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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기자 Mar 29. 2018

무지에는 신이 산다 지름신이…

서울 신촌 ‘무인양품’ 플래그십 스토어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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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촌 ‘무인양품’ 플래그십 스토어 가보니

서울 신촌에 문을 연 ‘무인양품’ 플래그십 스토어. [홍중식 기자]


‘무언가를 지르려는 자는 통장 잔고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지름신’이다.’  

서울 ‘무인양품’ 신촌점을 둘러보고 든 생각이었다. 일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무인양품’을 운영하는 ‘무지코리아’가 2월 28일 국내 최대 규모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신촌에 열었다. ‘무지(MUJI)’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무인양품은 ‘상표가 없는 좋은 품질의 상품’이라는 뜻으로, 콘셉트를 그대로 브랜드명으로 삼았다.  

무인양품은 1980년 일본 대형슈퍼마켓 세이유의 프라이빗브랜드(PB)로 출범해 일상생활 전반에 걸친 품목을 대부분 취급하는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했다. 상품 본질에 충실하자는 의미에서 첫 제품을 내놓을 때부터 추구해온 것이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다. 지금도 소재 선택, 공정 점검, 포장 간략화라는 3가지 기본 원칙 아래 합리적인 공정으로 만든 간결한 상품을 내놓고 있다.

미니멀리즘 대표주자

‘무인양품’에서는 의식주와 관련한 거의 모든 제품을 살 수 있다. [홍중식 기자]


서점가에는 ‘무인양품으로 시작하는 미니멀 라이프’ ‘무인양품으로 살다’ ‘오늘부터 미니멀라이프 : 무인양품으로 심플하게 살기’ 등의 책도 나왔다. 그만큼 무인양품은 대중에게 미니멀리즘의 대표주자로 각인됐다. 무인양품 제품만으로 집을 채우며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해보겠다는 인터넷 블로그 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좀 아이러니하다. 진정한 미니멀리즘은 어떤 브랜드의 제품이든 ‘사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에 더 가까울 텐데 말이다. 물론 이사한 집에 쓸 만한 물건이 하나도 없어 뭐라도 채워야 한다면 무난함 그 자체인 무인양품이 선택지가 될 수 있겠지만.  

무인양품은 2003년 한국에 첫 매장을 열었고 현재 27개 매장(오프라인 26개, 온라인 1개)을 운영하고 있다. 신촌점은 28번째 매장이다. 나루카와 다쿠야 무지코리아 대표는 2월 27일 매장 설명회에서 “2020년까지 한국에 15∼20개 매장을 추가로 내려 한다. 유니클로 매출을 넘어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무인양품은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매장을 늘리고, 커뮤니티 기능을 갖춘 매장들을 각 도시에 출점할 계획이다. 

신촌점 규모(1652㎡)는 강남점의 2배 수준이다. 살 것도 2배 가까이 많다는 뜻이다. 의류·액세서리·가구·생활용품 등 의식주 범주에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물건을 판다. 신촌점에서만 만날 수 있는 서비스도 있다. 회사 철학에 부합하는 내용의 책을 전시, 판매하는 공간인 ‘무지북스’와 카페 음료를 사 마실 수 있는 ‘커피스탠드’는 신촌점에 처음 도입됐다. ‘자수공방’과 ‘스탬프존’도 신촌점에서만 만날 수 있다. 그렇다면 가봐야 한다. 궁금하니까. 

3월 13일 오후 신촌점을 찾았다. 편안하고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부드러운 아로마향이 느껴졌다. 인기 상품인 ‘초음파 아로마 디퓨저’에서 나오는 향기였다. 매장에 들어가자마자 자연스럽게 디퓨저부터 들여다보게 됐다. 1400만 관객을 넘긴 영화 ‘신과 함께 : 죄와 벌’에서 주인공은 49일 동안 저승에서 7번의 재판을 받는데, 각 지옥에 도달할 때마다 그곳을 관장하는 신을 만난다. 4개 층으로 된 신촌점에서는 층마다 ‘지름신’을 만나게 되는 것이 함정이었다.

