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S리테일 손잡은 VR 테마파크 ‘VRIGHT(브라이트)’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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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VR)이 접목된 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멀미를 심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글 형태의 HMD(Head Mounted Display·머리 착용 디스플레이)를 쓰면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괜히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거나 넘어지지 않을까 무섭다. 자타공인 ‘쫄보’로, 남들 앞에서 헤드셋을 쓴 채 무언가를 하라고 하면 정말이지 싫을 것 같다. 그런데 아니, 이게 무슨 소리요, 내가 VR 테마파크 취재라니!
3월 1일 KT와 GS리테일이 서울 신촌 연세대 앞 명물거리에 VR 테마파크를 열었다는 소식을 들은 게 화근이었다. 이름은 ‘VRIGHT(브라이트)’. 기억하기 쉽고 뭘 하는 곳인지 바로 나와 있어 잘 지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노래방, PC방, DVD방, 플스(플레이스테이션)방 등 어지간한 방은 다 가봤지만 VR방만 가지 않았던 이유는 많은 이가 호소하는 ‘VR 멀미’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 처음 문을 연 데다 두 기업이 ‘으쌰으쌰’ 해 시장을 평정해보겠다고 나선 것 같아 어떤 모양새일지 궁금했다. 멀미를 이긴 호기심. 그래, 멀미를 하더라도 가서 하자.
올해 이동통신사가 주목하는 건 실감형 미디어(VR/AR) 시장이다. 이동통신사들이 주목한다는 건 돈이 된다는 뜻. 특히 KT 공세가 맹렬하다. KT는 2월 20일 서울 광화문 사옥에서 5G 시대의 핵심 기술 가운데 하나인 실감형 미디어 사업전략 간담회를 열어 2020년까지 매출 1000억 원을 달성하고, 국내 실감형 미디어 1조 원 시장을 창출하겠다는 장대한 비전을 발표했다. KT는 2014년 서울 동대문에 세계 최초 홀로그램 전용관 ‘케이라이브(KLIVE)’를 열었다. 지금은 상암동에 실감형 미디어 융·복합 체험관 ‘KLIVE X VR PARK’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FIFA U-20 월드컵’이 열린 전주월드컵축구경기장과 수원월드컵경기장에 5G 시범망을 구축하고, VR 생중계를 통해 ‘360도 VR’ 및 ‘인터랙티브 타임슬라이스’ 등을 선보였다.
이번에 KT와 GS리테일이 공동투자해 내놓은 도심형 VR 테마파크 ‘브라이트’ 역시 KT가 그리는 큰 그림의 일부다. KT의 기술과 GS리테일의 유통 파워를 합쳐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것. 조별 과제도, 팀플레이도 역할 분담이 중요하다. 이 조합에서는 KT가 5G 등 네트워크 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 역량을 토대로 플랫폼을 구축, 운영하고 콘텐츠를 수급하며 서비스를 개발한다. GS리테일은 유통과 운영 역량을 기반으로 운영 시스템을 구축, 관리하고, 매장 운영에 집중한다는 전략. 일본 만화 ‘드래곤볼’에서 ‘퓨전’ 기술을 쓰면 2명이 하나로 합쳐져 강력한 초전사로 변신하는데, KT와 GS리테일의 ‘퓨전’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3월 7일 오후 ‘브라이트’ 신촌 매장을 찾았다. 2개 층인 이곳은 콘텐츠 특성에 따라 4가지 존(Walking 배틀존, 어드벤처존, AR/MR 스포츠존, VR 게임존)으로 나뉜다. 이미 많은 사람이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확실히 VR가 인기인 모양이다. 매장에 들어서자 놀이동산 자이로드롭 앞에서나 들을 법한 비명이 들려와 깜짝 놀랐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어트랙션에 탑승한 사람들이 내는 소리였다. 바이킹도 못 타는 새가슴이라 ‘저건 체험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GS리테일 관계자는 “대학생들이 공강 시간에 와서 놀고 데이트도 즐기는 새로운 놀이공간으로 꾸려가려 한다. 매장을 열 때는 2030을 주요 타깃으로 했는데 부모와 아이가 함께 오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고 말했다.
