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진짜 바이
Boss에게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이 작년 8월이었는데, 거의 1년이 지나서야 진짜 그만두게 되었다. 그만두겠다는 의사 표시 이후 4개월 여를 더 다녔고, 3개월 코딩 부트캠프를 다녀온 이후, 파트타임으로 3개월을 더 다니게 되었다. 이제 남은 한 달은 못 쓴 휴가를 계산하니 더 일할 시간이 나오질 않더라.
회사 그만두는 주제로 도대체 글을 몇 개나 더 쓰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이 사람은 똑같은 주제로 몇 개나 글을 쓰려는 거야?'라고 생각이 든다면 충분히 비난받아 마땅할 만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브런치엔 '퇴사'관련 글들이 넘쳐나고 있다. 내 글을 포함해서 솔직히 퇴사 이야기가 어느 정도 다 비슷한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심지어 동기부여까지 비슷할 정도이니 브런치에선 "직장인 현실조언"의 서브 카테고리가 아닌, "퇴사" 메인 카테고리 하나를 파야할 정도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사실 계속해서 회사 그만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더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스스로 꽤나 지루해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에서 직장인들은 두 번 축하받을 일이 생긴다고 하는데 하나는 입사할 때, 그리도 다른 하나는 퇴사할 때라고 한다. 난 이거 듣고 정말 소리 내서 웃었는데 그 농담을 말한 사람은 '야 니 이야기야 인마'라고 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 동료들에겐 '부럽다', '대단하다', 등의 호기로운 출사표이겠지만, 정작 퇴사하는 개인이 스스로의 현실을 깨닫기 시작하면 이건 '현실'일뿐이다. 여기엔 더 이상의 호기로움도, 흥분도 있지 않으며, 당장 다음 달에 들어오지 않을 월급과 그러나 여김 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무시무시한 고정 지출비가 있기 때문이다.
회사 동료들은 '잘 되면 연락해' 라며 이야기하지만 잘 될 턱이 있나. 사실 잘 안되면 연락하기 좀 그럴 것이며 혹시라도 잘 돼도 바빠서 연락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즉, 잘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나중에 포장마차 집에서 우동이나 한 그릇 같이 떠먹으며 인생사는 이야기를 하면 될 것이다.
Boss와 마지막 대면 자리에서 Boss는 내게 먼저 고맙다는 이야기를 했다. 철저히 매니저인 Boss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그냥 고맙다는 의미 그대로가 맞을 것이다. 즉 나는 회사를 위해 일했고, 회사는 그에 맞는 노동의 대가를 월급으로 지불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것이다.
막상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그렇게 이 회사를 들어오고 싶어, 상사 앞에서 Boss앞에서 나 자신을 팔려고 애를 썼던 그때. 생각해보면 정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억지를 썼던 것 같다. 수많은 면접 인터뷰를 치르고 사람을 뽑아봤던 Boss 입장에선 귀엽지 않았을까? 그렇게 사람은 오고 가는 것 같다.
언제나 아쉬운 것은 함께 땀 흘려 일했던 동료들과의 마지막 인사다. 한국의 동료들은 언젠가 술 한잔 기울이며 볼 수도 있겠지만, 독일 본사에 있는 동료들은 아마도 다시 보기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서로 함께 일하며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는데, 고작 아웃룩 이메일 몇 마디 문장으로 say goodbye를 해야 하는 게 꽤나 냉정할 수밖에 없었다. 심한 업무로 시달리는 본사 친구들의 짤막한 답변이 그렇게 고마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개인사업자가 된다는 것이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최근 몇 달간 해 보니, 정말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 안 해도 누가 전화하는 사람 없고, 그냥 내가 쉬고 싶을 땐 무한정 쉴 수 있다. 게을러지기 딱 좋은 상황이다. 누가 숙제하라고 챙기지 않는 상황에서 스스로 숙제를 만들고, 스스로 채점해 나가야 하는 자가학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회사를 다닐 때보다 더 엄격한 스스로의 규율을 세우고 잘 지켜야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