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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우보이 Jul 02. 2017

끄적거림

계속 포기하지 않고 끄적거림

어릴 때부터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곳은 '피아노 학원'이었다. 음악이 결코 좋지 않았다. 내겐 축구밖에 없었으니깐. 결국 어린이 바이엘 (하)를 마치지 못하고 피아노 학원은 그만두게 되었다. 틀릴 때마다 자꾸 피아노 선생님이 30cm 자로 내 손가락을 때려서 그만둔 것이 결코 아니다.


초등학교 때, 또 싫었던 것은 리코더 시험이었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 악기 연주를 시험 성적에 넣는 바람에 못하는 연주를 열심히 해야 했다. 가끔 안 되던 연주 부분이 될 때 희열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아마도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던 근본적이 이유는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이었을 거라 핑계를 돌리고 싶다. 음악을 '좋아하게' 흥미를 유발시켜야지, 그러기도 전에 음계를 공부하게 하고 음악의 역사를 암기하게 하는 건 정말 바보스러운 교육 방식이다. 무엇이든 좋아하게 되면 역사나 이론은 밧줄로 묶어놔도 찾아보고 공부하게 된다.


음악에 재능도 없고 (없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흥미도 없으니 음악은 통 나랑은 상관없는 카테고리였다. 그런데 한국 영화 중에 남주 강동원이었나... Aubrey라는 연주를 여주 김하늘 앞에서 하는 장면이 있다. 거기에 꽂혀서, 내가 음악은 잘 모르지만 저거는 꼭 한 번 연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학생 때 기타를 사서 독학을 시작했다. 연습하다 보니 이런저런 곡을 건드리게 됐고, 쉬운 가요들을 먼저 공략해 보게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AoF3FBg-d4

이문세 선생님의 옛사랑, 실력보단 감성 터짐, 와 이제보니 좀 풋풋해보이네요

이제 슬슬 기본적인 코드 뜯기를 할 수 있게 되자, 좀 다른 방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핑거스타일'이라는 기타 연주법이다.


노래 가사 없이 통기타 하나로 '연주곡' 종류를 그저 연주하는 방법인데, 기타 멜로디뿐 아니라 베이스 음 및 기타 바디를 이용한 퍼커션 등 3가지 악기를 기타 하나로 연주하는 방식이다. 내가 노래를 잘 못해서 노래 가사 없는 음악을 선택한 것이 아니....


당시 서울과 많이 떠어져 있는 강화/김포 근처에서 자취를 했는데 아는 사람도 없고 동네는 허허벌판이고 해서 별로 유쾌하게 지내진 못했다. 그래서 그런지 직장 다니는 내내, 아침 일찍 와서 연습하고, 점심시간에 연습하고 집에 가서 저녁에 연습하고 녹음하고 뭐 이러고 지냈던 기억이 난다. 한 반년을 그렇게 했나. 하도 기타를 직장에 들고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직장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나는 사내 동아리를 만들어 총 6분께 기타를 구매하게 하는 몹쓸 짓을 저지르게 되었다. (결국 두 분 빼고는 나머지 분들의 기타는 몇 달 후 F코드를 잡기 시작하면서 중고나라에 떠나보냈다는 슬픈 전설이 있다.)


어찌 됐든 당시엔 기타 동호회도 꾸준히 나가고, 수시로 남들이 올리는 기타 연주 동영상을 보며 연습하며 지냈다. 악보 볼 루 몰라서 타브 악보만 보고, 손 모양을 '암기'하는 수준으로 연습을 해 나갔다. 이론을 공부하기엔 독학으론 좀 어려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pCQ7OlHa4N8

처음으로 연습한 코타로 오시오의 황혼


당시 뭔가 우울했던 상황을 음악이란 친구에게 감성팔이를 했던 것 같다. 감정표현에 익숙지 않은 뼛속까지 공대생이었던 내게 좋은 감정/감성 선생님이 되었던 것이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다른 분야, 문학, 예술, 역사 등에 대해 함부로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로 규정하지 않게 된 계기가 바로 기타였다. 나는 음악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단순한 사실을 27살이나 되어서야 깨달았었다.


'황혼'을 처음 접했을 때, 인간이 도대체 이걸 어떻게 연주하지? 라며 앞이 까마득했는데 막상 한 소절, 한 소절씩 연습하다 보니 보통 인간도 똑같이는 아니더라도 흉내는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잘은 못 치지만, 코타로 오시오의 '황혼'을 연주할 수 있게 되자 다른 곡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핑거스타일 업계에선 코타로 경의 황혼이 절대 입문곡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업계 사람들은 칠 줄 아는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완벽하게 자신의 감성을 표현해 낼 줄 아는 것을 좋게 평가하기 때문에... 아 눈 높으신 분들이여)


바로 다음 곡은, 마사키 키시베 선생님의 Rainy Window라는 곡이었다. '비 오는 창가에서'라고 해석들을 하는데, 원작자의 도움 없는 해서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기타로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가 나올 수 있구나... 이 곡은 죽기 전에 꼭 한번 쳐보고 싶다. 과연 내가 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수개월을 연습했던 것 같다. (누구는 몇 주면 친다고 하는데 역시 음악에 소질이 없는 나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역시 이번에도 음계 따위 읽을 줄 몰라 그냥 무조건 타브 악보를 손가락으로 외워버렸다. 무식하면 몸이 고생한다는 표현이 딱 이 경우였다.


연습 중간중간에 그냥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정말 많았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매일 이 곡을 연습해야 하나... 하지만 언젠가 능수능란하게 이 곡을 어느 작은 무대에서 칠 수 있다는 상상은 나를 미리 행복하게 했다. 그래서 포기하고 다시 도전하고, 포기하고 다시 도전하기를 회사에서 믹스커피 마시듯이 했던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iaO7-gILjYU

어설프지만 첫 완주 성공!


결국 어설프게나마 전체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고 난 스스로에게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바로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은 내가 해보기 전까진 모른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같이 많은 정보가 오픈되어있는 시대에는, 혼자 해 보고, 주변에 물어보고, 온라인으로 물어보고, 오프라인 모임에 나가고 하다 보면 서당개도 3년이면 뭐한다고 조금씩 실력이 늘 수밖에 없다. 여전히 모든 업계에는 출중하게 잘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고, 그들을 보고 충격을 받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서로 가지는 목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난 가수, 기타리스트가 되는 게 목표가 아니라 '취미'를 가지고 싶었고, 음악을 지속적으로 좋아하게 되는 계기가 필요했기에 완벽한 연주를 못했다고 해서 의기소침할 필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나의 큰 관심은 '프로그래밍'과 '제품', '서비스', 그리고 '창업'이다. 이 쪽 역시,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만 봤을 때는, 정말... 까마득했고, 지금도 사실 까마득하다. 하지만 이전 경험을 돌이켜 봤을 때, 이 세상에 해 봐 서 안 되는 것 없고, 완벽하게 잘은 아니더라도 흉내 낼 수 있고,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이것이 결코 사업에서의 흔히들 거론되는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 입장에서 '성공'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블로그에 계속 글을 쓰는 이유도, 나의 어처구니없는 글쓰기 실력이 한 글자라도 더 쓰면 늘어날 거라 예상하는 것이며, 언젠가 내가 그렇게 부러워하던 글 잘 쓰는 작가들의 '흉내'정도는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흉내에서 조금 더 벗어나 독창적이고 재밌는 글도 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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