이곳이 다른 VR 체험방과 차별화되는 건 온라인 1인칭 슈팅게임(FPS) ‘스페셜포스’를 VR 버전(‘스페셜포스 VR: UNIVERSAL WAR’)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매장 안쪽 FPS 전용공간에서 남성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장비의 스페셜한 포스가 남달랐다. 이들은 마우스와 키보드가 아니라 진짜 (모양) 총을 들고 있었다. ‘브라이트’의 대표 콘텐츠인 만큼 전화로 사전 예약은 필수다. 이날 예약 현황판에는 밤 11시 타임까지 ‘스포’를 즐기려는 예약이 꽉 차 있었다.
차례를 기다려 FPS 전용공간(5×5m)에 들어섰다. 앞에 놓인 재킷을 입고, 왼쪽 손목에 보호대(아대)를 찼다. HMD를 쓰자 직원이 손에 총을 쥐어줬다. 안경을 끼고 착용해도 큰 무리가 없었다. 이용권을 구매하면 나눠주는 보라색 안대 덕에 기기가 얼굴에 직접 닿지 않아 위생적이었다. 여기에 헤드폰까지 쓰니 방금까지 있던 방이 금세 몬스터로 가득한 도심 한복판으로 바뀌었다. 동행한 사진기자도 잠시 카메라를 내려두고 총을 들었다. 기자의 눈에 사진기자가 근육질의 남성 캐릭터로 보였으니, 아마 기자는 글래머러스한 여전사로 보였을 것이다.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고 게임을 시작했다.
괴물들은 바닥을 기기도 하고 하늘에서 날아오기도 했다. ‘미필’ 포스를 뽐내며 되는 대로 총을 쥐고 난사했다. 수시로 옆에 뜨는 코인과 치료제도 놓칠 수 없었다. 괴물을 죽이는 와중에 옆으로 기어가다시피 해 치료제를 먹었다. 정신없이 괴물을 퇴치하다 보니 보스가 등장했다. 거대했다. 그사이 기자와 등을 맞대고 싸우던 근육남의 ‘HP(Healthpoint)’가 떨어져 죽어버렸다. 직원이 마이크로 “다가가서 터치하면 살릴 수 있다”고 안내했지만 그럴 정신이 없었다. 미친 듯이 총을 쐈다. 보스 토벌. 보스도 죽고 선배도 죽었지만 나는 살았다. 오, 생각보다 재밌는데? VR 멀미도 심하지 않았다. 직원은 한 게임에 15분 남짓이라고 설명했지만 최소 두 판은 연속으로 해야 ‘오늘 총질 좀 했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았다. 다만 전날 출장 때문에 장거리 운전을 한 사진기자는 ‘스포’ 한 판에 멀미를 호소하며 다른 게임은 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VR 멀미는 개인차가 있다고 봐야겠다. 참고로 멀미가 느껴질 때는 눈을 감아 시야를 차단하거나 즉시 HMD를 벗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곳에서 인기인 게임을 두 가지만 더 해보기로 했다. 어드벤처존에서 매장 직원이 ‘강추’한 건 ‘플라잉 제트(Flying Jet)’. 아, 아까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던, 저것만큼은 타고 싶지 않던 그 어트랙션이었다. 선 채로 기기에 탑승했다. ‘아이언맨’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는 느낌의 VR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는 비행 슈팅 어트랙션이었다. 따로 조작할 필요는 없었고 기기 움직임에 몸을 맡겼다. 실제로 고공낙하를 하고 날아오르는 것처럼 스릴이 있었다. 원래도 무서운 걸 못 타 손에서 땀이 났다. 한참 탄 것 같은데 3분 걸렸다고 했다. 3분이 참 길구나. 워낙 인기라 이후 볼 때마다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다음에 탄 어트랙션은 ‘로봇 아담(Robot Adam)’. 로봇 형태의 시뮬레이터에 탑승한 뒤 조이스틱으로 움직임을 조작해 직접 로봇이 된 듯한 체험을 하는 어트랙션이다. 하지만 조작을 제대로 못 해 게임의 참맛을 느끼기도 전 ‘게임 오버’되고 말았다. 운전을 좀 더 잘하고 양손에 쥔 조이스틱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으면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듯했다.
