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happy.
딸각.
위이이잉.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행복하다.
난 전제제품에 관심이 없는 편이다.
본인의 몫을 묵묵히 잘 해내고
튼튼하고
쉽게 때 타지 않으면
어떤 브랜드든
어떤 컬러든
다 좋다.
그리도 심플하게 충족되던 나인데
그의 부재로 인해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필
날씨까지 더우니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
빨래거리가 어마무시했다.
난 내 몫도 버거웠기에
가족들 모두 각자 알아서 손빨래하기로 했다.
그래도 나름 엄마인지라
아이 옷을 하나라도 더 빨아야 했고
수건 하나라도 더 빨게 되었다.
물기를 짜다
행여나
컴퓨터 작업을 해야 하는 손목을 다칠까 봐
대충 짜서 널었다.
햇빛이 쨍쨍한데도
탈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옷이 바로바로 마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사용하는 수건들도 많아지고
나오는 양말 개수도 늘어났다.
해외 이사로 인해
기본세팅 값이 강제로
초기화되니
이제야
내가 이렇게까지 빨래를 자주 해야 하는 사람인지를 깨달았다.
조금이라도 땀이 나면
한 번 더 입기가 찝찝했다.
내 옷만 찝찝하게 아니라
아이들 옷까지도
마약탐지견처럼
킁킁거렸다.
머리가 길다 보니
수건도 한 번 쓰고 나면
다시 말려서 쓰기가 꺼려졌다.
짐가방에 챙겨 온 베개커버들도
이 주째 같은 걸 쓰고 있으니
얼굴이 닿을 때마다
꿉꿉했다.
불편지수가 점점 높아지던 차에
그가 도착했다.
이삿짐 아저씨들이 작업을 마치기가 무섭게
나는 쌓여 있던 빨래들을 모두 던져 넣었다.
신이 얼마나 나던지.
세제를 아주 콸콸 들이부었다.
탕탕탕탕탕
덜덜 덜 덜덜
응?
고향 떠나 왔다고 신고식인가?
왜 이리 시끄럽지?
이삿짐을 정리하다 멈추고 세탁실로 가보니
덜덜덜 탈수와 함께
세탁기도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고장 날까 봐
황급히 정지 버튼 눌렀다.
정자세로 참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던 그는
사춘기 반항아처럼
몸을 홱 돌리고 앉아 있었다.
이런,
수평이 안 맞나 보다.
오늘은 꼭 빨래를 돌리고 싶었는데
낭패다.
기계에 관심이 없는 만큼
손 볼 줄도 모른다.
관심이 없으니 아는 것도 없는 것이다.
관리실 아저씨랑 말도 안 통하니
신랑 퇴근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아이들도
세탁기 모습을 보고선
드디어 손빨래에서 벗어났다고
신나 하다가
사춘기 반항아 모습을 보고선
시무룩 해졌다.
"오늘도 손빨래해야 해?"
"응, 그래야 할 것 같아. 아빠가 고치면 다행이고, 아빠가 못 고치면..."
하아,
나도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은 시나리오다.
퇴근하고 온 신랑은
베란다 불빛이 너무 어두워
다음 날 아침에 다시 봐야겠다고 했다.
두근두근
심장이 쫄려온다.
신랑이 그래도 고치면 다행인데...
못 고치면
서비스 센터 예약하고
방문 수리 기사가 오는 데까지도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럼 내일도 빨래를 못 돌린다는 건데...
아...
진심 돌리고 싶다.
세탁기 세탁기 세탁기
중얼거리며
그날 밤 잠이 들었다.
끽끽 탁탁
공구 돌리는 소리에 일어나 보니
신랑이 아침부터 땀을 뻘뻘 흘리며
세탁기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나는 베란다 끝머리에
쪼그리고 앉아
신랑의 모습을 바라보며
내심 빌었다.
제발, 오늘은 돌아가라.
오늘은 빨래 좀 해보자.
"됐다. 세탁기 뒤에 고정핀을 제대로 다 안 빼서 그랬네. 나 출근한다."
딸각.
위이이잉
세탁기가 부드럽게 돌아간다.
음하하하하
웃음이 절로 새어나온다.
너무 행복하다.