1층부터 ‘지름’신과 함께

1652㎡에 달하는 ‘무인양품’ 신촌점 매장을 둘러보고 있는 사람들.(왼쪽) ‘무인양품’ 신촌점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자수 서비스. [홍중식 기자]


일단 가장 높은 층부터 둘러보고 한 층씩 내려오는 전략을 쓰기로 했다. 4층에는 ‘무지북스’가 있었다. 3월 셋째 주 추천 도서는 하라 겐야의 ‘백(白)’. 이 책 외에도 브랜드 콘셉트와 어울리는 ‘의식주’에 관한 책을 구매할 수 있었다. ‘My Found MUJI’라는 코너에서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4개 지역 무인양품에서 근무하는 스태프들이 선정한 대표 물품을 전시하고 그들의 생각과 제품 배경을 소개했다. 한국 제품으로는 옹기와 목기 등이 전시돼 있었다. 

침구와 욕실용품 등 다양한 생활용품도 구매 가능했다. 미립자 비즈를 넣어 만든 ‘푹신 소파’가 곳곳에 자리해 쉬면서 책을 읽을 수도 있었다. 한번 앉으면 일어나기 싫을 정도로 푹 꺼지는 느낌이 좋았다. 한두 개 사서 거실에 두고 TV를 보거나 노트북컴퓨터 작업을 할 때 쓰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가격표를 보고 지름신을 물리쳤다. 본체 가격이 14만9000원, 면 데님 커버는 5만9000원이었다.  

3층에는 ‘문구 덕후’가 좋아할 만한 문구 판매대와 ‘스탬프존’이 있었다. 펜을 천장에 매단 모빌이 인상적이었다. 노트와 수첩 가격은 일반적인 문구 브랜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4컷으로 분할된 노트패드를 여러 권 샀다. 가격은 한 권에 1900원. ‘스탬프존’은 상품을 구매한 후 스탬프를 찍어 자신만의 오리지널 문구를 만드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동복과 유아용품도 팔았는데, 비쌀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의외로 가격이 합리적이었다. 아이 아빠인 40대 남성은 “이곳 성인용 옷은 소재가 100% 나일론인데도 20만 원이 넘는 등 비싼 축이지만 아이 옷과 신발은 다른 브랜드 제품과 질 차이가 나지 않으면서도 2만~5만 원대라 부담이 덜하다”고 평했다.  

무인양품에서 파는 성인용 외투는 몸매가 좋거나 키가 크지 않으면 소화하기 힘든 스타일이 대부분이었다. 매장 한쪽에는 ‘MUJI Labo’가 있었는데 ‘옷은 본래 많이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화려하게 꾸미는 패션과는 거리를 둔 실험실, 이곳에서 미래 무인양품의 베이직이 탄생합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무인양품 패스포트’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다운로드했다. 앱을 쓰면 상품 구매와 매장 체크인을 통해 마일리지를 쌓을 수 있다. 신상품과 매장 정보 등도 실시간으로 받고 매장 재고도 검색할 수 있어 ‘무지 마니아’라면 반드시 깔아야 할 앱이다. 

2층에는 신촌점에만 있는 ‘자수공방’이 있었다. 제품을 사고 추가 금액을 내면 원하는 이니셜이나 마크를 수놓아주는 곳이다. 당일 바로 제품을 받아갈 수는 없고, 며칠 뒤 찾아가거나 택배비를 내고 집에서 받아볼 수 있다. 워낙 인기 많은 코너이다 보니 담당 직원은 “온종일 자수만 놓는다. 신발이나 무지 가방, 손수건에 자수를 요청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자수 서비스를 원하는 이들의 연령대는 다양한데 커플이나 아이를 둔 부모가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30대 남성에게 “애인과 ‘커플템’을 만들고 싶다면 자수 서비스가 있으니 참고하라”고 했더니 “거기서 아르바이트하면 직녀가 된 기분이겠다”고 답했다. 

이곳에서 손수건을 구매해 자수 서비스를 받아보기로 했다. 작은 마크는 3000원, 중간 마크는 5000원이고 문자는 다섯 글자까지 3000원이다. 나눔 고딕부터 KoPub 바탕체까지 글씨체 선택의 폭이 넓었다. 6900원짜리 손수건에 3000원을 내고 귀여운 토끼 마크를 수놓았다. 이렇게 9900원짜리 나만의 손수건이 탄생했다! 동행한 사진기자는 손수건에 토끼 마크와 아이의 이니셜을 수놓았다. 자수의 질이 높아 만족스러웠다.