위층에는 AR 스포츠 하도(HADO) 게임장과 VR 게임, 영화, 웹툰을 즐길 수 있는 VR방이 있었다. 잠깐 올라가 하도를 즐기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퓨처 테크노 스포츠’로 불린다는 하도는 AR 헤드셋과 함께 손목에 애플 아이폰을 착용하고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게임 속도와 세기, 시간 등을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다. 손에서 에너지 볼을 발사하고 막는 등 초능력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광고에서 가장 멋지게 나오던 게임이다. 하지만 밖에서 보니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엉거주춤하게 서서 열심히 손을 휘젓는 사람들의 모습이 조금은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좀 전까지 총을 들고 보스의 공격을 피하겠다며 바닥을 기던 내 모습도 필시 저랬으리라.
게임을 마치고 몇 가지 궁금증이 생겨 GS리테일, KT 관계자와 ‘대질신문’을 했다. 두 기업은 왜 뭉쳤을까. KT 관계자는 “각사가 신사업을 고민하던 차에 의기투합하게 됐다”며 “이곳이 1호 매장이자 거점 매장이다. 앞으로 200개까지 늘려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왜 그 ‘거점’이 신촌이어야 했을까. GS리테일 관계자는 “VR 체험존을 주로 이용하는 사람과 유동인구를 고려해 선정한 매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브라이트’가 기존 VR 체험방과 다른 건 뭘까. KT 관계자는 “투자와 개발, 판권 확보, 제휴 등을 통해 52종의 차별적 콘텐츠를 확보했고 AR 기술 기반의 스포츠인 ‘하도 PvP, Monster’의 국내 독점 유통권도 확보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이곳 요금제는 롯데월드나 에버랜드 같은 테마파크 요금제와 비슷하다. 운영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자정까지, 이용시간은 최대 3시간이다. 3가지 게임을 이용할 수 있는 빅3 이용권은 성인이 1만5000원, 13세 이하 소인이 1만2000원이다. 한 게임에 꽂혀 그 게임만 세 번 하든, 다양한 게임을 한 번씩 하든 상관없다. 빅5 이용권은 성인 1만7000원, 소인 1만4000원이다. 빅5 이용권부터 하도를 1회 이용할 수 있다. 단, FPS 이용은 불가. 이 때문에 프리패스(Freepass) 이용권이 인기다. 성인 2만2000원, 소인 1만9000원으로 다소 비싸지만 3시간 동안 모든 게임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단, 하도와 FPS는 각각 1회씩만 즐길 수 있다. 하도만 즐기는 이용권은 5000원, FPS만 즐기는 이용권은 1만 원이다. 3월에는 오픈 기념으로 평일에 한정해 이용요금을 30% 할인해준다.
그렇다면 ‘브라이트’의 요금은 합리적일까.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신촌 VR’로 검색해 나오는 인근 VR 체험방과 가격을 비교해봤다. A업체는 평일 기준으로 기본 코스 6000원, 자유이용 코스 8000원이었는데 탈 수 있는 놀이기구는 없었다. B업체는 70분 이용에 기본요금 1만 원이고, 다양한 제조음료를 파는 카페도 있었다. 음료 가격은 3500~5800원 선이다. C업체는 기본요금이 90분에 1만 원이었다. 유일하게 탈 수 있는 놀이기구를 갖춘 D업체의 빅3 이용권은 1만5000원, 쉐이크박스 이용권은 1만5000원이었다. ‘브라이트’에도 VR 게임을 즐길 방이 따로 있는 것을 감안하면 어트랙션을 한다고 생각했을 때 그리 나쁜 가격은 아닌 셈이다. 여기에 KT 멤버십과 LG 유플러스 멤버십 할인, GS&POINT 적립이 된다.
이 때문에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죽인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KT 관계자는 “VR시장에서 상생을 하려는 것이지 경쟁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VR시장의 저변을 확대하고 파이 자체를 키워 다 같이 커가는 마중물 구실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KT는 국내 실감형 미디어 콘텐츠 기반을 확대하고자 VR/AR 전용 펀드 조성 등 콘텐츠 투자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KT 관계자는 “실감형 미디어시장 확대를 위해 연내 단말 제조사, 게임 등 콘텐츠 업체, IT 기업 등이 참여하는 VR 얼라이언스를 출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원문 읽기: http://weekly.donga.com/Main/3/all/11/1257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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