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장.

by 쿠쑝

"Miss, 탑승 시간을 잘 못 보신 듯합니다. 비행기는 이미 출발했습니다."


"네?"


순간


앞이 깜깜해졌다.


비유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깜.


깜.


소설 속에서 작가들이 왜 이런 식으로 황당함을 묘사하는지


그제야 이해했다.


깜깜함을 밀어내려고


그녀는 눈을 몇 번 깜박였다.


형광등 아래의 항공사 데스크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영어를 잘 못 들었나 싶어


그녀는 홍콩말로


항공사 직원에게 재확인했다.


"비행기 티켓에는 분명 오늘 날짜가 적혀있는데요?"


"네, Miss. 오늘 새벽 비행기였어요. 00:50분이요. "


그녀의 첫 출장은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잡혔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그녀에게


상사는 통보를 해왔다.


미국 본사에서 열리는 연례 정기회의에


그녀의 이름을 올려놨으니


일정에 맞춰서 준비하라고.


얼떨결에


생에 첫 출장을 가게 된 그녀는


비자받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업무 파악은커녕


글로벌 회사는 처음이었기에


조직도를 이해하는 일만으로도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그녀가 속한 아시아 팀에서는 상사와 그녀,


딱 둘만 본사 미팅을 참가하기로 했는데


서로 다른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기에


그녀 홀로 홍콩에서 LA로 출국하기로 했다.


해외생활을 오래 하여


장거리든


단거리든


국제선이든


국내선이든 가리지 않고


비행기라면 웬만큼 타봤다고 자부하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의


'생애 첫 출장' 스케줄은


꼬여도 아주 제대로 꼬였다.


출발 시간 00:50 AM, 밤 열두 시 오십 분.


즉, 날짜가 바뀌기 전날 저녁에


탑승수속을 해야 하는 비행기였다.


당일 저녁 느긋하게 공항에 도착해서


이미 떠난 새벽 비행기를 태워달라고 티켓을 들이밀었으니


항공사 직원도


그녀도


멍하니 서로 얼굴을 바라봤다.


정적을 깨고


항공사 직원이 무덤덤하게 물었다.


"티켓 환불 진행해 드릴까요?"


어... 환불?


어랏.


이게 아닌데,


내일 이 시간쯤이면


LA 본사에서 미팅에 참석해 있어야 하는데.


머리야, 돌아가라.


생각! 생각을 좀 해봐!


그제야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서는


"아뇨. 오늘 밤 비행기로 교환 가능할까요? 차액은 지불할게요."


"Miss, 죄송하지만 오늘 LA행은 만석입니다."


"그럼 다른 시간대 비행기는 없을까요? LA로 꼭 가야 해요."


타닥타닥 타 다다다다


직원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제발...


제발... 있어라, 뭐든.


그녀는


종교가 없었지만


아는 신의 이름이란 이름은 죄다 불러보며


그녀의 간절함을 알렸다.


신이든 귀신이든


지금 당장 누구든


이 상황을 해결해줬으면 했다.


"Miss, 조금 있다가 출발하는 인천행이 있습니다.


인천에서 LA로 연결되는 항공편이 있긴 한데 문제는 LA로 가는 편이 만석이네요.


그래도 노쇼나 캔슬 좌석이 나올 수도 있으니 인천으로 가서 대기해 보시겠어요?"


으아.


이렇게까지 꼬인다고?


그녀는 머릿속으로 저울질을 해본다.


홍콩에서는 답이 없다.


인천으로 가면


그래, 설마...


좌석 하나쯤은 나오겠지.


아닌가?


오늘 홍콩 - LA행도 예정대로 만석이라는데


인천도 마찬가지 아닐까?


아니, 도대체 왜 다들 LA에 간다고 이 난리야.


나 몰래 무슨 축제라도 열리는 거야?


에라,


모르겠다.


그녀는 될 대로 돼라 하는 심정으로


"네, 인천행으로 주세요. 거기서 웨이팅 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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