 하고, 구글링 해서 관련 정보를 스터디한 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DM과 이메일을 날립니다. “우리 서울에 사는 청년들인데 그리로 찾아갈 테니 시간을 좀 내어주세요!”라고요. 우리는 아티스트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Curation Journey라고 부릅니다.

https://www.instagram.com/pinzle_journey/


지난해 9월 창간호의 아티스트는 일본 도쿄에서 활동 중인 일러스트레이터, ‘반나이 타쿠(Taku Bannai)’였어요. 앞으로 세계 각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의 일상과 작품을 지속적으로 소개해 나갈 예정이에요.


# 핀즐의 아트웍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CMYK 잉크를 순차적으로 인쇄하는 형태인 off-set 인쇄 형태를 채택했어요. 미술시장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아트 프린트가 Off-Set 인쇄를 통해 제작될 정도로 높은 수준의 퀄리티가 보장되죠. 국내에서 생산되는 고급지(아르떼, 몽블랑, 랑데뷰 등) 중에서 매월 다른 아티스트의 화풍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용지를 선택해요. 두꺼운 용지를 고집하는 이유는 구김이나 손상에 강하고 액자 없이 그림만으로도 솔리드 한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에요.


# 아티스트를 찾으러 떠나는 Curation Journey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아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대부분 돈을 아끼려다 생긴 에피소드들이죠. 론칭하기 전에 충분한 콘텐츠와 판권을 쌓아 둬야 했기에, 아티스트를 만나기 위해 떠나는 curation journey에서 돈을 아끼려고 별 짓을 다 했던 것 같아요. 특히 파리에서의 curation journey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파리에서 묵었던 에어비앤비가 엘리베이터 없는 7층에 있었고요. 이동수단은 거의 도보 아니면 Velib(도시 자전거, 서울로 치면 따릉이)로 해결했습니다. 식사도 거의 바게트 샌드위치로 때웠던 것 같네요. 미슐랭의 도시 파리에서 7박 8일을 지내는 동안 5kg이 빠졌더라고요. 농담 삼아 그런 얘기도 했습니다. 핀즐 curation journey를 함께 떠나는 핀즐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 얼마 전에는 해외 아티스트를 국내에 초청해서 오프라인 행사도 열었던데요. 올해 핀즐의 계획이 궁금해요. 또 어떤 재미있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나요. 

스페인의 포토그래퍼인 Andrés Gallardo Albajar(안드레스 가야르도)를 초청해서 '어반 지오메트리 서울'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열고 아티스트와 대화를 나누는 오프라인 행사를 진행했어요. 

이외에도 다양한 해외 아티스트 초청과 전시 등 다양한 활동이 준비돼 있죠. 하루빨리 기존의 구독자님, 그리고 새로운 구독자님들과 또 다른 행사로 만나 뵐 수 있길 소망합니다. 업데이트되는 정보는 핀즐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핀즐 구독 신청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하실 수 있어요. 이미 일본과 유럽에서 멋진 아티스트들과의 만남을 가졌고, 좋은 아트웍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득 쌓아뒀어요. 매달 편하게 집에서 즐기는 일만 남은 셈이지요.


구석구석 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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