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쿠우보이 May 12. 2017

새벽 한 시 반에 중고거래

오늘은 좀 힘들다

1. 회사에서 사고 침

파트타임으로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나의 새로운 일은 SW 주문처리 및 세금계산서 정산이다.

그런데 이전에 기술영업직에 있을 때와 동일하게 간간히 고객 대응을 하고 요구사항 검토도 하고 견적도 만들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 본연의 sales assistant 직무를 소홀히 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4월 세금계산서 발행을 십여 억 원을 놓치게 되었고 이는 회사 지사장님 및 본사 쪽으로 한국지사의 안 좋은 상황으로 오해가 되어 버렸다. 


이 회사 3년을 다니면서 가장 큰 사고를 친 것이다. 독일인 지사장님은 아주 냉랭한 표정으로 돌려 돌려 나를 꾸짖었다. 혼날만하다. 사실 내 사업에 정신을 쏟느라 파트타임 회사 일엔 마음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일단 돈을 받고 다니는 것에는 충실했어야 하는데 내 잘못이 크다. 차장님과 팀장님께 고해성사를 했다.



2. 바뀐 팀장님

팀장님이 바뀌었다. 원래 팀장님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해외로 가셨고, 타 부서에 있던 분이 우리 팀 팀장으로 오셨다. 워낙 기존 팀장님 성향에 맞추어 일하다 보니 새로운 팀장님의 방향에 맞추는 게 어색하다. 어찌 됐든 맞춰가는 중...


3. 면접

면접을 봤다. 내가 본 게 아니고, 내가 로켓펀치에 올린 말도 안 되는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한 분이 있어 그분을 면접 봤다. 나쁘게 말하면 열정 페이인데, 현재 너무 초기여서 월급을 줄 여력이 없다고 했다. 대신 식비, 교통비, 노트북, 비싼 키보드, 맥주 무제한을 사 준다고 했다. 물론 매 달 일하게 될 코워킹 스페이스 비용도 내가 지불해야 한다. 대충 계산해봐도 이 돈이 결코 만만치 않다. 월급 주는 사장님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기술적으로 프런트엔드, 백엔드 기술 등에 대해 질문을 했다. 내가 사용하는 기술 스택들과는 조금은 다른 것들을 사용하셨던 것 같다. 혼자서 개발을 많이 해 오신 분이었다. 협업의 경험이 없는 것과, 어떠한 질문에 대해 조리 있게 이야기를 build 해 가면서 대답이 오지 않아 아쉬웠다. 개발자는 실제 개발 능력만큼 중요한 것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라고 (내가 감히?)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아쉬웠다. 그리고 또한, 두리뭉실한 장점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진짜 전설적인 개발자가 아닌 이상, 자신이 좋아하는 한 분야에 대해 뾰족한 장점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분야에 대해 굉장한 열정과 지식이 있다면, 다른 부족한 부분들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히려 여러 부분에서 두리뭉실하게 다 어느 정도씩 한다면, 솔직히 어떤 쪽으로 함께 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건 대표인 나 역시 스스로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다. 대표는 보통 여러 가지를 어느 정도 잘 해야 한다. 하지만, 한 두 가지 분야엔 정말 무릎을 탁 칠 정도로 잘 하거나 알아야 한다. (고 들었다.) 


No를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이제부턴 해 나가야겠다. 죄송하고 아쉽게도 오늘 면접 본 분께는 함께하지 못할 것 같다고 이메일을 보내야 한다. 오늘 바로 보내면 정이 없으니까 내일 보내야지. 월급조차 주지 못하는 채용이었지만 그러기에 더더욱, 서로가 맞는 동료를 찾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오늘 지원자 분은 더 좋은 회사를 만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4. CTO 그리고 동료

우리 제품과 사업에 관심을 보였던 부트캠프 전전 기수의 선배가 있다. 잘 나가는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지만, 사정이 있어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때마침 나의 말도 안 되는 출사표와 같은 채용공고를 보게 되었고, 처음부터 (=바닥부터) 서비스/제품을 만들어가는데 흥미가 크다고 했다. 이야기가 진전되어 CTO (기술이사) 자리로 오게 되었는데, 금일 이야기하다가 아얘 공동창업자로 시작하는 게 어떤지 논의가 되었다. 매우 흥분되는 날이다. 파트너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고, 과연 언제나 만날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물론, 아직 더 서로 지내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이야기해본 바로는 꽤나 나와 싱크가 맞는다. 


5. 중고폰

어린 사촌동생이 폰을 떨어뜨려 중고폰을 사야 한다고 이모한테 연락이 왔다. 왜 나한테 연락이 오냐면, 사촌동생이 초등학생일 때 내가 알뜰폰으로 신청해줬기 때문이다. 이 것 때문에 오늘 통화를 많이 했다. 


6. 중고 냉장고 거래

요즘 중고나라를 자주 사용하는데, 집에 미니 125L짜리 미니 냉장고가 있어 내놓은 지 며칠 째. 오늘 갑자기 냉장고 사고 싶다는 사람이 거짓말 안 하고 문자 보내고, 전화하고, 또 문자 보내고 나를 괴롭혔다. 냉장고에 원수를 졌나... 그냥 같았으면 바로바로 대응을 하는 게 내 성격인데, 오늘은 회사 일도 있었고, 또 면접도 있었기 때문에 바로 대응을 못했다. 결국 집에 돌아와 답변을 했는데 새벽 1시 반에 온단다. 도대체 왜 나는 새벽 1시 반 중고거래에 응했는지 모르겠지만 잠도 못 자고 기다리다 달밤에 냉장고를 함께 옮겼다. 도대체 왜 이 분은 새벽 1시 반에 꽃무늬 운동복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왔을까. 오토바이에 냉장고를 싣고 고정하느라 함께 20분 동안 또 고생했다. 


지친다. 오늘은 좀 지치는 것 같다. 평소에 힘들다는 말을 잘 안 하는데, 또한 스타트업 시작하고 힘들다고 내 입으로 한 적 없는데 오늘같이 여러 일이 겹치는 날은 좀 버겁다. 



매거진의 이전글 2주 내내 미팅 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