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질투

by 쿠쑝

그녀는


'로맨스'하면 야리야리한 핑크색을 떠올리고


'질투'하면 탁한 초록색을 떠올린다.


해외로 이주하게 된 소식을


주변에 알리고 싶지 않았다.


재취업을 할 수 있을까 하며


불안한 시간을


때론 죄책감과 함께


홀로 버텨왔던 그녀다.


최종 면접에서 입사확정 통보를 받았을 때


미친년처럼 온 동네방네 뛰어다니며 소리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재취업을,


그것도 해외 근무를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주변에 전하면


혹여나


조금씩 새어 나오는 초록색을 발견할까 봐


무서웠다.


지금껏 따뜻하게 유지되어오던 관계들인데


굳이


깊은 마음속까지


들춰보지 않고


시간이 다가오면 이쁘게 안녕하고 싶었다.


그래야 다음에 만날 때


반가운 마음으로 안녕할 수 있을 듯했다.


안탑깝게 도


그녀는 에둘러 말하기에 매우 서툰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참석해던 모임에 나가 이런저런 근황들을


주고받다 보니


그녀도 모르는 사이


노동 허가증을 받기 위해 서류 준비 중이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노동허가? 그거 안 나오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 오래오래 볼 수 있잖아요.'


순간적으로 허탈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그녀의 실망이 새어 나오지 않을까 모임 내내 조심스러웠다.


해외에서 근무를 하게 될 사람에게


그것도 혼자 파견 근무를 가는 것도 아니고


온 가족이 다 함께 옮기기로 한 상황에서


노동허가가 안 나온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뜻하는지 그분은 알고 있었을까.


그 '노동허가'가 무사히 시간 맞춰 나오기를 빌며 지내고 있던 나날이기에


근황얘기를 주고받으며


제일 큰 걱정거리를 공유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았을 텐데.


다른 한 분은 소식을 들으시더니


대뜸


"어우, 질투 난다."


라고 하였다.


그래,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은


시댁에 소식을 전해야 했다.


가기 전날부터


마음에 준비를 단단히 했다.


특히


형님이 어떤 코멘트를 하더라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넘기겠다며 다짐했다.


그분은 만날 때마다


초록색 팔레트를 선보이는 사람이었다.


겨울 산속에 깊이 스며든 진하디 진한 녹색일 때도 있고


햇빛을 살짝 머금은 듯한 연두가 비칠 때도 있었다.


어디서부터 섞여 나온


초록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기 힘들 때도 많았다.


'외화벌이 산업의 역군이 되었네, 축하해.'


베베 꼬였다, 꼬여도 심히 꼬였으니 그날은 검은색만큼 진한 초록색이었다.


비꼬는 뉘앙스가


그녀에 심기를 건드렸지만


애써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흘려 넘겼다.


그런데


그때뿐이었나 보다.


흘려 넘겼는 줄 알았는데


흘려보내질 못 하고


여전히


실망 한가득과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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