‘무인양품’ 신촌점은 각 층마다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홍중식 기자]


2000원으로 즐기는 커피

매장 1층에서는 커피를 2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홍중식 기자]


1층에서는 인기 상품인 ‘초음파 아로마 디퓨저’ 외에도 생활용품과 메이크업 제품군을 팔고 있었다. 이날 이후에도 평일 오전과 주말 오후에 각각 매장을 찾아가 살펴봤는데 20, 30대 고객이 가장 많았다. 일반 쇼핑몰의 경우 여성이 대부분인 것과 달리 남성도 절반 가까이 됐다. 공강시간을 활용해 매장을 둘러보는 대학생도 많았다. 
 
총 세 차례 신촌점을 방문했는데, 동행인들은 남녀불문하고 공통적으로 매장 1층에 있는 디퓨저를 마음에 들어 했다. 잔잔하게 불이 들어와 예쁘고 향기도 은은하게 나는 데다, 심플한 디자인이 매력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오, 이거 하나 살까” 하고 집어 들었다 밑에 찍힌 가격을 보고는 살포시 내려놓는 것도 공통점이었다. 과연 ‘무지(MUJI)’답게 무지 비쌌다. 큰 사이즈가 12만9000원, 작은 사이즈가 6만9000원이었다. 여기에 아로마 오일까지 사면 최소 2만~4만 원이 추가된다. 아로마 오일과 디퓨저를 함께 사면 10% 할인해주는 행사가 진행 중이었지만 덥석 사기에는 주저되는 가격이었다. 스테디셀러인 벽걸이형 콤팩트디스크(CD) 플레이어는 15만9000원, 벽걸이형 블루투스 스피커는 14만9000원이었다. 지름신이 올 만하면 가격 때문에 물러가는 형국이었다. 아슬아슬했다.

높은 제품 가격은 아쉬워

매장 안쪽 ‘커피스탠드’에서는 2000원에 커피를 팔았다. 테이블이 하나뿐이라 오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가격 대비 커피 맛은 꽤 괜찮았다. 옆에 있는 코너에서 과자를 사 곁들이니 꽤 그럴싸한 디저트 타임이 됐다.  

무인양품은 마니아층이 탄탄한 브랜드다. 국내에서는 비싼 가격 탓에 일본 여행 갔을 때 사오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신촌점에서 구매한 일부 제품의 판매가와 일본 현지 판매가를 비교해봤다. 신촌점에서 6900원에 산 휴대용 의류 클리너는 일본에서 390엔(약 3900원), 4900원에 산 휴대용 클리너 리필은 일본에서 250엔(약 2500원)에 팔리고 있었다. 1900원을 주고 산 노트패드는 일본에서 100엔(약 1000원)이었다. 나루카와 대표는 매장 설명회에서 이에 대해 “관세 때문에 일본 매장과 가격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일부 제품의 경우 관세 장벽이 낮은 아세안(ASEAN)지역으로 생산지를 옮길 계획이다. 식품은 아예 한국에서 생산하는 방식으로 물류비를 낮출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의식주와 관련된 웬만한 제품은 다 구할 수 있는 무인양품. 맘먹고 이곳 제품으로만 생활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다소 비싼 가격은 아쉽다. 대체재가 있는 제품도 많다. 예를 들어 유리로 만든 칫솔 스탠드는 하나에 6900원이지만, 다이소에서 2개에 1000원인 제품을 사도 사용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1만1000원짜리 유리 보관 용기도 대체재를 찾자면 5000원 이하로 살 수 있다. 물론 마감이나 재질, 디자인, 컬러가 같지 않지만 말이다. 선택은 소비자 몫이다. 국내에서는 신세계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자주(JAJU)’나 ‘노브랜드(No Brand)’가 무인양품과 비슷한 브랜드 이미지를 추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무인양품 같은 군더더기 없는 느낌의 브랜드가 늘어나 소비자 선택지가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갑은 가벼워도 사고 싶은 건 많은 게 소비 요정의 공통된 마음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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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살게많은곳 #가격도무지막지 #자수서비스대만족


원문 읽기: http://weekly.donga.com/East/3/99/11/1262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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